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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즈 Dec 15. 2023

팀이자 라이벌인 우리들

선의의 경쟁의 의미

 이번학기도 어김없이 '중간발표'가 다가왔다. 졸업을 앞둔 학부 4학년과 석사 2학년들이 한 학기 동안의 연구를 정리하여 연구실 전체 세미나때 하는 발표이다. 일 학기가 끝날 때도 중간발표가 있었다. 미국학회에 나가기로 정해진 이후의 발표여서 교수님께 미국에 가서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준비했던 발표였다. 그리고 그 끝은 내 유학생활의 최대 위기였던 '포스터 사건'의 발단이었다. 미국 학회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지금에서야 '그런 일이 있었지'하고 추억처럼 얘기할 수 있는 것 같다. 저번 중간발표의 주인공이 나와 내 동기들이었다면 이번 중간발표의 주인공은 석사 2학년들이었다. 학부졸업논문은 사실 연구내용보다는 본인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연구를 했고 정리했느냐에 초점이 맞춰지기에 어느 정도 형식만 맞춘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물론 우리 교수님의 기대치는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석사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석사 학위논문은 정말 제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된다. 문제는 올해 우리 연구실의 석사 2학년인 15기들의 상태가 영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중에 빛나는 에이스인 G선배는 문제없이 중간발표를 마쳤지만, 나머지들은 4학년인 내가 봐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후배들의 말이 안 나오는 상태를 보고 K상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고 G선배에게 부탁하는듯한 말을 했다.


"동기들이 팀이기도 하고 라이벌이기도 하겠지만 함께 뭉쳐서 잘 마무리해 보도록 해"


 



 어쩌면 뻔한 말일지도 모르는 K상의 한마디에 생각이 많아졌다. 나와 내 동기들은 팀일까 라이벌일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연구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 동기들과의 인간관계가 가장 힘들었다. 나와 내 친구들과는 정반대인 외향적인 성격의 전형적인 스포츠계 학생들이었고 교수님의 대놓고 이어지는 편애는 나를 점점 조급하게 만들었다. 어찌 되었든 나보다 학부 성적이 좋은 애들이었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저들처럼 일본어를 구사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 절대 넘지 못할 벽으로 느껴졌으니 말이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 했을 때는 연구실을 옮길 준비까지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런 조급함과 불안감이 나를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나는 내 인생 최대의 승부욕을 느꼈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로 편애받는 저들을 어떻게든 이기고 싶다는 생각에 미친 듯이 달린 한 해였다. 미국 학회도 마치고 한숨 돌린 지금에서야 차분히 뒤를 돌아보니 나 자신도 내 동기들도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일 년 동안 함께 준비해야 하는 프로젝트도 많았고 행사도 많았다. 한 번은 다 같이 열차를 타고 지방으로 출장을 가야 했다. 나는 그다지 흥미가 없는 출장이었다. R군도 없고 가장 스트레스받게 하던 동기들과 가야 하는 출장이었다. 미국학회도 얼마 남지 않았었기에 꽤 부담스러운 일정이었다. 그러나 동기들의 반응이 사뭇 의외였다. 다들 연구실 돈으로 여행을 가는 기분이라고 신나 했다. 그리고 동기한명이 다가와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석사들이랑 같이 안 가서 좋아! 석사들이랑 같이 가면 유즈쨩 뺏기잖아"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듣고 보니 어디 가게 되면 거의 R군이 있는 석사들과 함께였던 것 같다. 아무래도 석사 1학년들이 학부 동기니까 더 편했었다. 여름합숙 때, 나고야역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도쿄로 돌아가자는 동기들에게 석사들과 돌아가기로 했다고 단칼에 거절하기도 했었다. 이런 장면들이 하나하나 눈앞을 지나가면서 그때마다 동기들의 표정이 서운해하는 표정이었음이 떠올랐다. 잔뜩 가시를 세우고 있던 몸에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나를 '우리'라고 생각해 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한마디 한마디 조금씩 쌓이는 그 말들이 나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어느새 동기들과 있어도 마음이 편안한 순간들이 생겼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교수님과 연구실 사람들에게 나의 정당성을 보여줘야 하는 입장이었고 끝없이 불안했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연구를 해도 저들이 조금 맘먹고 하면 금방 따라 잡힐 듯 느껴졌다. 그들이 어느 정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불안해하는 나를 보고 R군은 전혀 걱정할 게 없다고 했었다. 선배로서 보면 내가 압도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워낙 R군과 친한 친구여서 그런지 그 말이 제대로 머릿속에 들어오지 못했다. 어찌 되었든 불안감을 연료로 미국 학회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나에 대한 교수님의 평가는 정말 좋아졌다. 이제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동기들과 작은 송년회를 했다. 동네 선술집에서 생맥주를 한 모금 들이킨 후 한 동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자기보다 잘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열심히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내 발표자료들을 보면서 본인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이다. 내가 좋은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주고 있다고 말이다. 기뻤다. 우선은 내가 연구실 안에서 좋은 역할 하나는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기들에게 인정받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보고 동기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열심히 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 또한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어주고 있다.


 K상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라이벌이자 3년을 함께할 팀이었다. 선의의 경쟁의 의미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더 이상 경쟁을 무서워하지 않을 거다. 두 팔 벌려 환영까지는 못하겠지만 인생에 좋은 자극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J리그 결승전. 처음가본 축구장이다. 졌지만 즐거웠다!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ㅠㅠ

-유즈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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