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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 양윤희 Jun 23. 2023

나타샤 왈츠

코로나시대의 메타픽션

*나타샤 왈츠     

   워커 에반스의 사진전이라고 했나? 옥현은 서울에 온 지 3주 정도가 지나서야  연락을 했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 방울 할머니의 장례식에도 아침나절 이슬 맺히듯 코만 비추고 사라지더니...... 어릴 적 신당동에서의 추억은 삶에서 없다는         듯......’

   옥현이 열세 살 초겨울에 외가인 신당동을 떠나 친가 조부님과 미국으로 간 후 이십 대 초반 까지는 가끔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서 나는 남편의 직장일로 중국으로 가게 되고 옥현은 캐나다 계 미국인 영화감독과 뉴욕에 자리를 잡아 서로를 잠시 잊었다. 언젠가 신문에서 그녀가 화가에서 사진작가로 전향했으며 특이한 전시회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활짝 웃고 있는 프로필과 기묘한 사진들이 마치 처음 보는 물건을 대하듯 낯설었다.

   ‘선녀도랑 달 뜬 십우도를 그린다더니 왜 사진으로 전향했을까? 영화감독이라는 남편의 영향을 받았나?’

    만나면 자세히 물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도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는구나......’ 

    우리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만난다는 것은 사실 만남이라는 현재의 사건을 시간의 역으로 펼쳐놓은 것임에 다름 아니다. 우리에겐 그리움이나 기다림이란 사실 없다. 그건 그냥 생각이라는 찰나에 로맨틱한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다. 만난 후에야 사후적으로 나의 생각이 그리움이었는지 망상이었는지가 드러난다. 인간은 사유조차도 실상은 결과론적인 것이다. 시간을 딛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과거를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라는 감정은 동전처럼 쩔렁거리지만 그 소리가 제 값어치를 할지는 지금이 아닌 시간 저편에 있다.

   어릴 적 방울 할머니의 신당에서 진분홍 홍옥춘을 양 볼이 메워져라 빨아먹고 코를 찡긋거리며 웃던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방울 할머니의 장례식 말고는 한국에 오지 않았던 그녀가 드디어 서울에 온 것이다. 옥현은 워커 에반스의 사진전이 끝난 직후에‘빛나는 것들’이라는 전시회를 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아마도 미리 전시장의 구도를 알아보려고 약속 장소를 이곳으로 잡은 것 같았다.     ‘빛나는 것들’이란 무엇일까, 별과 달일까? 그녀의 눈은 선녀도의 색감들에 녹아들지 않았던가?       

            


            눈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고 눈의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나는 거리로 나선다. 내 눈은 굶주렸다. -워커 에반스     



빌딩 앞 로비에 워커 에반스의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흑백의 고즈넉한 사진들이 시선을 끈다.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옥현이 미소를 지으며 반긴다.

      “그래...... 네가 이렇게 유명한 사진작가 인 줄은 몰랐어, 왜 그동안 연락이   없었나 했더니 혼자서 잘 나가고 있었네?”

      “잘 나가긴 뭘 잘 나가니. 외로워서 사진 찍는 건데......”

외로움이란 단어 때문에 긴 시간의 소원함이 어릴 적 산신당 댓돌 위에서 공기놀이를 하던 친근함으로 바뀌었다. 인간은 혼자서만 소외된 감정을 맛보기에는 너무 사악하다. 이왕이면 내 옆의 사람도 나와 같이 외롭기를......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다. 처음엔 쓸쓸해 보이던 친구의 미소가 점차 소리 내어 웃는 공감으로 바뀌고 그 여운은 언제나 그렇듯 버들강아지처럼 보드랍고 따스했다.  

      “너는?”옥현이 물었다

      “그냥저냥 지내! 우리 나이엔 다 조금은 외롭지...... 너도 알다시피 내 꿈은 선녀도 안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는 거였는데 삶에 치어서 꿈은 흐릿해지고 마치 아주 중요한 뭔가를 잃어버리고 허전함에 안절부절못하는 발 탄 강아지 같아.” 

      “발 탄 강아지? 그거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네.”

그 말은 방울 할머니가 하루 종일 발이 새까맣도록 종종 거리며 맨발로 뛰노는 우리들을 빗대어 야단치실 때 쓰던 비유였다. 그렇게 퉁박을 주시고는 늘 따뜻한 양은 대야에 발을 씻겨주셨던 것이다. 옥현과 나는 한 참을 웃었다. 왜 삶은 늘 발 탄 강아지처럼 우리를 허둥대게 만드는 걸까.

      “지금부터라도 쓰면 되잖아?”

      “...... 잊지는 않았지...... 그런데 뭘 쓸까?”

