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아파도 러닝 (3) : 러닝크루, 함께 달리기

이제야 알겠어요 왜 다들 같이 뛰는지

by 마고

모두 모여 들뜬 마음으로 웅성 웅성, 잘 들리지도 않는 사회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8초 정도에 뒤늦게 카운트다운에 합류해 큰 소리로 1초까지 따라 외치고 나면

탕! 총소리와 함께 앞으로 쏟아져나간다.



주최사 대표 쯤 되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아래로 손을 뻗으면

그들과 하이파이브 한 번 하겠다고 꺄르르 대각선으로 달려 나간다.


스타트 라인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으쌰 으쌰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전신에 신나는 노래가 흘러 나오는 스피커를 두르고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대회에서 나눠주는 기념품 티셔츠가 아니라 형형색색의 러닝 크루 유니폼을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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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대회에 나갈 때마다 적으면 4~5명, 많으면 20명이 넘는 인원으로 구성된 크고 작은 러닝크루를 마주친다.

또래들로만 구성된 크루도 있는가 하면, 남녀노소 가족 단위로 모인 크루도 몇 보인다.

서로를 격려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니

나도.. 나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달리고 싶다..!


물론 파트너와 둘이서 뛰기는 하지만 대회처럼 여럿 함께 모여 호흡을 맞춰 달리는 기분을 일상에서도 느끼고 싶었다.

그렇다고 매일 같이 대회만 나갈 수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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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달리면 3km 만 달려도 번뇌가 온 몸을 휘감는다. 귀가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

30분 남짓 달리는 내내 '그만 뛸까?', '그냥 멈출까?' 마음의 소리와 싸우느라 러닝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그냥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미숫가루 한 잔 하면 좋겠구만, 현혹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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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말, 조심스레 단톡방에 들어갔지만 실제로 모임에 처음으로 나간 것은 7월 중순 즈음.

여태껏 한 번도 취미 동호회에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모임에 나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주제에 용기 있게 첫 모임부터 달리기 후, 난지 한강 수영장에 가는 모임까지 덜컥 신청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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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나간 모임 장소에는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딱 뜨거운 여름이 시작될 즈음 후끈한 열기 아래에서 월드컵 공원을 5km 정도 달렸다.


멈출까..? 생각이 들다가도 주변을 둘러보면 묵묵히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 멈출 수가 없었다.

그걸 반복하다보니 멈추고 싶다는 생각조차 사라지고 나도 어느샌가 묵묵. 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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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뛸 때보다 1.5배는 더 많이 뛰고나서야 걸음을 멈췄다.

생각보다 몸도 마음도 가볍고 더 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 철새가 같이 모여 날아가는구나,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비유가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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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마친 후 끈적한 몸을 씻어내기 위해 난지 한강 수영장으로 향했다.

한강 수영장 자체를 처음 가봤는데 수영장이 아니라 한강 물에 퐁당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찼지만 멈추지 않고 내리 달렸더니,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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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한 회원분께서 가방에서 찐 감자와 토마토 설탕 절임이 들어있는 도시락 통을 꺼냈다.

기다렸다는 듯 다른 분도 알이 꽉찬 천도 복숭아 6알을 나눠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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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여름의 맛이구나.

열심히 뛰고, 수영장 앞에서 산들 바람 맞으며 천도 복숭아 먹는 기분 그 자체가 여름의 맛이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온 신경으로 여름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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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난 후에 돌이켜봐도 내 인생에서 가장 여름다웠던 순간 중 하나로 이 날을 꼽을 것 같다.

진작 모임에 더 자주 나올걸.

러닝 크루가 이렇게 좋은 곳일 줄이야.


복숭아 한 입 달콤한 목넘김에 늦은 후회를 함께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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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는 크루에 마음을 활짝 열었지만, 생각보다 현실의 삶이 버거워서 자주 나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뛰러 나가자고 스스로와 다짐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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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뛰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깨달을 즈음 네덜란드에 살고 있던 친구가 한국에 들어왔다.


네덜란드로 가기 전에는 독일에 있었는데,

독일에서도 네덜란드에서도 성심성의껏 뛰어다니던 친구라 이번에 한국에 왔을 때 꼭 한 번 같이 뛰어보고 싶었다.


다행히 기회가 생겨 일요일 오전, 한가한 탄천을 함께 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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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띄는 핑크색 그라데이션 유니폼을 입은 30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았다.

호기심 많은 친구와 내가 쭈뼛 거리며 무슨 모임인지 묻자 엄마, 아빠 뻘의 중년 네다섯 분이 앞다투어 우리에게 와서


비빔밥 먹고 가.

음료수라도 마셔.

떡 하나 먹어.

과자도 있어.

우리 마라톤 클럽 들어와.


적극적인 환대를 해주셨다.



그들은 이미 한 바탕 뛰고 온 뒤였지만, 우리는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중하게 거절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만은 밥 한 그릇 두둑히 얻어먹은 듯 든든했다.


우리를 떠나보내면서도 마지막까지 함박웃음 지으며 또 보자고 말해주시던 분들.

5분 정도의 짧은 만남 동안 알아낸 서로의 공통점이라고는 달리는 사람이라는 것 뿐인데 어쩜 이렇게 다정할 수 있으실까.

혼자가면 빨리가고 함께가면 멀리간다고 적혀있는 명함을 보며 함께 달리는 마음이란 이렇게 훈훈하구나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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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마주친 Seoul Fun Run 마라톤클럽 선생님들과 인사를 마친 후, 탄천 길을 마저 달리기 시작했다.


나보다 훨씬 오래 달렸기 때문에 훨씬 빨리 달릴 수 있음에도

나에게 보폭을 맞추다, 혼자 훌훌 날아갔다가도 다시 돌아오다

자유로운 가을의 잠자리처럼 탄천을 누비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면서 같은 호흡으로, 같은 발걸음으로 달리는 것은 이렇게 즐거운 일이구나.


언젠가 다시 친구와 이 길을 달리기 위해 꾸준히 또 나아가야겠구나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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