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리뷰
제로베이스원(ZEROBASEONE) 미니 4집 [CINEMA PARADISE] 앨범리뷰
3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돌아온 제로베이스원은 멈추지 않는다. 어찌 됐건 2년 6개월이라는 정해진 활동 기간이 존재하는 만큼 1년 사이 4장의 EP를 발매하는 지칠 줄 모르는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정식 그룹이 아닌 프로젝트 그룹이었기에 장기적인 플랜보다는 순간순간의 활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비슷한 시기 데뷔한 보이그룹에 비해 제로베이스원의 활동은 음악적으로도, 비주얼적으로도 어떠한 확실한 개성과 색깔을 유지하기보다는 다양한 컨셉과 장르를 가능한 많이 시도하는 데에 집중한 듯하다.
데뷔 타이틀 곡이었던 'In Bloom' 이후 발매한 '가시(Crush)'와 'Feel the POP'은 데뷔곡의 성적을 뛰어넘지 못하며 제로베이스원은 어느 정도 혼돈의 시기를 보냈다. 다양한 음악과 컨셉에 도전하는 것 자체는 좋으나 그것이 오히려 애매한 결과물들을 탄생시키면서 데뷔 초 형성했던 탄탄한 팬덤에 약간의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누구보다 많은 오프라인 스케줄과 방송 활동을 소화하고 있는 제로베이스원이지만 5세대 보이그룹 중 유독 아쉬운 음원 지표를 보이는 까닭이 바로 애매한 앨범 완성도일 것이다.
지난 3개의 앨범으로 '청춘 3부작'을 끝낸 제로베이스원은 단 3개월 만에 또다시 EP를 발매했다. 짧은 준비 기간이었기에 분명히 대중들에게 큰 관심과 기대를 만들어내기엔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들이 또다시 시도할 장르와 컨셉이 무엇인지는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분명히 곡 수급에 특히나 심혈을 기울인 게 느껴진다. 타이틀곡 작가진에 무려 '켄지'가 이름을 올리면서 무엇보다도 곡 자체의 퀄리티에 특히나 큰 비중을 둔 신보다. 제로베이스원과 켄지의 만남이 상상이 잘 가지 않는 조합이긴 하나 신보에 대한 기대를 끌어올리기엔 충분했다.
작사 KENZIE
작곡 KENZIE, 앤드류 최, no2zcat, JSONG (OCEANCAVE)
편곡 no2zcat
역시는 역시다. 신스팝과 켄지는 절대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인트로부터 몽환적이고 일렉트릭한 신스가 아르페지오로 쌓여가며 제대로 아련하고 벅차오르는 청춘의 감성을 만든다. 벌스와 프리코러스가 다소 단조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존재하나 코러스에서 제대로 그 아쉬움을 탈피시킨다. 단숨에 귀에 꽂히는 탑라인은 아니지만 여러번 반복해서 들었을 때 그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는데 청량한 리드미컬함을 가지면서도 몽환적인 멜로디 라인이 제대로 아련함을 자극한다. 특히나 백보컬을 여러 겹 레이어드해서 마치 떼창처럼 들리게 하며 공간감을 준 것도 이 감성을 더욱 고조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벅차오르는 브릿지 라인이나 캐치한 코러스 탑라인이 기존 켄지스러움이 더욱이나 느껴지는 파트들인데 제로베이스원에게 어쩌면 가장 필요한 터치였을지도 모르겠다.
