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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Dec 15. 2023

참을 수 없는 언니의 간식

빈부격차는 노예제도를 낳고

 우리 집 큰딸은 엄마를 닮아 뭐든 잘 모은다. 어떤 때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다람쥐처럼 뭐든 모은다. 우리 집 큰딸이 특출나게 잘 모으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크리스마스 씰과 예쁜 우표, 만화책 주인공들이 나오는 엽서, 다이어리 꾸미기 좋은 스티커, 그리고 용돈과 간식.


 우리 집 작은딸은 아빠를 닮아 뭐든 잘 쓴다. 어떤 때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뭐든 없애 버린다. 우리 집 작은딸은 집에 먹을 것이 있으면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때까지 먹고, 한숨 자고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나머지를 먹어 치우는 사람이다. 식탐이 영혼을 지배하는 작은 딸이 유독 못 참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언니의 간식이다.


 언니는 대체 왜 간식을 쌓아둘까?


 절제력이 강한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더 정확히는 절제력이 강한 언니의 간식이 남아있다는 건 동생의 입장에서는 곤욕이었다. 간식을 아주 조금씩 오랜 기간에 걸쳐 천천히 먹는 언니는 확실히 나와 다른 종족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언니의 간식이 몹시 거슬렸다. 대체 왜 과자를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두고 먹는 것인지...! 이건 과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과자 입장에서도 서서히 사라지는 것보다 한 번에 정열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낫지 않나! 언니는 과자도 괴롭히고, 나도 괴롭혔다.


 제발 먹어.

 제발 좀 먹으라고.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언니의 간식이 계속 눈에 밟히고, 탐하는 마음이 눈덩이처럼 커지면,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언니 간식 빼먹기를 시도했다. 그럴 때면 언니가 귀신같이 알아차리고는 나를 추궁했다.


 "너, 내 간식 먹었지?"


 언니가 나를 추궁할 때면, 나는 제어가 잘 되지 않는 내 식탐이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빨개졌다.


 "왜 네 것 다 먹고서 내 것까지 손을 대니?"

 "아니이...그게 아니고오…"


 나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그저 어버버거리기만 했다. 내게 간식을 잘 먹을 수 있는 입은 있지만, 변명을 잘할 수 있는 입은 없었다. 언니에게 한바탕 추궁당하고 나면 이제 안 먹고 만다, 라고 다짐하고서 뒤돌아서면 또다시 언니의 간식을 몰래 빼먹었다. 언니의 간식도 괴롭고, 언니의 추궁도 괴롭고, 노골적인 내 식탐을 마주하는 것도 괴로웠다. 제발 언니가 간식을 빨리 먹길 기도했다. 그러나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는 않았다. 아마도 신보다 언니가 더 철저한가 싶었다. 언니는 정말 철두철미하게 간식을 모아두고 관리했다.


 언니가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바뀌어야 했다. 나도 언니처럼 간식을 아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간식을 하루에 한 개만 먹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날 아침에 한 다짐은 바로 그날 저녁에 깨지고 말았다. 나는 간식이 남아있는 꼴을 못 보는 사람이라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식탐과 이성의 싸움에서 승자는 늘 식탐이었고, 간식을 향한 나의 욕망은 언니의 절제력만큼이나 대단했다.

 

 어느 날은 여느 때처럼 내 간식을 다 먹어 치우고 언니의 간식에 눈독을 들이다가, 언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언니의 심부름을 하는 대신 간식 하나와 교환하자는 것이었다. 언니는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것은 꽤 좋은 방법이었다. 마침내 나는 내 간식을 다 먹고도 언니의 간식까지 실컷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언니는 원래도 막 시키던 심부름을 더 마음껏 시켰다. 평소에는 내가 잘 들어주지 않는 큰 심부름까지 시켰다. 주로 언니가 먹은 걸 대신 치운다든지, 필요한 걸 대신 사 온다든지, 만화책을 대신 빌려온다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엄청나게 큰 심부름을 하고 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월드콘 아이스크림까지도 받을 수 있었고, 언니가 잘 내어주지 않는 칸쵸 과자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언니의 간식을 먹기 위해 부리나케 언니의 요구에 맞춰 움직였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언니의 노예가 된 건.


 언니의 심부름 난이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내가 언니의 간식을 많이 먹을수록 언니가 거실 소파에 누워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언니는 어떻게 간식을 안 먹고 참는 거지?


 나는 비결이 궁금해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어떻게 간식을 안 먹고 참는 거야?"


 이어진 언니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나는 별로 간식을 안 먹고 싶은데?"


 그랬다. 언니는 사실 간식을 참는 게 아니었다. 간식을 안 좋아하는 것이었다. 아니...그런데 어떻게...?! 간식을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없다고...?! 언니가 나와 다른 종족임을 확신한 순간이었다. 동시에 내가 언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언니는 간식이 많고 나는 없는데, 언니는 간식을 원하지 않고 나는 간절히 원하니까. 나는 이 노예 생활을 벗어날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언니는 앞으로도 간식을 먹지 않고 내 눈앞에 보란듯이 차곡차곡 쌓아둘 테니까.



사진: UnsplashDenny Mü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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