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아파도 러닝 (4) : 여행 가서 달리기

오키나와 나하에서의 2026년 첫 러닝

by 마고

달리기에 재미를 붙인 뒤 제일 먼저 여행을 간 곳은 튀르키예였다.

수도인 이스탄불이야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해도

바닷가 도시인 안탈리아나 잠깐 들린 그리스의 평화로운 섬 로도스는 달리기 딱 좋아 보였다.


짐을 쌀 때부터 러닝화를 챙기고, 무릎 보호대를 챙기며 해외에서 뛰는 기분은 어떨까? 잔뜩 기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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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럴수가.

튀르키예에 도착한 지 3일 째 되었을까, 무릎에 염증을 크게 얻었다.

뛰기는 커녕 걷는 것도 힘들 정도로 아팠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여행지에서는 꼭 달리리라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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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말부터 26년 초, 연말연시를 오키나와에서 보냈다.

서울보다는 확실히 따뜻했지만 중간 중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차를 렌트해서 남부와 북부를 먼저 여행하고 여행 끝날 즈음에는 공항이 있는 나하 시내에 머물렀다.

나하에 있는 동안에는 꼭 달려야지, 마음 먹고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오랜만에 날이 풀려 일몰이 선명했다. 이렇게 날이 좋으니 내일은 뛸 수 있겠구나, 기대에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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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한국에서 야무지게 챙겨온 무릎 보호대와 레그 워머, 러닝화를 신고 숙소를 나섰다.


오키나와 나하 시내를 가로지르는 국제거리는 길이가 무려 1.9km.

국제거리의 동쪽에 있는 숙소에서 출발해 국제거리 중심이 아닌 철도가 지나는 외곽을 따라 달리면 2.5km 정도 거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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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토역에서부터 출발해 미에바시역을 지나쳐 겐초마에역까지.

나하의 지상철인 유이레일 아래로는 작은 천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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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시내 중심지이다보니 횡단 보도도 많고 달리기 힘든 구간도 있었지만 동네를 구경하며 달리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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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에는 뛰는 사람들이 참 많다.


시내 중심이 아니라 북부, 남부에도 찻길 따라 묵묵히 후드를 눌러 쓰고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특히, 혼자 달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 사람들이 무척이나 부러웠고, 드디어 소원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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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5km 정도 뛰었을까,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오키나와 머무는 내내 날이 흐리긴 했어도 비를 맞은 적은 없었는데.

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비를 가지러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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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비를 맞고 달리려고 했지만 비, 바람이 감당 안될 정도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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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가 멎을 때까지 건물 아래에서 기다리려 했지만 생각보다 비가 오래 내려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으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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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거리 서쪽 끝에 도착해서 오키나와의 명물 a&w 버거와 루트비어를 먹었다.

바람이 좀 덜 부는 것 같아 음식점에서 나왔는데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국제거리를 지나 살살 걸어가려고 했는데 꼼짝없이 유이레일을 탈 수 밖에 없었다.


겐초마에 역으로 향하는 길에 류큐 전통 공연 에이사 공연팀을 만났다.

바람이 아무리 많이 불어도, 무거운 북을 휙휙 돌려가며 가벼운 몸짓으로 북을 치며 공연을 하고 있었다.

류큐와 우리나라의 역사가 비슷해서 그런지, 류큐 전통 음악인 시마우타와 전통 춤 에이사 모두 정감이 간다.


해외에서의 첫 달리기인데 비가 내리다니.

달리는 내내 연신 투덜거렸지만 덕분에 에이사를 볼 수 있었다 생각하니 비바람에게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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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외 달리기이자, 2026년의 첫 달리기이기 때문에 딱 2.60km를 맞춰달렸다.

26년에도 부상없이 더 많이, 더 즐겁게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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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날 아침, 왜인지 아쉬워 나하 중심가를 벗어나 쓰보가와 역으로 향했다.

쓰보가와 역에는 만코 습지와 이어지는 만코 공원, 그리고 나하에서 가장 큰 공원인 오노야마 공원이 있다.


도심만 달린게 아쉬워 출국 전 조금이라도 시간 내서 공원을 달려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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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전, 출근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뛰는 기분이란.

공원에 사람은 거의 없고 햇빛과 온갖 열대 식물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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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원에는 유난히 흰색 검은색 얼룩 무늬 고양이가 많았다.

오키나와 여행 내내 고양이들을 많이 만났지만, 마지막 날에 만난 친구들은 왠지 잘 가라고 배웅 해주는 것 같아 더 정감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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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우리한테 관심도 없더니 주변을 몇 번 서성이며 따라오다가, 어느 순간 자리에 앉아 우리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금방 또 만나, 야옹아.

고양이는 알아듣지도 못할 한국말로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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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코 공원은 넓고 평화롭고 막힘이 없었다. 탁 트인 공원을 아무 생각 없이 끝없이 달릴 수 있었다.

해가 뜰 때, 해가 질 때 달리기 너무 좋은 공원이었다.


길도 잘 모르는 타지에서 러닝화 하나 믿고 앞만 보며 나아가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현지인과 묘하게 눈빛을 스치며 인사하는 경험도 즐거웠다.

모르는 곳에서도 가장 나다운 호흡으로 머물 수 있었다는게 기쁘다.


달리기에 마음을 붙인 것이, 여행을 가서도 달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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