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기운이 완연하게 나타나는 시기다. 절기 백로 때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한다. 이 무렵에는 늦더위가 물러간 뒤라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백로 전에 서리가 내리면 좋지 않다고 했다. 논에 핀 나락은 적어도 백로가 되기 전에 여물어야 한다. 이때까지 패지 못한 못한 벼는 더 이상 크지 못한다고 했다. 서리가 내리면 찬바람이 불어 벼의 수확량이 줄어든다. 백로가 지나서 여문 나락은 결실이 어렵고 부실하다.
아침 운동을 시작한 지 몇 달이 되었다. 이제는 몸에 배어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정해 둔 아침 시간이 되면 잠에서 깬다. 현관문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층으로 간다. 아파트 사이 길을 따라 걷다가 계단을 마주한다. 계단 맞은편 길에는 아침에만 채소와 과일을 파는 장사꾼이 두셋 있다. 이곳을 지나면 공원이 이어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인다. 빠른 걸음으로 학교 정문을 지나 작은 도서관 입구로 접어든다. 두 개의 아파트 단지 사이 휑하던 공간에 들어서 있다. 가까운 곳에 작은 도서관이 있어 유용하게 이용한다.
도서관 옆의 공간은 작은 화단을 꾸미고 여러 가지 운동 기구를 설치해 놓았다. 아파트 사잇길에 갖가지 나무가 자라 그늘을 만들어 준다. 자동차와 같은 소음이 없기에 줄곧 이용해 왔다. 그동안 비슷한 시간에 운동하러 온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간혹 며칠 동안 만나지 못하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궁금하기까지 하다.
십 여 개의 운동 기구는 아침 시간 몸 단련하기에 그만이다. 늘 운동 기구 이용 순서는 정해져 있다. 팔과 어깨 근육을 풀고 다리 운동으로 옮겨간다. 다른 기구는 두 개씩 놓여 기다림 없이 이용할 수 있다. 하늘 그네는 고장이 나 관할청에서 수거해 간 뒤 새로 설치가 되지 않아 한 개뿐이다. 다른 사람이 이용하고 있을 경우 차례를 기다린다. 옆에 있는 십 여 개의 운동 기구를 모두 활용하고 돌아왔는데도 하늘 그네는 다른 이가 차지하고 있다.
아침 시간은 여유가 없다. 한 사람이 아직도 머물러 있다. 삼십 여분 째 하늘 그네를 떠나지 않고 있다. 인내심에 한계가 생겨 다가가 ‘제가 이용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본다. 돌아온 대답은 아직 더 해야 된단다. 대답을 듣고 계단을 활용한 다리 운동을 한 후 다시 다가가 ‘얼마를 기다려야 할까요’했더니 못마땅한 듯 아직 계획한 시간이 되지 않았단다. 하늘 그네 이용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주민을 위한 체육 시설이 빠른 시간에 수리되지 않았다. 아침 시간에 하나뿐인 운동 기구를 한 사람이 긴 시간 독차지 하고 있다. 기분 좋게 운동하러 왔다가 오히려 마음이 언짢아졌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나만 만족하면 그만이지’ 하는 모양새다.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잘못된 것일까? 공동으로 이용하는 시설을 혼자서 긴 시간을 쓰고 있다. 다른 운동기구는 전혀 이용하지 않고 한 가지만 운동을 한다. 그럴 것이면 자신의 집에 독립적으로 설치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운동하는 시간을 다르게 하여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게 할까 보다. 주변에 사는 사람과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싶지는 않다. 함께하는 세상살이다. 요즘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이 대세라지만 안타깝다. 한 번쯤 나를 내려놓고 남을 배려하는 자세가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