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아파도 러닝 (2) : 엄마랑 같이 10km 뛰기

곧 환갑 어머니의 인생 첫 마라톤 10km

by 마고

딸 인생 첫 달리기가 10km 마라톤이었던 이유가 있다.

바로 그 무모함을 엄마한테 받았기 때문.


곧 환갑 앞둔 우리 어머니의 인생 첫 달리기도 바로 10km 마라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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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필 즈음, 엄마한테 마라톤 대회에 함께 나가보지 않겠냐 물어봤다.

엄마가 매일 같이 2만보 이상은 걷지만, 땀나는 것이 싫어 그 외에는 운동을 일절 하지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레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흔쾌히 Yes.

거기에 더해 매일 걷는 거리를 생각해보면 5km는 너무 짧은 것 같다며 10km 코스를 신청해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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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첫 달리기였던 경주 벚꽃마라톤 10km를 달리며 여러 교훈을 얻어 이번에는 대회 나가기 전에 연습 삼아 몇 번 달려봤다.

엄마랑 나가기 때문에 더더욱 내가 다치면 안된다는 사명감에 휩싸였다.


▼ 딸내미 인생 첫 달리기, 경주벚꽃마라톤 10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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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당일 아침.

우리가 참가한 마라톤은 여성신문사에서 주최하는 2025 여성마라톤, 월드컵 공원에서 시작해 가양대교를 반환해 돌아오는 10km 코스.


대회 당일에는 이슬비가 내렸다.

우비를 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하지만 엄마에게 맑은 날, 가양대교 위를 달리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폭우가 내리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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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전이다보니 엄마가 사뭇 긴장한 듯 보였는데 무대 위 사회자의 주도로 다 같이 준비 운동을 하고,

카운트다운을 한 뒤 와르르 뛰어 나가는 들뜬 분위기에 어느덧 엄마도 설레하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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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엄마를 사이에 두고 애인과 내가 양옆에서 달리며 페이스를 맞췄다.


엄마, 재미있지? 어때? 괜찮아? 안힘들어?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앞만 보고 달리며,

시끄러우니까 말 걸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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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데 이럴수가.

4km 정도 뛰었을까 급격히 힘이 빠지기 시작한 나를 뒤로 하고 어머니는 뒤도 안돌아보고 뛰어나갔다.


혹시 몰라 애인한테 내 옆에 있을 필요 없으니 우리 엄마 따라가라고 손을 휘저었다.

체력 약한 딸내미 대신 사위를 포켓몬처럼 엄마 옆에 붙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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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엄마도 애인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홀로 가양대교 위에 남겨져 고독한 달리기를 이어갔다.

가양대교 위에 반환점이 있다고 했는데 다리가 영원히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어느새 맞은편 도로에는 반환점을 돌아오는 사람들이 가득차기 시작했다.


혹시 엄마랑 애인이 보일까 싶어 왼쪽 편을 바라보며 10분 정도 뛰었을까 지치지도 않는지 반갑게 웃으며 뛰어오는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엄마도 한참이나 나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뛰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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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엄마는 한참 전에 지나간 반환점을 넘으니 또 하나의 고비가 펼쳐졌다.

up hill (오르막길) 이었던 것이다.


바닥을 보며 달리면 안되는 걸 알지만.. 힘이 들어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끝없이 이어진 오르막 길을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끝없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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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대교에서 내려와 다시 아스팔트 차도 위를 뛰기 시작했는데 그 때 갑자기 눈 앞에 엄마가 나타났다.

6km가 넘는 거리를 내리 뛰었으니..

오르막에서 내려오자마자 힘이 빠져 뛰다 걷다 뛰다 걷다했다고 한다.


포켓몬도 엄마 옆에서 같이 걷고 뛰며 본인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엄마와 애인을 다시 만나 기분이 들떠 여기서부터 결승선까지는 오히려 거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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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도착할 즈음, 엄마가 본인만의 페이스로 갈테니 신경쓰지 말고 가라며 우리를 방생했다.


아니야, 옆에서 같이 뛸게.

걸리적 거려. 그냥 가.


결승까지 0.5km 정도 남았을까,

오히려 우리 존재를 짐처럼 느끼는 것 같아 마지막 힘을 짜내 먼저 완주 라인에 들어왔다.


그러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멋지게 달려 들어온 우리 엄마.

힘이 턱까지 찬게 보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에 들어온 엄마를 보니 왜 이렇게 기특하고 뿌듯한지.

내가 대학에 붙었을 때 엄마의 기분이 이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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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기록은 우스운 수준이지만 처음으로 출전한 경주벚꽃마라톤보다 5분이나 빠르게 들어왔다.

엄마도 내년에도 꼭 참여해서 본인 기록을 단축시키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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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엄마가 나를 새로운 경험으로 데려다줬다면, 이제는 내가 엄마한테 새로운 경험을 보여주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가 나이에 상관 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즐거워하고, 포기하지 않고, 성취하고, 앞으로 또 나아가고 싶다고 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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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내미랑 발 맞춰 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귀찮아하지 않고, 기꺼이 함께 해줘서 고마운 마음 뿐이다.

올해도, 내년도, 10년 뒤에도, 엄마가 원할 때까지 함께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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