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중 가장 허무하게 간다는 마지막 사사분기가 시작되었다. 이로써 나의 마흔도 곧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언가에 떠밀리듯 선시장에 나와 어찌 어찌 결혼을 했고 얼떨결에 남자아이 둘을 낳았다. 아이를 낳으면 좀 강해질 줄 알았는데 나이가 무색할만큼 마흔에 애가 둘인 아줌마가 되어도 나의 멘탈은 그저 약하디 약할 뿐이다.
나만 그런걸까, 육아란 원래 그런 것일까, 머리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린 아이들에게 오늘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설거지 하는데 옆에서 물을 쏟았다는 참 별 것 아닌 일로 말이다. 하필 아이가 물을 쏟기 직전엔 내가 유리컵을 깨트렸고 신경이 바짝 곤두서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굳이 그렇게 소리를 지를 일이었나 반성해본다. 고작 다섯살 밖에 안된 아이인데. 그만한 실수는 언제나 할 수 있는 미숙한 아이라는 것을 잊은걸까. 아니 사실은 아이를 핑계 삼아 나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던게 틀림없다.
나의 미성숙함을 감추려고 아이를 도구삼아 소리를 내지르고 화풀이를 했다는 것이 지금의 나의 문제이다. 왜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는 없는 것인가. 왜 좀 더 교양있고 인자하고 따뜻한 엄마가 될 수는 없는 것인가.
7년차 엄마지만 내공이 부족한 나로서는 살림이나 육아나 인간관계 모두가 여전히 어렵다. 특히 아이와 나의 관계, 나와 남편과의 관계에서 오는 크고 작은 갈등이 내겐 가장 큰 숙제이다. (아 혹시나 누군가에게는 내 이야기가 그저 흔하고 진부한 일상의 하소연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라도 나 자신과의 대면을 해보는 것이 그 숙제를 풀어가는 하나의 시발점이 될 수 있겠다 싶어 다시금 글을 쓰기로 했다.
이 와중에 남편은 나에게 “새벽에 안자고 뭐하냐”고 묻는다. 내가 그나마 이렇게라도 해야 숨이 쉬어질 것 같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켜야할지 몰라 그저 입을 닫고 말았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엄마의 숙명이라면 그 전에 나는 어린 나부터 먼저 키워야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내 안에 어린 내가 여전히 불안과 외로움속에서 자라지 못한 채 있다면 나의 아이들은 뭘 보고 배울 것이 있을까.
글을 쓰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나 자신이 치유되고 성장할 수 있다면 나는 나를 위해, 우리 아이들을 위해 잠을 줄여서라도 이렇게 끄적거려 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