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아파도 발레 (6) : 발레 공연을 올리다

성인 취미 발레 1년차, 발레 발표회

by 마고

2023년 1월, 인생 처음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뒤인 2024년 1월, 학원에서 주최하는 작은 발표회에 참여하게 된다.


첫 달에는 허벅지 안쪽 근육이 찢어져 멍이 들 정도로 뻣뻣했지만,


▼ 취미발레 시작 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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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동안 꾸준히 주 2회 수업을 가고,

집에 돌아와서도 뭉친 근육을 풀어주니 어느 정도 발레 동작이 몸에 익어가기 시작했다.


발레를 시작한 이유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자세를 갖고 싶어서,

② 인생에 한번은 '춤'을 배워보고 싶어서였다.


겸사 겸사 건강한 신체와 '나도 허우적 댈 수 있구나..!' 라는 자신감을 얻었을 즈음

원장님께서 학원 발표회에 참여해보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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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무대는 아니었고 같이 수업을 듣는 회원님 두 분과 함께 서는 삼인무 공연

서로 서로 회원님이 참여하면 참여하겠다는 말만 돌려 하다가..


정신차려보니 셋이 함께 무대에 서게 되었다.


그렇게 셋이서 올리게 된 공연은 바로

해적 (Le Corsaire) 오달리스크 트리오 베리에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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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정도 매 수업 연습을 하고 공연에 임박해서는 추가 수업도 불사하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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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공연 날짜에 임박해 사이즈에 맞게 미리 주문한 공연 의상을 처음 입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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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지젤 *출처 : 체육학대사전 / (우) 튜튜 *출처 : 파퓰러음악용어사전 & 클래식음악용어사전

치마가 하늘 하늘 떨어지는 지젤과 옆으로 뻣뻣하게 펼쳐지는 튜튜

두 가지 옵션이 있었는데 오달리스크 공연에 어울리는 튜튜를 입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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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번쩍 광이 나는 새 공단 슈즈와 무거운 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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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장식까지 너무 예뻐서 계속 들여다 본 청록색 공연 의상

원래 신던 꼬질꼬질 천슈즈가 아니라 무대용 공단 슈즈를 신을생각에 잔뜩 긴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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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공연 당일, 공연 시작 5시간 전에 공연장에 도착했다.


공연장에 오자마자 자리에 앉혀져 영혼까지 끌어모아 젤로 머리를 넘기고

빤짝이를 그러모아 붙이고 두텁게 화장, 아니, 분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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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완성된 풀 드.메. (드레스, 메이크업)

의상이 살에 닿는 부분이 묘하게 까칠거리고, 왕관은 떨어질 것 같고, 메이크업은 어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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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전 선생님, 회원님들과 사이 좋게 김밥, 빵, 커피를 나눠먹으며 긴장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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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을 봐주시는 귀여운 우리 선생님

공연 시작 전까지 이런 500석 규모의 무대에서 내가 진짜 공연을 올리는 게 맞는지 계속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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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안떨리는 척, 무대에서 자연스러운 척

공연 전까지는 안떨리는 척 했지만 공연 시작하고는 실제로 손끝이 벌벌 떨릴 정도로 긴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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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메이크업, 드레스 업까지 마무리 후 같이 무대에 서는 회원님들과 인생 다신 없을 인증샷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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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오르기 전 마음을 모아서 하트

혼자였다면 절대 무대에 올라갈 수 없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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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름 성공적으로, 하지만 모든 동작 다 틀려가며 무대에 올랐다.


약 8분 정도 되는 시간이 억겁같이 느껴졌다.

갑자기 다음 동작이 생각이 안나서 의식의 흐름대로 춤을 추었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뇌가 회피 회로를 돌려 생각을 멈춰버린 것 같았다.


무대에 오르니 생각보다 너무 더워서 도 많이 흘리고,

튜튜 치마는 거슬리고, 왕관은 무겁고

헤어를 고정한 과 물감 같은 메이크업 때문에 두피와 피부는 따갑고

무대가 밝아서 관객석은 하나도 안보일 줄 알았더니만 띄엄 띄엄 사람들이 앉아있는게 느껴져 손끝은 벌벌 떨리고

그렇다고 사랑하는 애인과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아니라

얘네가 온게 맞는지, 내가 엄한 사람들 앞에서 추고 있는게 아닌지


온갖 생각들이 교차해 온전히 무대에 같이 올라있는 회원님들과 눈빛 교환하며 무사히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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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제일 마지막 순서였기 때문에 공연을 마치고 마무리 인사까지 열심히 하고 내려오니

친구들과 애인이 꽃을 한아름 안겨줬다.


그제서야 흘러나오는 안도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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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서 사진을 보니 기본적인 턴아웃, 포인도 잘 안되어있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그래도 무대에 서볼 수 있었다는 것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 발레 공연을 올렸다는 것이 너무 기특하고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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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걸음해준 친구들과 애인


성인 발레 공연이다보니 처음에는 엄마 아빠까지 부를까 고민하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 두 명과 애인만 부르게 됐다.

그런데! 발레 공연 끝나고 엄마한테 사진을 보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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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한 엄마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무슨 일이야! 물어보니 하는 말,

이렇게 발레를 좋아하는 줄 알았으면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든 시켜줄걸 그랬다.

이렇게 하고 싶어하는 줄 몰랐다.


그 말을 들으니 괜히 나도 뭉클해져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를 달랬다.

아냐, 엄마. 발레로 전공을 했으면 나는 아마 기절했을거야.

지금 이 나이 먹고 내 돈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직접 쟁취할 여유가 생기니 발레에 눈을 돌린 것 뿐이야.

어렸을 때는 한 번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나도 왜 내가 어느샌가 발레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성인발레 공연이기도 하고 사실 안틀릴 자신 없었던 완성되지 않은 공연이라는 생각에

부모님을 안부른건데 그래도 부를걸 그랬다며 뒤늦게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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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꽃다발을 화병에 꽂아두며 느낀 것이 있다.

발레리나는 등허리를 바짝 조이는 코르셋과 한 달 내내 집 바닥에서 발견되는 반짝이,

머릿결 다 상하게하는 과 피부 다 썩는 으로 이루어졌구나.


그 모든 것을 떼어내니 이렇게 홀가분할 수 없다가도,

무대에 서는 단 10분을 위해 내가 그다지도 노력했다는 것이 감격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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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어릴 때는 한번도 발레를 배워본 적 없으면서 발레가 그렇게 운동이 잘 된다는 말에 덥석 배우기 시작했다.

1년 정도 지나 대충 아라베스크를 따라 할 줄 아는 정도가 되자마자 바로 무대에 서게 되었다.


물론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아직까지도 이 날 공연 영상을 눈 뜨고 제대로 못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오르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이다.


나처럼 긴장을 많이 하는 사람도, 완벽하게 준비가 안된 사람도,

인생에 한번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경험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발레 무대도 서본 사람이니 이제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다!



추가로, 한번 공연을 올리고나니 발레 실력이 급속도로 성장한 것이 느껴졌다.

공연 준비를 하며 이전에는 놓쳤던 디테일한 부분을 챙길 수 있게 되었고, 스스로의 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공연 준비할 때부터 시작해 공연장에서도, 그리고 공연장을 나와서도

내 자신이 공연을 올리기 전보다 더욱 성장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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