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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햇볕 Jun 19. 2024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는 곱창



나는 곱창을 싫어한다. 

좋아했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는 곱창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마치 무지개를 잡으려는 꿈처럼 말이다. 

무지개는 볼 수는 있지만 잡을 수는 없다. 

무지개를 쫓아가면 그곳에 무지개는 없다. 

내게 곱창은 잡을 수 없는 무지개와 비슷하다. 

   

나와는 다르게 언니들은 곱창을 잘 먹고 좋아한다. 

어린 시절 세 자매인 우리는 너무나도 달랐다. 

내가 막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은 곧잘 나를 놀렸다. 

주변에서 하는 우스개 말이 나는 하나도 우습지 않았다.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네 부모님을 찾아봐.”

   

어린 나는 하나도 타격이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언니들과 나는 먹는 것, 입는 것, 취향 등 많은 것이 달랐다. 

겹치거나 비슷한 것이 거의 없었다. 

그중 하나가 곱창이었는데 언니들은 곱창을 매우 좋아했다. 

언니들끼리 곱창을 먹으러 가고는 했는데 나는 낄 수가 없었다. 

묘한 소외감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언니가 

   

“살살 녹는 곱창을 발견했어. 너도 먹으면 맛있다고 할 거야.”

   

세상에. 

살살 녹는 곱창이라니. 

이참에 나도 곱창을 좋아하게 될 수 있겠다. 

언니는 곱창을 못 먹는 나를 위해 원조 어쩌고 라는 곱창집에 예약을 했다. 

사람이 많아서 예약을 하지 않으면 먹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언니 가족과 우리 가족 총 8명이 드디어 살살 녹는 곱창을 먹게 되었다. 

식당은 깔끔했고 원조답게 맛있는 냄새가 났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곱창을 입에 넣었다. 

   

음? 

이게 무슨 맛인가? 

약간의 누린내가 입 안에 퍼졌다. 

언니 말로는 “곱”이란 것이 흘러나왔다. 

한 마디로 곱창은 살살 녹지 않았다. 

쫄깃을 넘어 질긴 것 같았다. 

그런데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참 맛있게 먹고 있었다. 

언니 테이블은 추가 주문까지 했다.

나는 곱창 옆에 있는 구워진 야채를 먹었다. 

가족 모두 역시 원조집은 다르다며 칭찬을 했다. 

나도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곱창을 먹고 나와서 다시 한번 살살 녹는 곱창이었다고 후기를 나눈 뒤 차에 탔다. 

남편이 운전을 하고 보조석에 내가 앉았다. 

남편도 잘 먹었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맛있냐고 물었다. 

정말 맛있어? 

남편이 그렇다고 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살살 녹아? 

남편이 나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우문현답을 했다. 

  

“살살 녹는다는 것은 맛있다는 뜻이야. 어떻게 곱창이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겠어?”

   

순간 내가 곱창이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울 것이라고 기대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남편에게는 내가 바보냐며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다고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왜냐면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곱창은 쫄깃한 맛에 먹는다고 하는데 아무리 곱창을 싫어한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안다. 

살살 녹는 곱창이 있다면 그건 상한 것이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정말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는 맛있는 곱창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나는 곱창에 대한 두 마음이 있었다. 

쫄깃하지만 맛없는 곱창과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맛있는 곱창. 

곱창이 싫어서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곱창이 존재하는 것이다. 

곱창 맛을 모르니 더 이상화된다.


 



상담에서 이런 상태를 “양가적 마음”이라고 부른다. 

현실에서 양립할 수 없는 것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싫기도 하면서 좋은 것. 

다른 측면으로는 이상화와 평가절하로 살펴볼 수 있다. 

이상화는 지나치게 좋게 보는 것,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며 평가절하는 지나치게 나쁘게, 부정적인 쪽으로 깎아내리는 것이다. 

이상화와 평가절하는 양립할 수 없는 것 같지만 함께 일어난다. 

이상화 속에는 평가절하가 있고 평가절하 속에는 이상화가 있다. 

이상화를 하는 것은 상대의 좋은 속성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억압할 때 발생한다. 

평가절하는 상대의 좋은 속성을 발견할 때 상대에게 끌리는 것이 두렵기에 좋지 않다고 깎아내리는 것이다. 


곱창에서 양가적 마음과 이상화, 평가절하를 찾는다면 나는 곱창을 싫어하지만 잘 먹고 싶다. 

왜냐하면 곱창을 잘 먹는 언니들과 접점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소외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 

언니들이 곱창을 먹고 쇼핑과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에 대해 나는 좋게 보지 않았다. 

언니들을 평가절하했다. 

그렇다면 나도 곱창을 좋아하고 쇼핑, 음주가무를 좋아한다는 것일까? 

그건 아니지만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억압해서 언니들을 평가절하한 것이다. 

이상화된 곱창은 언니들과 접점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상화된 곱창과 평가절하된 곱창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상담사라는 직업병인가 싶기도 하다. 

심리상담 이론으로 경험을 분석하는 것. 

곱창에 대한 양가적 마음을 탐색하고 이해했다. 

그러면 곱창에 대한 나의 결론은? 

내 마음이 곱창 때문이 아닌 언니들과 친밀하게 지내고 싶다는 욕구가 만들어낸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참 고집스럽다. 

결론은 이렇다. 


‘세상 어디엔가는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는 곱창이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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