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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노트 Nov 12. 2023

노안, 그 서글품에 대하여


올해 교육을 받으면서 제가 미뤄뒀던 모든 진료를 다 받고 있습니다. 치과, 산부인과, 내과, 안과 등 오십이 눈앞에 오니 하나둘씩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최신형인 제 핸드폰 사진이 언제부턴가 희미하게 찍히길래,  이번에 새로 샀는데 왜 이러지 하면서 렌즈를 몇 번이고 닦곤 했는데요, 가만히 보니 노안 때문이었어요. 또 다른 징조로는 책의 글자가 시원하게 보이는 게 아니라 뭔가 전체적으로 흐릿한 것이, 북클에서 함께 낭독하다가 몇 번이고 저를 멈칫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나도 이제 돋보기를 맞춰야 하나?


뭐지? 이제 책 좀 보면서 살려고 했는데,


 이제 눈이 안 받쳐주네.. 풋..'


웃음이 나왔습니다. 젊은 날, 뭐 하기야 그때도 시력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노안은 없을 때, 책은 아주 가끔 센티해지거나 필이 꽂힐 때 읽는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으니까요. 저는 시력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다섯 형제 중 유일하게 저만 중학교 때부터 안경을 썼습니다. 점점 나빠지더니 고등학교 때는 고도근시가 되어 검은 뿔테안경에 얼굴이 굴절되어 보이는 왕경태 안경을 쓰고 다녔어요. 안경을 빼면 정말 눈앞의 애미 애비도 몰라볼 정도였지요. 


여름이면 줄줄 흘러내리고, 비 오는 날 버스 안은 서리가 끼어 앞이 보이지도 않고, 얼마나 귀찮던지 정말 눈이 좋은 사람이 제일로 부러웠답니다. 고등학교 야간자율 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올 때면, 근처 남고 학생들과 마주치곤 했어요. 저는 안경 낀 제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한 치 앞이 안 보였지만, 기어이 안경을 벗고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또래 남학생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었던 어린 소녀가 생각나 웃음이 납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자 얼른 렌즈를 맞추었지요. 제가 안과에서 렌즈를 맞추고 거울로 제 얼굴을 보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몰라요. 제 모습을 그렇게 선명하게 본 적이 없었는데 얼굴의 점, 잡티 하나까지 너무 선명하게 보였어요. 항상 안경을 벗고 얼굴을 봤으니, 흐릿하게 보여 괜찮게 보였던 겁니다. 렌즈가 안경의 왜곡을 없애주긴 했지만 밤마다 빼줘야 하는 수고로움도 안겨줬지요. 그렇게 십 년을 넘게 렌즈를 사용했고, 첫아이를 낳았을 땐 다시 안경을 착용해야 했습니다. 엄마들은 아실 거예요. 신생아 시기가 얼마나 힘든지, 안경조차 쓰기 귀찮을 정도로 몸이 피곤한 시간의 연속이지요. 



참다못한 저는 있는 돈을 다 끌어모아 여름휴가 때 안과를 찾아 저에게 맞는 처지를 받았습니다. 고도근시에 각막이 두껍지 않아, 렌즈를 삽입했는데 비싸긴 해도 후유증이 없이 지금까지 괜찮은 시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붕대를 푼 뒤 날 아침, 눈을 떴는 데 벽에 걸린 시계가 선명하게 보이자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어요. 우리 아기 얼굴도 너무 잘 보였고요. 진작에 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때 담당의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나중에 노안이나 백내장이 오면, 다시 그 렌즈를 빼시면 됩니다."


지금 그 시기가 임박한 것 같아요. 노안이 왔어요. 멀게만 느껴지더니, 살금살금 다가와서는 지금 제 앞에 떡 하니 서 있는 것 같습니다. 


'나.. 왔다..!'


어릴 때부터 저보다 훨씬 티브이도 많이 보면서 눈이 좋았던 셋째 언니도 이젠 노안 안경을 맞췄다니 제 차례가 온 것이겠지요. 이게 서글픈 건,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했던 것들에 나의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만 한다는 현실입니다.


예를 들어, 용도를 알 수 없는 화장품 사용법은 핸드폰 렌즈로 확대해서 보고,

책을 살 때 글자 크기도 고려 대상이 되고,

마트에서 상품의 성분이 보이지 않고,

새로 산 조리식품의 조리법도 그렇게 크게 봐야 합니다. 특히나 외국어로 된 것들은 구글 렌즈로 번역해서 그걸 또 확대하여 해석본을 읽지요.


어쩌면 이제 부엌의 필수품 중에 돋보기가 추가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이마저도 너무 귀찮아 그저 손만 갖다 대면 큰 글씨로 읽을 수 있는 장치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돋보기 같은 건 안 낄 수 있게 말이죠. 저는 유달리 얼굴에 뭔가를 덧붙이고 걸쳐야 하는 게 참 성가신 사람이거든요.


뒤늦게 재미를 붙인 독서에 자꾸 태클이 걸리니, 심술이 납니다. 진작 더 많은 독서를 하지 못한 나에게, 적어도 70은 넘어서 와야 되는 게 아닌가, 이름이 노안인데! 하는 억지까지 쓰고 싶어집니다. 이래저래 온갖 불평을 늘어놓아도 결국 받아들여야겠지요. 안경을 맞추고 미간의 주름이 더 이상 짙어지지 않게요. 그래도 삽입된 렌즈 덕에 꽤 오랜 시간 편하게 잘 살아왔음에 감사하고, 잘 버텨준 내 눈에게도 고맙단 인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제부터 나의 몸 여기저기서 하나둘씩 신호를 보내겠지요. '오늘은 여기가 아파'하고요. 노안을 받아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잘 견뎌준 내 몸에 감사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인스턴트에 밀가루 음식, 운동도 게을리한 것치고는 꽤 잘 버텨주었다고요. 


노안의 서글픔은 인정하되 받아들이고, 그동안 애써준, 앞으로 더 애쓸 나의 몸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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