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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golden age Apr 12. 2024

런던 앱슬리 하우스

세계사를 바꾼 영웅의 집 Apsley House

화려한 쇼핑가인 Piccadilly 거리. 11월 말부터는 블랙프라이데이 세일과 크리스마스 쇼핑을 나온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 길을 따라 서쪽 끝까지 가면 하이드 파크가 나오고, 공원의 초입 코너에는 웅장한 저택 한 채가 어색하게도 덩그러니 홀로 서있다. 1962년도에 도로가 확장되기 전까지는 이 저택 옆으로 3채의 저택이 더 있었다고 한다. 저택 앞의 넓은 도로 가운데에는 웰링턴 장군이 말을 타고 있는 조각상이 서 있고, 조금 더 떨어진 곳에는 웰링턴 장군의 승전 기념 아치가 세워져 있다. 이 저택은 웰링턴 장군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Apsley House로 웰링턴과 관련된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관심 있게 들여다보신다. 이 나라는 보물이 너무 흔해서일까, 이렇게 한산한 곳이 많아서 부러울 따름이다.


앱슬리 하우스의 키워드는 단연 웰링턴 장군과 그의 맞수 나폴레옹이다. 이런 곳에 와보면 내가 역사를 잘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서 뒤늦게라도 공부를 하게 된다. 세계사와 미술사는 톱니바퀴처럼 함께 움직이니 역사를 모르면 아무리 좋은 곳을 방문해도 보이는 게 없으니 공부를 안 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리사한테 그 부분을 잘 못해준 거 같다. 부모가 역사를 알아야 아이를 데리고 다닐 때 재미나게 설명을 해주며 흥미를 돋울 텐데 이 부분이 아쉽다. 남편은 세계 역사를 좋아해서 늘 우리를 붙잡고 소귀에 경읽기를 하듯 독백을 했지만, 이제는 나도 꽤 많이 따라잡은 듯하다. 이런 면에서 리사는 외할아버지랑 여행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전문 가이드처럼 역사적인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니 재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리사는 훗날 신혼여행에도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야겠다고 우스개 소리를 한다.


최근 들어 웰링턴과 나폴레옹이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현실에서 느끼고 있다. 리사가 소더비 옥션하우스에서 일을 하다 보니 역사적 인물과 직접 관련된 골동품을 취급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놀랍게도 일반인이 나폴레옹이 사용하던 가구나 웰링턴이 가지고 있던 예술품을 소장하고, 경매에 출품을 의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회사는 의뢰받은 물품이 진품인지를 확인해야 하므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족보를 찾아내야 한다. 예를 들어 의뢰인이 나폴레옹이 직접 사용했던 책상이라고 주장하면, 그 당시 나폴레옹의 가구를 제작했던 장인이 똑같은 책상을 몇 개 만들어서 판매했는지부터 기록을 찾아야 한다. 그 이후에 그 책상을 어느 가문에서 소유했었고, 다시 어느 가문으로 팔려갔는지 등등의 히스토리 퍼즐이 다 맞춰져야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추정가를 제시할 수가 있다. 리사는 이런 퍼즐 맞추기를 잘하는 거 같다.


간혹 진귀한 물건에 대한 스토리를 리사한테 듣게 된다. 우와, 진짜?!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다. 이러다 보니 엄마와 딸은 함께 성장하는 거 같다. 엄마라고 해서 딸보다 더 많이 아는 건 아니지 않나. 이렇게 함께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 리사는 공부하고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역사와 친해졌으니 안목이 넓어지고 깊어졌을 거다. 전문성을 가지고 즐기면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저택의 1층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눈에 뜨이는 디지털 작품이 있으니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Sir Michael Craig-Martin (1941-)의 작품이다. 1817년 초상화가였던 Thomas Lawrence가 그린 웰링턴 공작의 초상화를 디지털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가만히 서서 보고 있으니 크레이그 마틴 특유의 단순한 레이아웃에 강한 파스텔색이 입혀져 카멜레온처럼 아주 서서히 색상이 바뀌고 있었다. 1분 정도로 세팅되어 있었는데 역시나 작가의 환상적인 색상이 돋보인다. 이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현대 미술품이다.


