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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golden age Apr 09. 2024

360도 panorama 미술관

헤이그: Museum Panorama Mesdag


쏟아져 나오는 출판물들 속에서 유독 나의 시선을 사로잡던 미술분야의 책들, 그 책들 덕분에 뉴욕, 파리, 런던 등 대도시의 유명한 미술관과 작품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거주했던 90년대 중후반에는 비전공자로써 어떻게 미술에 접근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였다. 심신의 여유가 없던 20대이기도 했고, 인터넷 검색이라는 것이 처음 시작되었던 시절이라고 하면 상상할 수 있을까. 이후에 책을 통해 미술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듯했다. 대표적인 미술관들을 섭렵하면서 경험이 쌓이고 나니, 이제는 한 단계 깊게 다양한 도시의 미술관들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3년의 긴 어둠 속 터널을 지내고 맞이한 2022년, 오랜만에 작심하고 지도 어플을 열어보았다.


이번에는 어느 쪽으로 가볼까. 미술관을 다니면서 알게 된 플랑드르 미술 (Flemish Art)이 떠올랐다. 그저 미술관에서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어두운 그림으로 전시실이 고루하게 느껴지던 장르라 생각되었는데, 이번에는 플랑드르 미술을 공부해보자 싶어서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루트를 짜다가 헤이그까지 오게 되었다. 헤이그는 우리 모녀 둘 다 처음 방문하는 곳이라 낯선 곳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있었다. 친해지고자 했던 플랑드르 장르는 15세기부터 발달하여 17세기의 네덜란드 황금기 미술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네덜란드의 golden age에 대해 알아가는 의미 있는 여행이 되었다.


헤이그 도심 한 복판에 위치한 Museum Panorama Mesdag는 헤이그에서의 마지막 날 오후에 시간이 남아 계획에 없이 들어가게 되었지만, 안 와봤다면 아쉬울만한 곳이었다. 화가는 바닷가 풍광을 360도 파노라마뷰로 캔버스에 그려 벽에 설치하였고, 해변과 마을을 실제처럼 꾸민 작은 공간이었다. Panorama Mesdag는 유럽에서 가장 큰 원형 캔버스인데, 아마도 이런 미술관으로는 유일하지 않을까. 간혹 도심의 고층 빌딩 위 레스토랑이 360도 회전하여 야경을 보며 식사한 경험은 있지만, 이렇게 그림을 360도 돌면서 보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관람 방식이었다.




1층 전시실을 다 지나고 나면 나선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게 되고 큰 오두막이 나온다. 이곳에 서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면서 왼쪽이나 오른쪽 방향으로 발을 뗀다. 백사장을 지나 바다 멀리 수평선도 보이고, 마을을 지나 지평선 끝을 보다 보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특이한 점은 벽에 그림만 그려서 둘러놓은 게 아니고, 고운 모래를 가져다가 바닥에 잔뜩 부어서 실제 해안가 모래사장처럼 보이도록 연출하였다. 가져온 모래는 그림 속의 모래해변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설득력 있는 착시현상과 원근감이 느껴진다. 해안가에는 어부들이 버려둔 그물도 있고 나무 널빤지들도 굴러다니고, 마른풀들이 심겨 있어서 정말 바닷가 느낌이 든다. 중앙은 대형 원두막처럼 만들어져서, 실제로 해변가의 가옥 발코니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듯하다.



Hendrik Willem Mesdag (1831 - 1915)는 원래 은행원이었는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35세에 퇴사를 한다. 이름을 남긴 화가들 중에 이런 결단을 내린 경우가 종종 있는데, 원래 직업을 내려놓기까지 얼마나 갈등을 했을까. 그는 37세에 바다를 그리기 위하여 헤이그로 이주하였고 수많은 바다 그림을 그렸다. 미술관 1층에 전시되어 있는 그의 바다 그림들은 대형 사이즈가 많고, 옅은 파스텔톤으로 은은하고 잔잔하면서도 깊이가 느껴진다. 이런 수많은 연습이 있었기에 대형 파노라마 대작이 가능했겠구나 싶었다.


