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조신하게 만든 생리에 대하여
어른들의 '여자니까 조신하게 굴어라'라는 말은 내 마음을 앙칼지게 만들었다. 게다가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 나는 누가 뭘 하라고 하면 무조건 하기 싫어했다. 조신해지라고? 흥! 그럼 난 더 천방지축으로 뛰어놀래!
나는 어른들이 강요하는 조신함을 씩씩하게 발로 차고 놀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여자라서 진짜로 조신해져야 하는 일이 내 세계에서도 일어나고야 말았다.
열세 살의 겨울 방학 무렵, 나는 밖에서 친구들과 붕어빵을 사 먹기 위해 붕어빵 가게 앞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온 세상이 차가웠지만, 붕어빵 가게 앞은 따듯했다. 붕어빵 틀에 채워지는 반죽과 팥을 보면서 내 가슴도 벅차올랐다. 붕어빵을 골고루 굽기 위해 능숙하게 돌아가는 쇳소리는 설렘을 증폭시켰다. 갓 나온 붕어빵에서 모락모락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데 동시에 내 가랑이에서도 모락모락하고 축축한 기운이 느껴졌다. 무언가 마렵다는 신호는 전혀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느껴진 축축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어리둥절했다. 붕어빵을 기다리다 말고 혼자 조용히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에서 마주한 것은 난생처음 보는, 속옷을 빨갛게 물들인 피였다.
이것의 정체를 학교에서 성교육 시간에 배운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 하게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했지, 평상시 마음의 준비란 걸 하고 있을 만큼 차분하지 않았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다행히 이럴 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딱 하나 알고 있는 게 있었다. 바로, 엄마한테 물어보기.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 친구들에게 엉거주춤한 인사를 하고, 곧장 가까운 공중전화로 가 엄마한테 전화했다. 내 상황을 잠잠히 듣던 엄마는 집으로 오라고 했다. 역시 엄마는 모르는 게 없다.
나는 새끼 오리처럼 뒤뚱뒤뚱 어설프게 걸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생리대를 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입고 있던 속옷은 세탁하기 위해 벗었다. 새 속옷을 입고, 그 위에 생리대를 붙였다. 나는 이것이 조금 큰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요란할 것 없는 일상처럼 초경을 맞이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엄마가 가볍게 넘겼으므로, 나도 이제 생리를 하면 되는구나 하고 가볍게 넘어갔다. 앞으로 닥칠 재앙을 모른 채로.
매달 잊을만하면 나를 찾아오는 생리라는 녀석은 꽤 까탈스러웠다. 나는 조신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므로 생리할 때가 오면 매번 속옷과 침구를 더럽혔다. 처음엔 더럽혀진 속옷과 침구를 이해하지 못했다.
‘에...? 생리대를 했는데 왜 속옷에 피가 묻지...?’
‘에...?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왜 또 피가!!?’
‘아니...왜 또 피가!!!!!!‘
천방지축으로 뛰어놀던 열세 살도 생리의 침략을 여러 차례 당하고, 난감한 상황을 계속 마주하다 보니, 조금은 조신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애먼 곳에서 피를 보지 않으려면 신나게 뛰어놀아서도 안 되고, 잠자면서 과하게 움직여서도 안 되었다. 이전처럼 이 기간에는 말뚝박기, 술래잡기 같은 놀이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잠잘 때는 생리대를 꼭 2개씩 가로로 하나, 세로로 하나 붙이고 잤다.
이와 함께 예민함의 역사도 시작되었다. 이제 막 생리를 시작한 나의 생리 주기는 일정하지 않았다. 때로는 40일 만에, 때로는 20일 만에 생리를 했다. 생리 주기가 일정하지 않다 보니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생리의 공격에 늘 대비하고 있어야 했다. 당시에 생리대를 밖으로 꺼내는 일은 매우 부끄러운 것이었으므로, 나는 생리 주머니를 사서 그 안에 생리대를 넣고 다녔다. 그리고 생리 주기에 가까워졌다 싶으면 생리 주머니를 가방에 챙겨 다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생리 주머니를 챙기지 않은 날, 여지없이 이 틈을 타서 꼭 생리가 찾아오곤 했다. 무방비 상태의 나를 공격하며 아주 얄궂게 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가끔 복불복으로 자궁에 광기 어린 과학자가 들어와 무시무시한 실험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생리통의 무차별 폭격으로 배가 격하게 뒤틀릴 때면, 신께서 왜 이렇게 어린 나이의 애송이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생리라는 걸 선물해 주셨는지 의아했다.
생리는 그렇게 여자를 조신하게 만들고, 예민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어쩌면 여자가 남자보다도 그토록 섬세하고 비밀스러워진 건, 생물학적 경험이 남자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여자가 자기 생각이나 의중을 감추는 데에 능해진 것도 이 시기부터였을 것이다. 위로는 브래지어로 가슴을 가리고, 아래로는 생리대로 월경을 감추게 된 역사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여성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비밀스러운 일인 것처럼 가릴 필요가 있나?
성별이 여자라는 건 참 귀찮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