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미술관 기획전
이번 기획전 <Spaces>의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이번 전시장에서는 다양한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마이클 엘름그린과 잉가 드라그셋은 1994년에 만났을 때부터 전시공간을 새로운 공간으로 전환해서 일상에 내재된 권력 구조를 탐구해오고 있다고 한다. 앞서 소개한 목마탄 아이의 동상도 기존에 권력을 상징하는 기마상을 재해석한 작품이었다.
1층에서 몇 가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빙글빙글 돌고 있는 테리어 <Soviat Media Terrier, 2022>, 헌신짝등 쓰레기가 들어있는 모금함 <Donation Box, 2006>, 계단 위에서 두 봉을 붙잡고 허공에 떠 있는 남자 <What’s Left?, 2021> 모두 전시에 대한 신비감을 높여준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간다.
지하층으로 내려가면 완전한 집 한 채를 만나게 된다. 줄을 좀 서야 하는데 금방금방 순서가 돌아온다. 집 안에는 벽난로와 책장, 소파를 갖춘 거실과 다이닝, 작업실방, 침실, 욕실등 완벽한 모델하우스 같은 하우스 한 채가 자리 잡고 있다. 공허하게 밖을 바라보며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한 남자아이는 모두 다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스폿이 된다. 이 공간 안에 있는 작은 오브제들은 거의 다 이들 작품의 작은 버전이다.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평범한 듯 하지만 평범하지 않다. 가구들도 자세히 보면 좀 현실적이지 않다. 수영장으로 가는 길목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아이스 박스도 수집품이니 발로 걷어차지 말고 지나가자.
그 옆 전시실로 가면 물이 없는 빈 수영장이 있다. 수영장 벽에 걸려있는 구명조끼까지도 작품이다. 수영장 벽에 작은 구멍이 나있다. 그 구멍을 통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데 그것도 작품이다. 수영장에 걸터앉아 있는 아이, 수영장 속에 있는 아이, 라이프가드 자리에 앉아있는 아이가 각각의 자리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아모레퍼시픽의 소장품인 <The Screen, 2021> 작품이 있다. 작품설명에 의하면, 수영장에 대해서 이렇게 해설하고 있다. 꽤 어렵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물이 빠진 수영장은 오늘날 공공장소의 쇠퇴와 공동체의 상실을 암시한다. 수영장을 무대로는 고전 작품을 연상시키는 백색의 조각들이 등장하여 현대의 남성성과 고립 및 성장에 관한 실존적 질문들을 던진다…. 설명이 너무나 어렵다. 아 어려운 현대미술이다.
다음 방으로 넘어가면 근사한 레스토랑이 있다. 창문의 위치에는 <교토의 하늘, 2024> <상해의 하늘, 2024> <부산의 하늘, 2024> 작품이 창문처럼 걸려서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있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여자는 손 안의 핸드폰 속의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다. <The Conversation, 2024> 왠지 한심해 보이는 모습이다. 우리의 모습 같다. 앉기만 하면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모습… 그곳의 공간과는 상관없이 손안에 빠져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소파에 멋지게 차려입고 <All dressed up, 2022> 뻗어있는 누군가의 모습도 내 모습같다 ㅎㅎ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방이 나온다. 레스토랑의 주방같이 보이면서도 실험실 같기도 하다. 이 장소에서는 기후 변화, 인구 증가, 천연자원의 감소 속에서 실험실 과학에 더욱 의존하고 있는 현세태를 보여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쉽게 이해가 간다.
그다음 방은 작가의 아뜰리에임을 알 수 있다. 작가들이 작업하는 모습은 거울에 반사되기도 하고, 캔버스 자체가 거울로 되어 있기도 하다. 거울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과 작가의 모습과 전시장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진다. 작가의 기획 의도는 이 경계를 무너뜨리는 거라고 했다.
이 외에도 구석구석에서 작품을 하나씩 발견하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어려운 현대미술이라지만, 이런 공간에 풀어놓으니 훨씬 거리감이 좁혀지는 듯하고 기분도 전환된다. 골치 아프지도 않고 보기 좋은 작품들이 적당한 공간에 어우러져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호기심을 가지고 둘러볼 수 있었다. 큰 깨달음을 얻거나 감동을 받거나 힐링이 된다기보다는, 새로운 생각을 엿 보면서 기분전환이 되는 그런 전시였다.
전시 2025. 2. 23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