작가는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미국과 파리에서 교육을 받았고, 미술뿐만 아니라 영문학과 역사도 공부했다. 문학과 역사와 미술을 같이 공부하다니, 정도를 걸었구나. 1973년부터 런던의 Goldsmiths College에서 미술을 가르쳤고 오랫동안 미술대학의 학장으로 있으면서 영국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인 Damian Hirst를 비롯한 YBAs (Young British Artists)가 탄생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기본적으로 영국이 현대미술의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크레이그 마틴은 Tate Gallery의 이사로 있으면서 영국 현대미술의 위상을 널리 알렸고, Freeze가 설립된 초기에는 앞장서서 예술가들에게 홍보하며 활동하였다.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을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다니 무척 반가웠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디지털 초상화 <웰링턴, 2014>


토마스 로렌스경 <1대 웰링턴 공작 아서 웰슬리, 1817>


일단 이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몇 가지 질문이 생겼다. 첫째는 영국 이외의 다양한 나라들에서 가져온 기념품들이 1층 방안에 가득한데 어떻게 수집하게 된 걸까. 둘째는 나폴레옹도 이 집에서 살았었나 싶을 정도로 나폴레옹과 관련된 그림이 많았다. 웰링턴과 나폴레옹은 적군의 관계인데 그 이상의 스토리가 있었던 걸까. 세 번째로, 귀하고 귀한 스페인 작가의 작품들이 비중 있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수집한 걸까. 이제 수수께끼를 풀어보자. 미술관을 다녀온 후에 거꾸로 역사 공부를 하며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은 언제나 재미있다.


앱슬리 하우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771년부터 1778년까지 고위직을 역임한 Apsley 경의 집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법관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 건축한 집이었기에 이 정도 수준이 될 수 있었나 보다. 이 저택은 서쪽에서 들어오는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나오는 첫 번째 집이었기 때문에 공식 주소는 아니지만 “Number One, London”  즉, 런던의 일번지라고 오랫동안 불리었다. 이 저택은 1805년에 매각되고 Richard Wellesley라는 사람이 매입하였는데 그는 웰링턴 장군의 형이었다. 그에게 재정적인 어려움이 생기면서 저택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때마침 성공해서 런던으로 돌아온 동생 Arthur Wellesley, 즉 웰링턴 장군이 넉넉한 가격에 매입하며 형을 도와주게 된다.


웰링턴 공작(1769–1852)은 유럽의 격동의 시기에 군 생활을 시작하며 60여 번의 전투에 나갔고, 웰링턴 전쟁에서의 승리로 나폴레옹을 퇴위시키며 영웅이 되었다. 그는 영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에서는 워털루 왕자, 스페인에서는 공작, 포르투갈에서는 백작 등의 칭호를 수여받으며 전 유럽에서 나폴레옹의 정복자로 칭송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온 유럽을 들 쑤신 나폴레옹 시대를 종식시켜 주었으니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감사했을까. 황제, 차르, 왕 등의 유럽의 통치자들은 앞다투어 감사의 선물과 트로피를 보내었고, 이렇게 선물 받은 그림, 조각품, 은제품, 도자기, 지휘봉과 검 등 3000여 점의 귀한 선물로 전시실이 만들어졌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옆에 큰 조각상이 있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의 전성기였던 1806년에 이탈리아 조각가 안토리오 카노바 (1757-1822)에 의해 제작된 나폴레옹의 대리석 조각상이다. 완성된 작품이 파리에 도착한 1811년에는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황제가 되어 있었다. 이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공개되었는데, 나폴레옹은 솔직한 사람이었나? 그는 이 작품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본인은 키가 작고 땅딸한 거에 비해 조각상이 현실감 없이 멋지게 제작되어서 민망했던 걸까. 나폴레옹이 퇴위된 후 1816년에 영국 정부가 이 조각을 사들이고, 당시 섭정 중이던 훗날의 조지 4세가 웰링턴 공작에게 이 조각상을 선물했다. 웰링턴은 나폴레옹을 존경했고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받아들였다고 한다. 실제보다 멋진 나폴레옹의 전신상을 굳이 왜 웰링턴에게 선물을 했을까? 웰링턴의 자존감은 더 높아졌을 거 같다.


