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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꽃 Dec 21. 2023

떼강도 들던 날

2017년 우간다에 와 처음 살았던 집은 30년 가까이 된 구옥이었다. 낡은 벽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하지만 집 앞에는 족구 하기 좋은 운동장과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잔디가 펼쳐졌다. 마치 숲에 안긴 것 같은 형상을 한 곳에서 숲이 주는 위안과 새소리를 모닝콜 삼아 평안함을 누렸다. 


그러다 코로나19로 팬데믹 시대에 접어들며 상황이 바뀌었다. 오토바이 택시인 보다보다(bodaboda, '보다'라고 부른다)는 우간다의 대표적인 대중교통, 특히 교통 체증이 심각한 수도 캄팔라에서는 누구나 애용할 수밖에 없는 수단이다. 문제는 보다 이용객이 현저히 줄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기 시작한 보다맨(보다의 운전사) 가운데 느닷없이 달려들어 사람을 한 대 치고 휴대전화나 돈을 빼앗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락다운으로 지역 간 이동이 제한되면서 생계가 어려워진 우간다 시민들의 불만이 외국인에게로 향한 것이다. 외국인 대상 강도 범죄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평화롭기만 했던 우간다에서의 삶이 불안한 나날로 뒤바뀌었다. 2021년 6월 남편의 "폴리스! 폴리스!"라고 외치는 소리에, 잠결에 꿈인가 하고 일어났다. 꿈이었으면 좋았을 그 시간이 우리에게 일어난 거다. 새벽 2시에 들이닥친 건 여러 명의 강도였다. 보통 집에 사람이 있으면 도망가는데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현관 철문을 긴 배척으로 뜯고 있는 그들과 남편은 대치 중이었다. 돈이 필요하면 주겠다 했지만, 작정한 듯 그들은 문을 부수는 데만 집중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남편은 누구누구에게 전화해 보라, 경찰에 신고해 달라 소리쳤다. 핸드폰 잠금을 풀어 보려는데 손가락이 마비된 듯 생각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두려움과 공포였다. 한밤 중에 전화를 받을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감사하게도 L선교사님과 연락이 닿았다. "경찰 좀 불러주세요. 강도가 문을 열려고 해요." 다급하게 상황을 전했다.


남편은 모기 잡는 스프레이를 잡고는 "성냥 줘 봐요!" 외쳤다. 현관에 달린 작은 문 사이로 배척을 넣어 문을 뜯으려는 강도들을 향해 스프레이에 불을 붙여 제지했다. 경찰이 오기까지 시간을 버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지만 만약, 정말 만약에 문이 열렸다면 강도들이 보복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아찔하다. 주안이는 자는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후에 물어보니 무섭고 추워서 쓰고 있었다고 했다. 예주는 남편을 돕는 내 모습을 오롯이 다 지켜봤다. 그러다 누구라도 달려와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까이 사는 L 목사님 이름을 크게 외쳤는데, 그 소리에 예주가 울기 시작해 '아, 내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멈췄다. 


이런 대치 상황이 10분도 채 안 되었을 때였다. 철문을 강제로 열려고 시도하던 그들이 갑자기 우르르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우리가 사는 컴파운드에는 총 네 가정이 산다. 그중 두 가정은 한국에 가서 그날은 우리와 L 목사님네뿐이었다. 대학 캠퍼스 안에 위치한 집이라 이런 위험한 상황에 소리를 지른다 해도 누군가 들을 수 없는 곳이었다. 강도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먼저 L 목사님네 철문 옆벽을 깨고 들어가 현금, 핸드폰, 컴퓨터 등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가방에 담고, 다시 우리 집으로 와 철문에 달린 작은 문을 부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철문이 쉽게 열리지 않자 부엌 창문을 뜯으려 했다. 조금만 흔들어 뜯으면 열릴 수준이었다. 남편은 급기야 가스 줄을 끊었고, 불을 붙이겠다고 위협했다.


때마침 가까이서 총성 세발이 들렸다. '경찰이 왔구나' 안도했다. 그제야 강도들도 하던 것을 멈추고 떠났다. 이것도 나중에 들었지만 강도들은 경찰의 총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컴파운드의 길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들어온 길이 아닌 소각장 근처 낮은 담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고 했다.


새벽 3시 30분. L 목사님 가정과 우리 집에 모여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1분 1초를 버티는 동안 빛을 얼마나 갈망했는지, 긴장한 탓에 화장실도 얼마나 자주 갔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밤에도 만났다며 좋아했지만, "도둑들 나빴어. 문 잠그고 있자, 또 오면 어떡해."라며 한 마디씩 뱉고 있었다. 아이들을 재우려 함께 누웠지만, 속이 울렁거리고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쿵쿵 뛰었다. 그렇게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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