잠 못 드는 밤, 무거운 왕관
대면모금팀 팀장으로서 사무실에 출근 한 첫날.
처음 기업모금팀 리더로 출근했던 아침이 떠올랐다.
큰 책상, 팀원들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안쪽 넓은 자리, 팀원 지도용 U자형 테이블.
사안을 잘 분별하는 능력 있는 사람, 지혜롭고 사랑 많은 리더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던가.
새로운 팀원들에게서 약간의 긴장감과 기대감이 느껴졌다.
팀원들은 상기된 목소리로 사무실 청소를 정성껏 해놓았다는 말을 하며 반겨준다.
눈앞에는 전보다 작아진 책상, 지저분하게 정리된 물품들, 여기저기 휠체어 바퀴자국으로 긁혀있는 바닥, 책상이 어지럽혀져 빈 공간이 없는 팀원의 자리가 보인다.
"안녕하십니꽈!!!"
에너지틱하고 왁자지껄하다.
팀원들은 주로 외근을 해서 모두가 모이는 날이 흔하지 않다.
반가운 마음에 서로 인사하며,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출근시간인 9시가 지났다.
"다 왔나?"
"몇 명이 아직 안 왔습니다."
"헤헤... 곧 올 거예요!"
"음...? ㅇ.ㅇ???"
뭐지? 이곳은 교회 청년부인가? 대학교 동아리인가??
직원들이 출근시간보다 늦게 오는 이 상황을 모두 익숙하게 여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아직 팀 분위기를 관찰해야 하니 꾹 참으며 일단 상황을 지켜보았다.
15~20분 정도 지나니 모두가 모였다.
늦은 직원은 지각을 했는데도, 허허 웃어넘기며 상황을 모면한다.
팀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팀원의 얼굴과 이름을 매칭하여 외우는 것이었다.
19명의 팀원은 3명의 매니저를 중심으로 A, B, C 팀으로 나뉘어 관리를 받고 있었다.
각 팀 매니저 3명만 사무실에 책상이 있어 내근을 했고, 기획 및 기타 행정업무를 담당했다.
그리고 다른 팀에서 쓰다가 폐기처분하려 한 컴퓨터 두 대를 팀 회의실로 가져와 설치했는데, PC방 같다.
외근하는 팀원이 언제든 와서 간단한 행정업무를 할 수 있도록 올해 처음 설치한 것이다.
팀 업무 정리한 것을 보고 받는데, 보고내용이 너무 산만하다. 간단한 행정서류에서도 오타가 계속 보인다.
짜증이 조금 났다. 오합지졸 같다는 생각이 들고 한직으로 유배당한 기분도 들었다.
팀원의 반복되는 행정오류에 인내심이 다해 데이빗에게 하소연했다.
"계속 가르쳐도 반복해서 틀려요. 이걸 어떻게 더 지도해야 해요?ㅠㅠ"
"ㅎㅎㅎ;; 게임하는 것처럼 해^^;; 몇 번 틀리면 벌칙 또는 벌금 내기 같은 거를 하던가...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계속 반복해서 틀리면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고 그냥 반려시켜 ^^;;;;"
"와... 여기가 학원도 아닌데... 후...."
감정을 다듬고 다시 시작한다.
내근을 하는 3명의 매니저는 트라이앵글처럼 서로 의지하며 팀장의 공석을 채우려 부단히 노력하고 지내왔었다. 셋이서 복작복작 준비해 오던 프로젝트를 침을 꼴깍 삼키며 보고한다.
나는 회사에서 '겁나 빡쎈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 때문인지 업무로 처음 대면하는 매니저들이 잔뜩 긴장해서 내 눈치를 살피는 게 느껴졌다.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팀장대행을 해왔던 선임 매니저 네오가 다른 매니저들을 대표해서 나에게 말을 건다.
"팀장님, 오늘 월급날인데 우삼겹 어떻습니까?"
"고기요?? 한 시간 만에 가능해요?"
"그럼요~ 저희는 월급날마다 먹어요. 저~기 무한리필집에서요."
"맛있어요! 가요~가요~~!"
"아하ㅎㅎ 네~~ 같이 가요."
고기를 쉬지 않고 구워 먹는다.
셋이 손발이 잘 맞는다. 착착착 준비하고 대화를 하는 데 말이 청산유수이다.
보고만 있어도 너무 재미있어서 광대가 아플 지경이다.
매니저들은 업무 시간에 외근 중인 직원들과 자주 통화한다.
외근직원이 담당 매니저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성과가 미비한 직원에게 매니저가 전화를 건다.
통화내용을 들어보면 '오늘 잘 안된다', '사람들이 잘 안 온다'는 말에 공감해 주며 '곧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하고 격려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매니저들은 행정업무가 어설펐지만, 일반 직원보다 대면모금 성과가 두 배이상 지속적으로 나타냈던 것은 물론, 조직에 대한 헌신과 희생정신이 높고 팀워크 역량이 탁월한 직원들이었다.