꿈을 잊은 건 아니었다. 세월이 오래 흘렀고 무엇보다 재현하고 싶은 감정적 흘러넘침을 받아 줄 대상이 없었다. 서사 욕망이 어느 한 지점에서 석고처럼 응결되어 꽉 막혀있는 듯했다. 살면서 보니 할머니 말씀대로 삶은 생각처럼 그리 길지도 그리 감동적이지도 않다. 옥현이 눈을 흘기며 나를 쏘아본다. 그 눈빛 속엔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 듯 보였다.

      “지난가을에 뉴욕 맨해튼에서 사진전 열었어.”

      “그래?...... 자랑하는 거야?”웃음이 스며 나왔다.

      “뭘 찍었는데?”

      “나무....”

      “나무?”

      “응, 빛나는 것들이 나무야...... 신당동 산신당 선녀도 안에 걸쳐 있던 도화 나무 생각나? 빛나 보였어. 나한테는 불이 밝혀진 듯......”

      “...... 새들이 즐비하게 늘어서고 진홍색 천도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린 나 들?” 

      “맞아 천도복숭아가 마치 백열전구 같았지.”

      “그런 영감의 사진들로 세계 백대 예술가 대열에도 끼었잖니...” 버들강아지가 코를 찡긋거렸다. 

      “서울에 「빛나는 것들」... 그걸 전시하러 온 거였구나!”

      “그래...... 여기 미술관에서 초청을 했거든. 그리고 다른 목적도 있어.”

      “상이가 좀 보고 싶어서......”  

      “상? 우리 초등학교 동창, 상? 그 신당동 윗동네 일본 집에 살던?

      “응......”

옥현이 수줍은 듯 나를 바라본다. 만감이 교차하는 이상한 순간이었다. 

      “상이를 만나서 무얼 하고 싶은데?”

      “...................”옥현은 잠시 침묵을 했다.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어. 실은 상이랑 춤을 한 번 추고 싶어. 나타샤 왈츠에 맞추어서.”

      “그게 무슨 말이야? 상이랑 왈츠를 추고 싶다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옥현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상이는 내가 번호표를 뽑아서 우리 학교에 입학한 초등 동창 아니던가?

    ‘옥현이 아직까지도 상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구나......’

어떤 마음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사적인 것은 사적인 것으로 놔두기로 했다.

    “빛나는 것들이 나무랑 무슨 상관인데?”나는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영어로 'mindfulness'라고나 할까, 그런 나무 말이야, 나무다운...... 아주 나무다워서 꽉 찬, 그래서 번뇌가 없는...... 빛나는 느낌. 선녀도에 있던 나무들이 우리에게 주던 그 충만함 같이” 

    “나무가 mindfulness 한 상태라니, 정말 굉장하구나.” 

    “나무가 도를 닦는다는 거야? 잎만 무성하면 꽉 찬 거 아냐? 빽빽하면?”

    “아니야, 그건 물리적인 충만함이고 내가 찍은 나무들은 앙상한 것도 있어,  텅 빈 충만함도 있거든!”

    “..................”

    “그게 보여? 무슨 소리야?”

    “전시회 때 보면 알아.”    

     옥현의 입가에 고요한 미소가 젖어들었다. 하지만 그 미소 끝에는 어떤 이야기가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너는 이루고 싶은 원이 뭐야? 꿈이라도 좋고?”

     원? 꿈이라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주제였다. 실은 포송령처럼 신비로운 이야기를 쓰면서 작가의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이제 상관없는 푸념이 되었다. 그런데 옥현이 상이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갑자기 귓가에‘중천에 두 달 뜨면 그놈을 만나러 가도 좋다.’라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걸 떠올리자 입가로 쇤 소리의 웃음이 빠져나갔다. 그런 쇠 못 같은 저주를 풀 방법이 어디에 있나! 어떻게 하늘에 두 달이 뜨느냔 말이다. 그건 조건이 아니라 금지였다. 

     “난 우리 할머니와 네 조모인 방울 할머니의 뜻에 따라 명을 지키며 조신하게 살아왔어. 우리 할머니의 유일한 바람은 내가 건강하고 평온하게 향유와 복덕을 누리는 거였으니까. 재밌게, 책이란 책은 다 보면서, 그냥 재밌게 남은 내 삶을 누릴 거야. ”

    “누가 재밌게 살지 말래? 그냥 써봐, 생각나는 대로.......  할머니들은 할머니고 우리는 우리잖아. 꿈을 이뤄야지, 그게 윤리적이지.”

     “넌 이루었어?”