안토니아 카노바 <평화를 이루는 화성 역의 나폴레옹, 1806>


2층에서는 나폴레옹과 그의 가족들 초상화도 여러 점 볼 수 있다. 웰링턴과 나폴레옹은 서로 만난 적은 없었다. 처음으로 워털루 전쟁에서 대적했음에도 웰링턴은 늘 나폴레옹을 존경한다고 표현했고, 그의 초상화도 직접 수집했다고 한다. 웰링턴이 프랑스 대사이자 연합국 점령군의 사령관으로 파리에서 지내던 1814년에 대사관저로 사용할 용도로 Hotel de Charost를 구매했다. 이 저택은 지금까지도 파리주재 영국대사의 공식 관저로 사용되고 있는데, 나폴레옹이 가장 아꼈던 여동생인 Pauline Bonaparte의 집이었다. 폴린은 이 저택을 웰링턴에게 매각하고 엘바섬에서 유배 중인 나폴레옹을 찾아가서 필요한 재정을 도왔다고 한다. 이후 웰링턴은 런던으로 귀국하면서 앱슬리 하우스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의 컬렉션 중에는 프랑스 역사화가 Robert Lefèvre (1755-1830)가 그린 폴린 보나파르트와 나폴레옹 부부의 초상화가 포함되어 있다. 폴린의 초상화는 웰링턴이 가장 아끼던 그림이었다고 한다.


Robert Lefèvre  Josephine 과 Napoleon


Robert Lefèvre <Princess Borghese, Pauline Bonaprte, 1806>


앱슬리 하우스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워털루 갤러리>이다. 세계사를 바꾼 이 승리를 기념하며, 왕실의 공작과 외국대사, 그리고 워털루에 참전했던 장군들을 초대해서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 매년 6월 18일마다 연회를 열었다. 그들의 연회 장면은 여러 그림에 남겨져 있고, 갤러리 내부의 모습도 배경도 담겨 있는데 지금과 아주 비슷하다.  <워털루 갤러리>에는 스페인 왕실 소장품 200여 점 중에서 83점이 전시되어 있다. 스페인 그림들이 런던까지 오게 된 스토리는 이렇다. 영국군은 1813년 6월 스페인 북부의 비토리아 전장에서 나폴레옹의 형이자 스페인왕이었던 조제프 보나파르트의 열차를 탈취하게 되고, 마차에서 200여 점의 넘는 그림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그림들은 조제프가 도망가는 와중에 스페인 왕실 컬렉션을 챙긴 것으로 액자는 없이 그림만 돌돌 말려져 있었다. 대부분의 그림은 상대적으로 작은 사이즈였는데 운반이 용이한 작품들로 급하게 골랐을 거다. 웰링턴은 이 작품을 스페인에 돌려주고자 하였으나 복위한 스페인 황제 페르난도 7세가 정중히 사양하며 스페인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아 공식적으로 웰링턴에게 선물하여 이곳에 소장되게 되었다. 이곳에는 무리요, 루벤스, 고야, 반다이크, 티치아노, 벨라스케스 등의 명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벨라스케스의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 1650>  <세비야의 물장수, 1622> , 고야의 <웰링턴 공작의 승마 초상화, 1812>를 놓치지 말자. 이 외에도 방마다 웰링턴이 직접 수집한 그림들과 화려한 그릇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다. 세계의 역사를 바꾼 웰링턴은 런던 내에도 여러 개의 동상이 있을 만큼 영국의 자랑스러운 영웅이다. 영웅을 영웅으로 인정하고 기념하는 문화가 멋진 거 같다.


워털루 갤러리


벨라스케스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 1650>                                    <세비야의 물장수,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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