곡과 상응하는 비주얼 프로덕션도 전작들과 비교해 훨씬 나아졌다. [CINEMA PARADISE]라는 앨범명처럼 전반적인 앨범 컨셉이 시네마틱 판타지인만큼 뮤직비디오 역시 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 속 캐릭터로 변신한 멤버들과 이를 창조한 작가로 배우 유지태가 등장하며 존재 그 자체만으로 큰 서사를 만든다. 그녀를 놓으라는 작가의 말을 듣지 않는 캐릭터들은 '온 우주가 말해 그녀를 놓치지 마'라는 가사처럼 마치 자아가 생긴 듯 에너제틱하다. 명작들의 명장면을 오마주 하고 콘티로 가득 찬 스튜디오에서의 퍼포먼스는 곡의 벅찬 감성과 시네마틱 서사를 뒷받침한다. 광활한 공간감이 느껴지는 신스 덕분인지 컨셉 포토 역시 파스텔톤의 SF 판타지로 곡과 컨셉이 잘 맞아떨어진다.
시네마 천국처럼 앨범의 각 트랙들은 어떤 통일성과 유기성이 강조되기보다는 여러 장르의 영화를 보는 듯 상반된 매력을 가진다. 파워풀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2번 트랙 ‘KILL THE ROMEO’는 아프로 팝 비트 위에 펑키한 사운드가 더해진 댄스곡으로 코러스의 안티드롭과 튠이 걸린 전자음이 포인트인 곡이다. 클래식하게만 느껴지는 남자주인공 '로미오'를 색다른 이미지로 컬러풀하게 해석했는데 전반적으로 각 파트의 존재감이 강해 다소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든다. 3번 트랙 '바다'는 유피의 '바다'를 리메이크하며 제로베이스원의 간질간질한 감성으로 재해석했는데 발매 시기가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늦여름인 것이 더욱 아쉬워진다.
미니 3집 [You had me at HELLO]부터 장르적으로도 많은 도전을 하기 시작했는데 4집 [CINEMA PARADISE]에서도 색다른 장르에 대한 도전을 이어간다. 4번 트랙 'Insomnia'는 몽환적인 신스와 플럭 사운드를 활용하여 잠 못 드는 밤의 오묘함을 표현한다. 전체 타임라인도 짧고 1절이 1분 안에 모두 끝날만큼 공격적으로 곡이 진행되는데 빠른 드럼 비트와 베이스, 효과음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그런가 하면 5번 트랙 'Road Movie'는 힙합이다. 스트링 사운드로 시작한 인트로는 힙합 비트로 돌변하더니 다시 프리코러스에서는 비트가 빠지더니 멜로디컬 한 보컬이 등장하고 코러스는 다시 힙합 비트가 등장한다. 코러스와 2절 벌스의 경계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오묘하게 이어지고 2절 코러스 이후의 아웃트로 라던지 곡 구성 자체가 매우 신선하다. 다만 대비감이 너무나 확실하다 보니 다소 산만하게 느껴진다는 점, 각 파트가 캐치한 포인트가 있거나 큰 중독성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 이 곡을 더 난해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제로베이스원의 음악 중 가장 실험적이다.
완벽하게 흠잡을 곳이 없는 앨범은 아니지만 제로베이스원의 앨범 중 가장 대중들에게 소구력이 확실한 앨범임에는 분명하다. 어느 정도 힘을 받은 타이틀곡과 동시에 명확해진 프로덕션 방향성이 지금까지 제로베이스원의 디스코그라피 중 가장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데뷔 앨범 이후 방향을 잃은 듯하게 보였던 제로베이스원이 어쩌면 갈피를 찾을 수도 있는 활동일지도 모른다.
데뷔부터 만들어진 탄탄한 팬덤, 멤버들의 뛰어난 비주얼, 개성 넘치는 멤버 구성, 빠지지 않는 멤버들의 실력까지 제로베이스원이 가진 장점은 너무나 많다. 다만 그 장점들을 어떻게 구성하여 내어놓는지에 달렸다. 너무나 중요한 시점이다. 이 시점에서 월드 투어라는 (암흑의) 시기가 온다면 더욱 견고한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5세대 남자 그룹들의 팬덤 경쟁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대기업 아이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턱턱 내놓는 콘텐츠의 늪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뺏고 뺏기는 이 마음 싸움에서 제로베이스원이 해야 할 일 중 가장 첫 번째는 지금 이들을 사랑하는 팬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