대부분의 외근 직원들은 이 매니저 자리를 얻고 싶어 했다. 외근 직무에서 탈출할 수 있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세 명의 매니저는 일부 직원에게 불평과 불만을 수시로 들었고, 시기와 질투를 담대히 감당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팀원이 자신이 여태까지 나타낸 모금성과를 정리해 와 면담을 요청했다.
손을 덜덜 떨며 말한다.
"제 성과는 보시다시피 형편없어요.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다른 일을 찾기에는 제 커리어가 엉망이에요..."
이 팀원은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근을 할 수 있는 업무로 전환해 달라는 요청인 것 같다.
<법인 사람들>, <사무실 사람들>
팀원들은 이런 표현을 자주 했다. 외근을 하고 있는 우리와 내근을 하고 있는 사무실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분리해서 생각했고, 적대시하고 있었다.
누군가 고성과를 내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몇몇 직원이 고성과자의 흉을 보고 트집을 잡으며 부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서 끌어내리려 한다.
업무 하기 좋은 장소에 가지 못하면 근무지를 계획한 매니저에게 모든 원망을 쏟는다.
모든 순간이 경쟁이다.
건강한 팀원은 끌어내리는 말을 들어도 더 힘차게, 더 활기차게, 더 밝은 모습으로 업무에 임하려 노력해서 높은 성과를 꾸준히 유지한다.
매니저들은 이런 마음을 잘 알았고, 모든 팀원들을 끊임없이 격려하고 위로하고 지지해 주었다.
서로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주는 모습에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이곳은 교회 청년부인가..?
팀원들의 근무환경을 살펴보았다.
초록색 L자 카트에 파란색 이사박스를 싣고 출근길 지하철에 오른다.
사람이 많아 눈치가 보이지만, 그냥 들이민다. 놓치면 출근을 못한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갈 때 엘리베이터나 에스칼레이터가 고장이면, 업무물품으로 가득 찬 파란색 이사박스와 초록색 L자 카트를 접어들어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올라간다.
이 무게가 최소 50kg다. 한참 업무를 하다가 비가 오면 다시 그 물품들을 정리해서 실내장소로 이동한다.
마음속에 한 가지 목표가 생긴다.
'저 파란색 이사박스 전부 없애고 만다.'
하루는 매니저에게 나도 거리모금 현장에서 함께 일을 해볼 테니 내가 가야 할 곳, 함께 근무하면 좋을 직원과 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팀장님이 캠페인 현장에 나가신대. 어디로 보내드리지?"
"아ㅋㅋㅋ 거기로 보내시죠. 한번 가보시면 좋겠네요."
매니저 셋이서 분주하게 회의하더니 근무하기 가장 열악한 장소로 보내주었다.
나는 그날 직원들이 말하는 최악의 상황 몇 가지를 경험했다.
1. 스킨십이 하고 싶어 접근하고 개인정보를 묻는 중년 남성
2. 직원 앞으로 찾아와 강력히 항의하며 자녀가 작성한 후원신청서를 4번 찢어버리는 보호자
3. 핸드폰 판매자, 신천지 전도자, 길거리 가방 판매자 집합으로 인한 혼돈의 거리
다행히 그날은 취객이나 노숙자의 시비는 없었다. 취객이나 노숙자 시비는 최악의 악이다.
앞 날이 깜깜합니다.
또 다른 날, 팀원 B가 찾아와 울면서 고민을 상담한다.
"밖에서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허리가 아프고 목도 좋지 않아요. 더 성장하고 싶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공황장애가 올 것 같아요."
아... 우리 팀원들은 평생 현장에서만 일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지배되어 있구나.
이 때문에 누군가가 매니저(내근직)가 되면 심하게 시기하고 질투했고, 잘하는 직원이 있다면 끌어내리려 아우성인 것이었다. 팀장 눈 밖에 나면 내근의 기회가 사라질 수 있겠다는 불안감으로 눈치 보는 팀원이 있는 것도 같았다.
네오와 두 매니저에게 물었다.
"어떤 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팀에서도 우리 팀에 오고 싶어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팀원들이 팀에서 함께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팀원들의 목표는 내근직으로의 전환뿐이에요. 팀에서 탈출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요. 팀원들이 떠나고 싶어 하는 팀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조직을 사랑하고 헌신적인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있었던가?
내 앞에 있는 매니저들은 사랑이 무척 많았고, 팀원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었다.
고작 행정서류가 조금 서툴렀다고, 본질에 충성하고 모든 일에 진심인 팀원을 못 알아보고 있었다.
팀원들의 마음이 들린다.
우리는 준비가 되었어요.
무엇이든 가르쳐주세요.
어떤 일이든 시켜주세요.
우리는 일회용이 아니에요.
우리는 성장하고 싶어요.
우리에게 관심을 보여주세요.
우리를 사랑해 주세요.
하나님, 팀원들이 저만 바라봐요...
그동안 고아처럼 일해 온 팀원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요.
제가 무엇을 해야 불안한 팀원들을 안심시키고 희망과 기쁨으로 일하는 팀이 될 수 있을까요?
몇 달 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매일 밤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