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한 사람을 평가한다는 건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그 평가는 대부분 너무 쉽게 내려진다. 한 문장으로, 한 표정으로, 혹은 한 번의 행동으로. 그렇게 사람은 ‘그런 사람’으로 결론지어진다. 나 또한 그렇게 평가받았다. 그날 이후로 나란 사람은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를 잘 안다고 믿었던 이들이 고개를 저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지만, 입을 열면 열수록 더 진흙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소중하다고 여겼던 사람에게 나는 거짓말을 했다. 나하나 지켜보겠다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진심이 섞여 있었지만 결국 거짓이었다. 그 거짓의 시작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분위기, 놓치고 싶지 않았던 순간, 나를 향한 그 사람의 믿음에 대한 이상한 책임감 같은 것. 하지만 그런 말들은 변명에 불과했다. 이미 판단은 내려졌고, 나는 스스로 그 결론을 받아들여야 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미안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뿐이었다. 하루하루가 살아 있는 매장 같았다. 숨을 쉬는데도 흙이 목구멍으로 밀려 들어오는 기분. 눈을 감으면 온몸이 묶여 움직일 수 없었다. 인간이 인간을 매장한다는 게, 물리적인 죽음만은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말 한마디로도, 시선 하나로도 사람은 충분히 묻힐 수 있었다. 나도 그런 식으로 묻혔다.
그 시절 나는 여전히 예배에 나갔다. 주일마다 의자에 앉아 찬양을 부르며, 가슴 한쪽이 조용히 떨렸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덜컥거렸다.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걸까.’ 손을 들고 찬양을 하면서도 손끝이 식어 있었다. 모두가 눈을 감은 그 순간, 나만 혼자 이질적인 공기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잘못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건 단지 죄책감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어색해지는 일이었다. 내 마음이 어딘가에 걸린 채로, 몸만 그 자리에 서 있는 듯했다. 그때마다 같은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너의 잘못 보다 큰 은혜가 있다.” 그 말이 위로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너무 멀게 느껴졌다. 믿음이란 게, 그토록 어렵고 무거운 일임을 처음 알았다. 용서를 구하는 일보다, 용서받은 채 살아가는 일이 훨씬 힘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런 날들이 지나갔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시간이 정말로 흘러갔다. 어느 날 문득 창밖을 보니 비가 그쳤다. 그토록 길게 내리던 비가.
그렇게 삶은, 아무리 큰 죄책감도 조금씩 닳아가게 했다. 나는 그 일로 사람을 잃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와중에 새로운 사람도 얻었다. 나의 실수를 알고도 내 옆에 서준 사람, 변명하지 않아도 이해해 준 사람, 그리고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편이 되어준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다시 일상을 견딜 수 있었다.
사람의 평가는 결국 순간의 결론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그때의 잘못을 품고 있지만,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믿음이란, 완벽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움 속에서도 무릎 꿇을 수 있는 용기라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내 이야기’로 결론 내리고 싶지 않다. 글로 다 정리할 수도, 글로 다 덜어낼 수도 없으니까. 나는 아직 그 자리에서 찬양을 부르며 서성이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때의 떨림과 부끄러움, 그리고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나까지 모두가 내 결론의 일부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잘못된 결론으로 불려본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지만, 여전히 서보려 애쓴다는 사실만큼은, 내 결론의 일부로 남겨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