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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Sep 07. 2023

엄마는 아마따

엄마가 이러니 니들이 알아서 잘 살아야 해

한글을 일찍 깨친 대단이와 다르게 우리 집 둘째 뽀뽀는 아직도 한글을 깨치지 못했다. 대단이를 키울 때는 몰랐는데 한글을 모르는 만 5세를 키우는 즐거움이 꽤 쏠쏠하다.


2년 전쯤 우리 집 남매의 관심을 강타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그때 뽀뽀는 엉터리중국어처럼 그 노래를 불러 제꼈었는데 안타깝게도 기록이 없다.

오랜만에 그 노래를 뽀뽀가 부르고 있었는데 뽀뽀는 여전히 자기 스타일대로 개사를 했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당근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

졸지에 당근 할아버지로 둔갑한 단군 할배. 바니바니 바니바니 당근 당근! 을 외칠 것 같다면 고조선의 후손으로서 발칙한 생각일까?


얼마 전에는 하굣길에 뽀뽀가 잔뜩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나 오늘 반짝 친구들과 인사를 못하고 왔어."

나는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아서

"뭐라고?" 하며 되물었다.

"반짝 친구 말이야." 하면서

뽀뽀는 양손을 귀옆에서 흔들며 반짝반짝 동작을 취했다.


그래~ 단짝 친구들이 반짝반짝 참 별처럼 소중한 친구들이겠다.


뽀뽀의 이행시는 한동안 우리 집과 나의 지인들에게 화제였다.


엄! 엄마는
마! 마따! 가방 안 가져왔다.

회사동료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뒤집어졌다. 단축근무를 해서 남들보다 일찍 퇴근하는 나는 나갔다 하면 한 두 번씩은 다시 회사로 들어오기 일쑤였고 일주일에 두 번 점심시간에 하는 요가시간에는 운동복을 안 가져와서 나 혼자 평상복으로 운동하는 일도 빈번하다.


집에서 나가기 전 십 분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다. 아이 둘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집을 들락날락한다. 아이의 물건을 챙기러 들어갔다가 내 핸드폰을 발견하기도 하고 챙겨놓은 요가복은 어디에다 뒀는지 찾지도 못하고 그냥 나오기도 한다.


지난 월요일은 태권도의 날이라 전국의 태권도 학원이 휴관을 했다. 돌봄 교실 선생님께는 잊어버릴까 봐 진즉에 문자로 말씀을 드려 놨었다.

"대단이는 4시 xx분쯤 엄마와 하교하겠습니다."


퇴근하려고 일어나는데 돌봄 교실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엥? 하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친절한 돌봄 교실 선생님의 말씀.

"어머니~대단이가 어머니께서 태권도 학원 오늘 쉬는 날인지 모르시는 것 같다고 해서요."

아! 내가 아침에 대단이에게 말을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주말에 대단이와 얘기를 나눈 것 같은데....


부랴부랴 학교로 가서 대단이를 만났다.

"대단아~ 오늘은 엄마가 데리러 간다고 했잖아. 기억이 안 났어?"

"어. 엄마가 안 오길래 엄마가 모르는 건가 생각했어."

"그래? 돌봄 교실에 대단이만 있었나 보네. 엄마가 언제 간다고 시간까지 얘기해 줄 걸."

하고 대단이를 돌아보는데 웬걸.


대단이는 태권도 학원 하복을 입고 있었다! 하복은 아디다스 운동복이라 더운 여름에는 도복을 입기가 어려워 태권도 학원에서는 도복을 하복으로 대체한다. 평상복으로 입기도 좋아 태권도 학원을 가는 날에는 으레 이 하복을 입고 학교에 간다. 말그대로 태권도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교복 같은 것이다. 나는 아침에 부랴부랴 나갈 준비를 하면서 하복을 아이에게 입으라고 건네주고 센스 넘치게 태권도 띠까지 챙겨 넣으라고 당부했다.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대단이를 바라보았다.


"봤지? 엄마는 이런 사람이니까 네가 스스로 잘 챙겨야 해!"


대단이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아마따! 뽀뽀의 이행시는 예전 글에서 한 번 써 먹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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