     “이루었잖아! 예술가가 되었고 산신당의 나무들과 한 약속도 지켰잖아. 물론 그림이 사진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이랑 나타샤 왈         츠에 맞춰서 한 번만 춤을 춰보고 싶어.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서 말이야. 사실 내가 유일하게 놀러 가던 집이 상이네 잖아. 은이 언니와 고무줄도 하고 그림을 배우던 그 시절이 내게는 노스탤지어를 일으키는 마음의 고향이야. 너도 알다시피 친구들이 내가 점쟁이 손녀딸이라고 얼마나 놀려 댔니. 향 내 난다고 옆에 오지도 못하게 했잖아. 그런데 상이는 달랐어. 내게 너 만큼 좋은 친구였어.”

그랬다. 방울 할머니의 신당에서 멀지 않은 윗동네에 상이네 집이 있었다. 상이네 가족들은 유순하고 따뜻했다. 옥현이 언제고 놀러 갈 수 있는 유일한 이웃이었다.

   “춤을 다 춘 후에 한 번만 꼭 안아보는 거야. 영원의 시간인 듯 길게 상이 눈을 들여다보면서 어렸을 때 진심으로 대해줘서 고마웠다고....... 그게 내 원이야. 그 이상도 이하도 없어. 그 꿈만 이루면 뉴욕으로 돌아갈 거야.”

   ‘아! 나타샤 왈츠. 우리 6학년 가을 운동회 때 춤 곡 말이구나.’

옥현이 왜 그 말을 했는지 이제 기억이 났다. 

   보헤미안처럼 자유분방하던 담임 선생님이 기억났다. 방송 반을 맡고 계셨고 늘 활동적으로 무언가에 최선을 다 하시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잊을 수 없는 건 선생님이 엽기적으로 로맨틱한 분이라는 것이다. 춤과 음악, 사진을 좋아하셔서 늘 니콘 카메라를 둘러메고 반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사진으로 담아 주셨다. 특별 활동 시간에 음악실로 내려가 에델바이스, 로키의 봄, 내 사랑 보니 같은 외국 곡들을 배웠다. 화음을 넣고 돌림노래를 부르거나 ‘사냥꾼의 합창’ 같은 활기찬 노래를 부를 때면 우리들 각자는 한 개의 음표가 되어 오선지의 콩나물처럼 방긋방긋 고개를 움직였다. 노래가 하모니를 이루어 낭랑하게 울려 퍼지면 어린 천사들의 향기가 허공을 날아다니는 듯 황홀했다. 선생님은 가끔 짓궂은 데가 있으셔서 어느 정도 알걸 아는 우리들을 당황케 하셨는데 짝꿍을 정하는 월요일은 특히 긴장이 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주는 여학생은 앞으로 두 칸, 남학생은 뒤로 두 칸을 움직여 짝을 맞추고, 어떤 주는 여학생들은 모두 교실 뒤쪽으로 나가 있다가 한 명씩 자신이 좋아하는 남학생 옆에 가서 앉으라고도 하셨다. 키가 작아 맨 앞에 앉은 옥현은 앞으로 두 칸을 가기 위해 맨 뒷줄로 가방을 옮겨야 했는데 키가 큰 상이는 뒤로 두 칸을 가기 위해 앞자리로 와야 했으니 늘 그녀와는 어긋났다. 어차피 학교에서는 둘 다 절대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월 가을 운동회를 앞두고 왈츠곡이 정해지던 날 담임 선생님은 파트너를 정하는 일에 또 장난기를 발동하셨다. 

   “너희들은 이번 가을 운동회를 마지막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친구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포크댄스가 아니라 나타샤 왈츠를 추기로 했으니 모두들 잘 연습해야 한다. 왈츠는 사분의 삼박자야. 쿵작작 쿵작작 알지?” 교탁을 두드리시며 쿵작작을 외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타샤 왈츠는 수업이 시작될 때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시작종이었다. 물론 앞부분만 잠깐 나오고 곧 꺼지지만 늘 듣는 멜로디라 졸업을 앞둔 우리들에겐 의미 있는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자. 파트너를 정해야 하는데, 오늘은 ‘우연’을 테마로 정해보자. 여학생들의 이름이 담긴 바구니를 교탁 위에 올려놓을 테니 남학생들은 한 명씩 나와서 쪽지를 뽑은 다음 크게 여학생 이름을 외치고 자기가 뽑은 여학생과 왈츠 연습을 하는 거다. 알겠지?”    

