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부러진 소녀, 다리 부러진 소년
나는 툭하면 깁스하는 애였다. 재작년엔 저학년인 내가 그네 타기로 고학년 오빠를 이겨보겠다며 "내가 더 높이 올라갈 거야!"를 외치고는 하늘을 날았다가 쿵, 하고 떨어졌다. 팔에 깁스를 했다. 하지만 내가 이겼다. 작년엔 자전거 뒤에 반장을 태우고 내리막길을 질주하다가 드럼통에 박아 고꾸라졌다. 다리에 깁스를 했다. 드리프트만 완벽했다면 좋았을 텐데 두고두고 아쉬웠다.
그래도 올해는 왠지 내 팔과 다리가 아톰처럼 더 튼튼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부러져도 어차피 다시 붙을 걸 아니까, 부러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더 신나게 놀았다.
그러나 올해도 깁스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체육 시간에 뜀틀 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내 차례가 왔는데 이상하게 무서웠다. 뜀틀을 넘다가 앞으로 고꾸라져서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히는 상상을 했다. 상상을 하자 공포감이 더 밀려들었다. 하지만 여태껏 무섭다고 뛰지 않은 친구는 없었다. 친구들에게 놀림당하지 않으려면 나도 뛰긴 해야겠는데…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뛰었다. 놀랍게도 손목이 똑, 하고 부러졌다.
내 손목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감지하고 공포감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겁먹은 탓에 손목도 같이 겁을 먹고 힘이 풀렸던 것일까? 어쨌든 나는 조금 억울했다. 신나게 논 것도 아니고 뜀틀을 넘다가 손목이 부러지다니.
나는 곧장 병원으로 실려 갔다. 병원에서 만난 엄마가 익숙한 탄식을 내뱉었다. "또 깁스네." 하지만 이번엔 정말로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나는 뜀틀을 넘은 것밖에는 한 것이 없었다.
팔에 깁스를 한 덕분에 나는 여러 수업에서 깍두기가 되었다. 체육 시간에는 선생님이 "또 부러질라. 넌 교실에 있어." 라고 해서 홀로 교실을 지켰다. 음악 시간에는 하필 단소를 배우던 시기여서, 두 손을 온전히 쓰지 못하는 나는 친구들이 내는 단소 소리의 불협화음을 멀뚱멀뚱 듣고만 있었다. 혼자만 무얼 안 한다는 건 몹시 지루한 일이었다. 그래도 나름 딴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지루한 나날을 보내던 내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반에서 내가 좋아하는 애가 다리에 깁스를 하고 나타난 것이었다. 눈이 커서 개구리를 닮은 그 애는 이제 다리 부러진 개구리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귀여웠다. 체육 시간이 되자, 선생님이 그 애에게 말했다.
"너도 교실에 있어."
잠깐만! 그럼 나랑 얘랑 둘이서만 교실에 남는 거야? 대박이다! 이게 무슨 운명인가 싶었다. 이건 신이 주신 기회가 분명했다.
체육 시간이 되고, 그 애와 아무도 없는 교실에 단둘이 남게 되자, 가슴이 콩닥거렸다. 우리는 같이 창가에 서서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운동하는 걸 구경했다. 더없이 황홀했다. 아무에게도 방해하지 않고 온전히 둘이서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몹시 좋아서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다음 체육 시간에도 우리는 창가에 서서 친구들을 구경했다. 이따금 시덥잖은 대화도 몇 마디 나누었다. 그런데 불현듯 이 소중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깁스를 푸는 날이 올 테고, 그럼 이 시간은 없어질 테니까. 우리의 귀한 시간을 이대로 창밖만 보면서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애와 더 신나고 재밌게 놀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서 물총 반지를 샀다. 용돈이 넉넉하지 않았던 나에게 물총 반지는 비쌌지만, 그 애와 놀 생각에 큰 고민 없이 덥석 사버렸다. 물총 반지는 겉으로는 반지처럼 생겼지만, 손아귀에 작은 물총 주머니를 감춰서 물을 쏠 수 있는 장난감이었다. 물은 딱 한 모금만큼만 아주 조금 들어갔다.
다음 체육 시간이 왔다. 그 애는 여전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창밖을 보는 그 애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준비해 온 물총 반지로 그 애에게 물을 쐈다. 나를 봐달라는 의미였다. 그 애의 개구리 같은 눈이 커지면서 더 개구리 같아졌다. 이내 해사하게 웃었다.
그다음 체육 시간에 그 애가 작은 물총을 들고 나타났다. 같이 놀자는 나의 신호가 제대로 먹힌 것이었다. 그 애와 나는 소소한 물총놀이를 하며 그 시간을 보냈다. 즐거웠다. 그 애를 직접 만질 수는 없지만, 물줄기를 통해 그 애에게 닿고 있다는 사실이 짜릿했다. 나는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그러나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 달 반이 지나자, 나는 그 애보다 먼저 깁스를 풀게 되었다. 깁스를 하는 건 엄청 귀찮고 갑갑했지만, 깁스를 풀고 싶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깁스를 해도 행복한 건 개구리 같은 그 애와 단둘이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다시 깁스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만 깁스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할 수만 있다면 그 애도 다시 깁스를 하도록 그 애의 어딘가 부러뜨리고 싶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애와 함께 다시 깁스할 날을 꿈꾼다. 하지만 깁스쟁이인 내가 다시 깁스할 확률은 아주 높은데, 얌전한 그 애가 다시 깁스할 확률은 아주 낮아 보인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그 애가 알게 된다면, 아마도 겁이 많은 그 애는 무서워서 개구리처럼 도망가 버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