Mesdag 부부는 1880년 벨기에 회사로부터 Scheveningen 마을에서 보는 바다뷰를 파노라마 그림으로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스헤베닝겐은 헤이그 도심에서 북쪽으로 4km 정도에 위치한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Mesdag의 부인 Sina (Sientje) Mesdag-van Houten도 화가였기에 함께 작업을 했다. 그는 부인과 제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약 1680m² (약 500평) 화폭에 그림을 그려나갔고 약 4개월 만인 1881년에 파노라마 작품을 완성하였다. 360도 파노라마 원형의 지름은 36미터 정도 되는데 원근감 덕분에 바다 멀리까지 보여 훨씬 더 큰 공간감이 느껴진다. 원두막 위 천장의 채광창을 통하여 들어온 빛으로 캔버스 위의 하늘과 구름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젤 앞에 앉아있는 Sina의 모습이 그림 속에 있으니 한번 찾아보자.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파노라마 그림의 유행은 시들해지고, 1886년 미술관을 운영했던 회사는 파산하게 된다. 자식 같은 그림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면서 그 누구보다도 애가 탔던 Mesdag가 직접 미술관을 인수한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팔아가며 손실을 메꾸며 버텨냈고, 그 덕분에 Panorama Mesdag는 지금까지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장 오래된 파노라마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부인 Sina가 이젤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확대)


파노라마 그림은 주로 풍경화가 많고, 많은 군사들이 동원된 전투현장 같은 역사적 사건을 포괄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묘사한 작품도 있다. 파노라마는 18세기부터 시작되었고 19세기에는 유럽과 북미지역에서 유행되어 지금까지도 작품들이 남아있다. 파노라마에는 캔버스와 현실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 관람객들이 몰입되게 한다. 그리고 캔버스의 경계선을 실제처럼 꾸며 현실감을 높여주고, 채광을 사용해서 사실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관람객들은 그림 속으로 빠져들어가며 실제처럼 느껴지는 공간에서 신비로움까지 느끼게 된다. 보통은 관람객이 직접 돌면서 그림을 감상하지만, 때로는 관람객은 가만히 앉아있고 그림이 회전하도록 롤러를 설치하기도 했다. 파노라마로 그림을 보기 위하여 미술관을 원형으로 건축하고, 롤러까지 돌려가며 그림을 보려는 인간의 상상력과 도전심은 정말 대단하다.



재미있는 점은 반 고흐의 발자취가 헤이그 여러 군데에 남아있다는 거다. 그는 헤이그에서 두 차례 길게 머물렀다. 1869년에서 1873년까지, 그리고 1881년에서 1883년까지 이다. 그는 종종 스헤베닝겐 바닷가에 앉아서 작업을 했다. <Beach at Scheveningen in Stormy Weather, 1882> 뿐만 아니라 헤이그 바닷가 마을의 풍경, 해변가의 사람들, 조용한 바다뷰 등 여러 작품을 남겼다.


국제 도시인 헤이그에는 네덜란드인 보다 더 많은 이민자가 거주하고 있다. 과거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영향으로 혼혈 인구도 많고, 유엔기구와 각국의 대사관이 헤이그에 있기도 해서 그런지 외국인 거주 비율이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덕분에 이곳에는 아시아 식당이 다양하고 맛도 괜찮았다. 유럽여행 중에 느끼함으로 잃은 미각은 헤이그에서 되찾을 수 있으니 며칠 머무르기에 더없이 좋은 도시이다. 그나저나 360도 동영상을 책에서도 공유하고 싶은데, 언제쯤이면 지면 위에서 동영상을 볼 수 있을 때가 올 것인지 궁금하다.


반 고흐 <Beach at Scheveningen in Stormy Weather, 1882>,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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