   남학생들이 한 명씩 교탁으로 나가 이름을 외칠 때마다 반 아이들은 엄청 소란을 피우며 웃어댔다. 다들 마음에 둔 좋아하는 짝이 있었기에 이런 무작위의 제비 뽑기는 흥미진진했다. 이상하게도 정말 얼토당토 안 한 파트너들이 생겨났다. 평소 엄청 잘 싸우는 애들이 한 쌍이 되기도 하고, 키가 제일 큰 여학생과 제일 작은 남학생이 짝을 이루기도 하고, 마지막엔 여학생이 한 명 부족했기에 남자 애들 둘이 파트너가 되었다. 웃고 소리치며 파트너 정하기가 끝날 무렵 상이가 쿵쿵거리며 교실 앞쪽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맨 앞줄에 옥현의 이름을 뽑은 영준이에게 자신과 쪽지를 바꾸자고 말하는 것이다. 반 아이들은 모두 깔깔 웃다가 숨을 죽이며 담임 선생님 눈치를 살폈다. 원칙을 중요시 여기셨던 선생님은 조금 언짢으신 표정을 지으시더니 뭔가를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왈츠가 끝나자마자 차전놀이를 해야 한다. 맨 앞에서 키를 잡는 남학생과 깃발 잡이는 왈츠를 출 수가 없어. 삼각대랑 깃발 준비 때문에 미리 나와 있어야 해.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말이다. 상이는 키잡이를 해야 하니 왈츠를 못 추겠는걸?”

   순간 상이의 실의에 빠진 얼굴과 옥현의 부끄러워하던 모습이 마치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하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순간 프로이트의 책 내용이 떠올랐다. 기억하기 싫은 사건이나 극복할 수 없는 인식은 스스로 망각의 기제에 넣어 잊어버리려는 인간의 본능 말이다. 하지만 그 기억은 무의식 어디엔가 진득하게 눌어붙어 있다가 언제고 튀어나와 우리의 현재를 자신도 모르게 옥죄지 않는가 말이다. 마치 얽힌 실타래를 토해 내는 것처럼 위가 갑갑해지며 억누를 수 없는 무거움이 간장을 압박했다. 옥현도 나도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 앞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난? 난 아저씨를 한 번 만나보고 싶은데 중천에 두 달이 뜨는 그런 마법의 날이 언제 와?”  

     옥현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어릴 때 공부 가르쳐주던 그 아저씨? 성림 할머니가 말한 중천에 두 달 뜨는 밤을 기다리고 있는 거야? 지금?”

    옥현이 코에 주름을 지우고 깔깔깔 웃었다. 그녀도 기억을 하고 있는 듯했다. 뉴욕 사립 고등학교에 막 입학 하면서부터 부쩍 서로의 마음을 담은 편지가 홍수를 이루지 않았었나? 답장을 보내면 다시 그 답장을 받는데 한 달 정도가 소요되던 촌 티 나는 시절이었다. 

    “그건 아저씨와는 맞지 않는 인연이니 만나지 말라는 얘기 아니었을까?  너도 그렇게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런 날이 오기를 진짜 기다리고 있단 말이니? 이렇게 많은 세월이 지난 후까지?”

     나는 긴 한 숨을 한 번 쉬고 나서 버들강아지를 똑바로 쏘아보며 말했다.

    “네가 상이랑 왈츠를 추고 싶다고 하니까 나도 뜬구름 같은 할머니 말이  떠오르잖니! 방울 할머니나 우리 할머니가 애매모호한 방편을 써서 말하는 걸 들어봤어? 직선적인 분들이야. 안 되는 일은 안 된다고 하실 분들이지! 중천에 두 달이 또렷이 보이는 날 그 녀석을 만나러 가라고 비유를 드실 분이냔 말이야! 지금도 이해가 안 가, 모르겠어.”

    “그건 그런데, 어떻게 두 달이 뜬 단 말이야?”옥현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저씨 소식은 알아? 대학원 마치고 국비 유학생으로 독일로 갔다고 하지 않았었니?”

    “그랬지. 연구단지에 있다가 독일로 공부하러 갔는데 아직 있는지 아니면 돌아왔는지 모르지.” 

   고모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엔 소식을 들을 길이 없었다. 게다가 일 년 중 반은 베이징에서 보내야 했기에 그에 대한 그리움과 일상의 현실이 같은 장르에서 만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는 그저 상상의 세계를 덮고 있는 한 켜의 공간이었지만 사랑에 관한 한 언제고 한 번은 돌아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의 짐이었다. 옥현이 생각에 빠진 나를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누구보다 손녀딸을 사랑하고 믿어주던 할머니인데 애매모호한 서사로 상황을 모면하실 것 같지는 않구나. 그렇지만 밤하늘에 어찌 두 달이 뜬 단 말이니? 일식이나 월식으로 가려지는 일은 있겠지만 두 개의 달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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