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에 처음 발을 디딜 때, 나는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그 매력적인 경치 뒤에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교통 체계가 존재했다. 내가 보내준 사진을 보며 한국의 친구들 사이에서는 우간다 도로가 마치 살아있는 것 같다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나는 그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느꼈다. 우간다 도로에서 운전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 것이 맞으니까.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는 차량이 다반사고, 오토바이 택시 ‘보다 보다’, 봉고 버스 ‘마타투’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도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신호등은 물론, 교통 신호가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중앙선조차도 대부분 지워진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혼란스러운 모습이 그저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의 도로가 가진 독특한 생명력에 감탄하게 되었다.
남편은 이러한 상황을 우려했고 끝까지 내가 운전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의 걱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서 운전면허 실기 시험을 볼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결혼 전, 면허 시험에서 무려 7번이나 떨어졌고, 결국 여덟 번째 시도에야 합격할 수 있었다. 그때 엄마는 면허시험장 문에 ‘이번에는 제발 붙어라’는 엿까지 붙여놓고 나를 응원해 주셨다. 그만큼 운전이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던 셈이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우간다에 오고 난 뒤, 한 번도 운전하지 못했다. 운전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던 나는, 우간다의 복잡한 도로에서의 운전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닐 거로 생각했다.
가끔 주변에서 “운전하지 않으면 너무 불편하지 않냐?”라고 물어볼 때마다, 솔직하게 대답하고는 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안전하다는 마음이 더 중요해요. 대신 남편이 운전할 때 옆에 앉아 바깥을 감상하고, 이국적인 문화를 느낄 수 있어 좋아요.” 하지만 가끔 남편과의 싸움이 있거나 바람이 쐬고 싶을 때, 운전하지 않는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직접 운전할 수 있었다면 자유롭게 바람을 쐬러 나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오곤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 학교 픽업하는 것도, 남편과 번갈아 가며 할 수 있는 일인데 그 부분이 아쉬웠다.
아무렴 어떠하랴. 보조석에 앉아 지나가는 가게와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곳에서의 삶을 즐긴다. 길가의 시장은 활기차고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하다. 모양은 바나나지만 초록의 마토케를 파는 상인들이 손님들과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고, 그 옆에서는 연한 노란빛의 고구마와 빨간 토마토가 연두색 플라스틱 바구니에 쌓여 있다. 각양각색의 과일과 채소들이 시장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옷, 신발, 가방은 물론이고, 새것은 아니지만 다시 빨고 다려서 판매하는 다양한 중고 물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시장 곳곳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각자 원하는 물건을 찾기 위해 눈을 반짝인다. 특히, 길가의 시장은 각종 천으로 가득 차 있으며,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패턴이 눈을 사로잡는다. 한쪽에서는 손으로 직접 만든 수공예품들이 진열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시장의 풍경 속에서 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수다, 그리고 활기찬 거래 소리까지 모두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은 맨발로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노는 모습이 마치 그들의 즐거움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그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그러한 모습은 나에게 우간다의 매력을 더해준다.
결국, 내 운전대는 남편 손에 맡기고, 대신 우간다의 아름다움을 나의 방식대로 느끼며 사는 것! 이렇게 혼란스럽고도 다채로운 우간다의 도로 위에서, 나는 운전하지 않음으로써 나만의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