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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율 Nov 15. 2024

나는 왜 아버지 간병을 해야 하는가?

종합병원 한 달 살기_첫째 날

  아버지가 피를 토하셨다. 놀란 엄마는 119에 전화를 하고, 형한테도 알렸다. 인근 대학병원으로 실려간 아버지는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20일 전 일이다. 아버지는 위암이 의심되었고, 검사결과 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80대 중반에 체력도 약화되어 암수술을 해야 할지 말지 결정하기 힘들었으나, 수술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수술 동의서에 사인했다. 중환자실에 계신 아버지를 보며 형과 나는 아무 결정권도 없이 판단을 병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실 앞에서 4남매가 5시간을 기다렸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하나 워낙 고령에 체력이 약하여 수술 합병증이 있을 수도 있다는 그리고 몇 가지 안 좋은 가능성이 있을 수 있음을 듣고 고개만 끄덕였다. 간호병동이라 면회도 쉽지 않았고 면회를 하려면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가 휠체어를 타고 로비로 나오셔야 했다. 병원에 입원 후 처음으로 아버지는 엄마를 봤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훔치셨다고 한다. 엄마 말로는 응급실로 실려가 며칠간 혼자 병실에 계실 때 겁을 먹으신 것 같다는 말씀이었다.  


"이 놈들이 나만 요양원 같은 곳에 갔다 놓은 건 아닌지 생각했을 수도 있다"는 엄마의 추측이다. 


그래서 겁나고 억울하고 아파 죽겠는데, 아들과 아내가 나타났으니 이젠 살았다는 안심을 갖게 되었을 것 같다. 이제 아버지는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 아니라, 가족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하고 억울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평생 죽도록 일하고, 자식 키우며, 부모님 동생들 뒷바라지 한 대가가 이젠 병원에서 내 몸하나 간수 할 수 없음을 인지하신 것은 아닌지...



  내가 간병인의 임무를 맡고 투입된 날은 11월의 첫날이다. 아버지가 간호병동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간병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지? 내가 간병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거동이 힘든 아버지의 병간호를 남한테 맡겨도 되는 건지 머리가 복잡했다. 


"4남매 중 그래도 내가 시간 여유가 많으니 내가 간병을 맞아보자." 이렇게 마음먹고 형한테 전화했다.

"형 간병인 구하지 말고, 한 달만 내가 간병을 해볼게"

"네가 할 수 있겠어?, 하는 일들은 어쩌고?"

"어, 우선 한 달만이라도 해보고, 어떻게 할지는 시간을 갖고 알아봐요. 내일 내려갈게."



  11월의 첫날 운필각엔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다. 잎이 떨어져 감만 대롱대롱 달린 누런 감나무가 괜스레 안쓰럽다. 감 풍년을 뒤로하고 아버지를 간호하러 가야 했다. 잘할 수 있을까? 낯선 공간에서 아버지와 함께 기한이 없는 날들을 지내야 한다. 걱정이 크다. 솔직히 두렵다. 그냥 마음 편히 먹자고 다짐하면서, "잘 먹고 활동하시게 하여 한 달 만에 퇴원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자."라고 노트에 적었다.  11월 만추를 집에서 보내실 수 있게 말이다.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봤다.

  첫째, 나의 내면에는 어떤 마음이 자라고 있을까? 아버지의 간병을 진심으로 원해서 하려는가? 간병비 때문에? 자식의 의무감 때문에? 아버지의 빠른 회복과 건강을 위해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효자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공명심 때문에? 아니면 글을 쓰고 싶어서? 왜 넌 아버지의 간병을 하겠다고 했니? 나한테 물어보는 질문이다.

  둘째,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얻어가려는가? 인내심, 모험, 부모님에 대한 공경심 또는 효, 불편함, 건강의 소중함, 고생하는 환자와 간병인과 의료진의 모습을 생각해 보는 것, 내일의 계획, 반성과 회고, 규칙적 생활로써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이심전심, 건강한 삶의 소중함 등등. 



  두렵다. 

  두려움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아버지의 건강 회복보다 내가 처한 현실에 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하루하루 간병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고, 돈 버는 일을 무기한 멈춘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어쩔 수 없다. 한 번쯤은 현실에 충실해 보자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병원에 오후 2시까지 가기로 했다. 아버지와 병원 한 달 살기가 시작할 것이다. 긴장되지만 잘할 수 있다. 아버지는 가을비가 오는지 알고는 계신지? 오늘이 11월의 첫날인지 아실까?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날씨 변화를 체감해야 한다. 오후 2시 81 병동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형이 먼저 와서 주의 사항을 듣고 있었다. 빼짝 마른 아버지의 팔다리, 눈이 쑥 들어가고 볼도 움푹하니 살이 빠져 보였다. 위 절반을 잘라 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려운 수술이 지나갔고 회복시간이다. 코에는 산소공급 줄이 끼워져 있고, 오른손 팔뚝에는 영양제 공급 주삿바늘이 끼워져 있다. 왼쪽 복부에는 오줌을 빼는 줄이 연결되어 소변 주머니가 침상에 결려있다. 배꼽 오른쪽에도 주먹 반크기의 둥근 바람 부는 모양의 주머니가 달려있다. 수술 시 내부에 고인 고름과 노폐물 등을 배출하는 장치란다. 배에는 수술자국이 20센티미터가량 있고 압박붕대를 감고 있다. 



  아버지와의 첫 대면을 잘하고 있다. 형은 인수인계를 마치고 일터로 갔다. 오늘 밤은 나 혼자서 아버지 옆을 지켜야 한다. 부담스럽다. 괜히 두렵다. 우선 소변 주머니를 한번 비웠다. 배꼽 오른쪽의 스포일러 모양의 주머니도 비웠다. 저녁식사는 거의 안 드셨다. 흰 죽. 아주 멀건 죽을 반절도 못 드셨다. 국과 5개의 반찬은 손도 대지 않았다. 식욕이 없는 것일까? 



  두 가지만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었다.

하나, 식사를 많이 드시게 한다.

둘, 운동량을 늘려서 식욕을 돋게 하고 다리 근력을 키운다.

  우선은 나오는 식사의 음식을 남기지 않고 드시게 하는 것과, 하루 3~4회 걷기를 실천하는 것부터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그 양을 점점 늘려가자고 내 마음을 다 잡았다. 한 달 이내에 건강을 회복하여 퇴원시키는 것이 내가 '종합병원 한 달 살기'의 이유다. 오늘부터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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