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늦게 샤워하던 딸아이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옷도 채 입지 않고 서서는 욕실 벽을 가리키며 저기 초파리(날파리, 하루살이) 좀 보라며 난리가 났다.
우리 딸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올해 중3으로 어렸을 때부터 벌레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다. 매미, 개구리, 사슴벌레 등 제법 큰 곤충도 손으로 덥석 잡아 보는 나를 놀라게 했다. 징그럽지 않냐고 하면 귀엽기만 하다며 나에게 들이대며 놀렸었다. 그런 딸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있었으니 바로 초파리다. 일명 날파리, 하루살이다. 눈앞에서 윙윙거리면, 앗! 하고는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치며 피한다. 이런 모습에 나는 그 큰 벌레도 손으로 잡으면서 그리 작은 게 뭐가 무섭냐고 물어보면, 너무 작아서 징그럽단다. 이해는 안 됐지만 그렇다니 받아들였다.
그런 딸아이인데 갇힌 욕실에 벽과 천정에 붙어 있는 초파리들과 같이 있다는 게 너무 무섭고 징그러웠던 것이다. 과연 욕실에는 어디서 들어왔는지 초파리들이 어림잡아 스무 마리는 되어 보였다. 아직 더운 날씨도 아니고 음식물을 흘린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을까? 환풍기를 타고 왔나? 일단 딸아이는 옷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전자 파리채를 꺼내 왔다.
욕실 문을 닫고 벽에 붙에 갖다 대니 '탁' 소리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또 어떤 놈은 욕조 안으로 점처럼 떨어졌다. 사실 나는 전자 파리채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탁'소리가 너무 끔찍하고 그 소리와 함께 사라졌을 벌레가 상상이 되어 사용을 꺼리는 편이다. 그렇다고 손으로도 못 잡는다. 벌레를 지극히 무서워하기에 사실 모기를 손바닥으로 잡기도 겁난다. 잡아도 문제, 안 잡아도 문제다. 내 손에 형체를 알 수 없게 붙어 있는 그 까만 점과 느낌이 소름 끼치게 싫기 때문이다. 벽에 붙은 몇 마리를 잡고 천정 모서리에 붙은 놈들은 아침에 신랑한테 맡기기로 하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던 신랑에게 어제 사정을 이야기하고, 어디서 들어왔는지 아직도 제법 있다며 전자 파리채를 건네주었다.
신랑은 날파리가 많다는 내 말에 갸우뚱하더니 검투사처럼 비장하게 욕실로 들어갔다. 남편이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그 파리채로 다 잡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뒤로 서서는 '여기, 저기, 저 모서리'를 외쳐댔다. 녀석들이 똑똑하게 천정 모서리, 그러니까 파리채를 댈 수 없는 각도에 모여 있었다. 남편에게 말했지만 그쪽엔 가지 않길래, 나도 모르게 버럭 했다.
'저기 모서리, 저기 모여 있잖아, 안 보여?
저기다 파리채를 갖다 대라고!'
남편은 대뜸 뒤돌아 나를 보더니,
'저긴 각도가 안 나오잖아!'
'아니, 툭툭 치면 날 것 아니야, 대고 있다가 그때 잡으면 되지, 왜 근처도 안 갖다 대는데!'
'내가 알아서 다 잡을 건데 왜 그렇게 뒤에 서서 짜증 내며 소리쳐?'
'내가 언제 그랬어? 가르쳐 줘도 안 잡으니까 그렇지'
'자기가 짜증부터 냈잖아!'
'내가 언제! 진짜..'
여기서 말다툼은 그쳤고 초파리들은 하나 둘 떨어져 나갔다. 모서리 것들은 휴지로 꾹꾹 눌러 없앴다. 남편의 손에 과한 힘이 들어가는 걸 보니, 화를 초파리에 다 쏟아붓는 중이었다. 그렇게 날파리 소탕 대작전은 시끌벅적하게 끝이 났다. 모두 전사하고 욕실의 흰 타일이 까만 점 하나 없이 깨끗했다. 남편이 내려준 텀블러 커피를 들고 함께 출근했다. 가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사무실까지 태워주고 가는 남편의 차를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는 내내 그놈의 하루살이 때문에 아침부터 우리의 하루가 망쳐진 것 같아 원망이 되다가, 내가 한 행동을 뒤돌아보았다. 커피도 내려주고 긴 팔로 벌레까지 잡아 주었는데, 내 성에 안 찬다고 뒤에서 짜증 섞인 몇 마디로 우리 아침을 망친 것 같아 미안했다.
'아, 이놈의 버럭 성질.. 그렇게 답답하면 네가 잡지 그랬냐! 팔도 안 닿으면서.. 잡아주면 고맙다 생각해야지. 그 성질 언제쯤 고칠래!'
아침부터 마음 상했을 남편에게 문자로 사과라도 해야겠다. 예전엔 이런 것도 안 했는데 조금 나아진 걸까? 다음엔 얼굴 보고, 즉시 사과하는 멋진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