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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Sep 05. 2023

아이는 자기의 속도로 자랍니다.

그저 딱 그만큼, 자기의 속도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전에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학교에 가면 달라질 것이다. 보육기관을 졸업하고 교육기관에 가면 달라진 환경에 맞춰 아이는 변화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데칼코마니 같은 불안을 품고 있는 희망이었다.

"학교에 갔는데도 달라지지 않으면 어쩌지?"


만 7세인 8세도 아직 어린아이라지만 또래와 비교했을 때 우리 집 대단이는 아직도 한참 어리게만 보였다. 친구들 앞에서 "왜 이거 나랑 같이 안 해~~!" 하면서 뿌앵하는 대단이와 멀뚱멀뚱 대단이를 보고 있는 대단이의 친구들. 그 모습을 보고 시작된 생각이었다.

'왜 우리 아이는 다른 친구들과 원만하게(혹은 튀지 않게) 지내지 못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자 자기만 내세우는 아이의 모습을 계속 발견하게 됐다.

"내가 먼저 한 거야! 내 거야!"

"쟤가 먼저 날 건드렸어."

"쟤가 못하게 날 막았어."

기쁜 감정을 표현할 때도 아기 같았다. 친구를 껴안기도 하고 크게 웃으면서 신나 했다.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것은 속으로 할 법한 말을 그대로 내뱉는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가 수업 중에 대단이의 속말 같은 육성을 듣는다면 민망하거나 화가 날 것이다.


좋게 말하면 천진난만한 것이지만 달리 보면 대단이는 또래의 언어에 미숙해 보였다.


어린이집에서도 대단이는 곧잘 혼자 놀곤 했다. 마음 맞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도 반이 달라지면서 혼자 논다는 이야기를 가끔 했다. 아이가 외로워 보이지는 않아서 한 귀로 흘리기는 했다. 엄마가 개입해서 해결해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겠지. 그런데 시간이 똑딱똑딱 계속 흘러가는데 대단이의 교우관계는 뭔가 약간 기우뚱한 느낌이었다.


천만다행히도 이보다 더 훌륭할 수 없을 것 같은 선생님을 1학년 담임 선생님으로 만났다. 대단이는 다른 친구들처럼 선생님을 좋아하고 따른다. 그러나 여전히 같은 반에 친구가 없다고 한다.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주는 친구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오는 일이 없으므로 학교생활은 무난히 잘 하고 있다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지내기로 했다. 대단이는 돌봄교실 선생님도 잘 만났다. 돌봄교실 선생님께는 심지어 "대단이를 잘 키우셨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대단이가 매일같이 다니는 태권도 관장님께 전화를 받았을 때는 마음이 무너졌다. 관장님은 8살답게 규칙을 지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하셨다. 규칙을 지키는 데에는 또래보다 뒤처진다는 말씀이겠다. 내 아들 대단이는 물론 또래보다 뛰어난 면이 있다. 하지만 또래보다 뒤처지는 면이 있다. 이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아이의 부족한 면에 대해서는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아이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기에 대화를 시작했다. 아이에게 단호하게 일러 주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잔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대단이의 받아들이는 태도가 예전과는 다르다. 자기가 하지 않은 잘못에 대해서는 "아니! 나는 그러지 않았는데?"라고 제법 의젓하게 항변했다. 그런데 자기가 한 잘못에 대해서는 또 예전처럼 몸을 웅크리며 "나 그런 적 없는데?"라며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다른 곳을 본다. 거짓말 능력지수 빵점. 결국 왜 그러면 안 되는지를 아이에게 설명해 준다는 명목으로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아이는 영혼을 또 다른 데로 보내놓은 것 같았다. 결론은 단호하게 일러 주고 반복하지 않았다.


"한 번만 더 관장님께 전화오면 태권도는 그만둘 거야."


항상 아이들로 북적이는 태권도 학원의 환경이 어떤 친구들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자극에 약한 대단이에게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이 부분을 아이에게 설명해 주었다. 자극을 받아서 뭔가 탁 건드려져서 과한 행동이 나온다면 그것은 대단이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하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와중에 대단이의 마음도 상할 수 있으니 태권도 학원보다는 친구들 수가 적은 곳을 찾자고 하였다. 아이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행히 이후로 아직까지 관장님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일하는 엄마의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 여덟 살 대단이는 8시 40분에 집을 나가 오후 5시 20분에 집에 온다. 아이가 지치는 것이 싫어 동선을 최소화하긴 했지만 어디가 됐든 내 집처럼 편안하게 있을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우리 집의 사정이지만 아이도 그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후 늦게까지 머무르는 돌봄교실에서는 단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대단이는 나름 자신의 몫을 다하며 잘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는 등굣길에 같은 반 친구 한빛이를 만났다. 학교가 공사중이라서 입구가 둘로 나눠져있었는데 대단이가 가려는 방향과 한빛이가 가려는 방향이 달랐다. 대단이는 흔쾌히 친구가 가는 방향으로 따라 나섰다. 둘의 뒷모습을 보면서 둘 다 좋은 하루 보내라고 힘껏 소리쳐 줬다. 대단이도 한빛이도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어 줬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엄마 눈에는 거북이의 속도라도 아이는 자란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저 믿고 기다려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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