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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Oct 15. 2023

모성고자로 사는 법

담백하게, 더욱 담백하게

'아, 역시 나는 모성고자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느낀다. 폴싹폴싹 뛰듯이 주의를 살피지 않고 걷는 돌진형 뽀뽀가 넘어질 때. 어딘가 또래보다 뛰어나고 또 어딘가 또래에는 못 미치는 대단이가 입이 댓 발이 나왔을 때. 다른 엄마들의 잣대로라면 마음이 와르르르 무너질 순간에도 나의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대단이가 며칠 전에 말했다.

"엄마, 세계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나라는 인도지?"

인도? 무슨 소리야. 넘사벽 중국이지!!!

그런데 웬걸. 그동안 강산이 변할 만큼 세월이 흘러 중국은 저출산 문제에 골머리를 싸매는 나라가 되었고 세계 최대 인구대국의 타이틀은 인도가 거머쥐고 있었다. 분명히 이 사실을 어디선가 주워 들었던 것 같은데 내 머릿속에서는 인구=중국이라는 관념이 고정되어 있었나 보다. 이제 일곱 살, 대단이의 머릿속은 백지와 같다. 대단이에게 세계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나라 처음부터 인도다.


모성고자로 사는 것도 대단이가 지식을 쌓는 것과 비슷한 장점이 있다. 인도가 세계 최대 인구대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기존의 관념이 방해했듯이 어떤 상황에서 감정이 개입되면 입력한 대로 출력하기가 쉽지 않다. 알고 있는 것과 마음 가는 곳이 충돌을 일으켜 불협화음을 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안타깝거나 우려되는 상황에서 감정이 와락 쏟아지지 않기 때문에 대한민국 육아사전 오은영 박사님의 가르침을 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벌어진 상황에 적절한 리액션이 지 잘 모르겠다면 찾아보고 외우고 적용하면 된다.


뽀뽀가 넘어진 순간을 되돌아보자. 안타까움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는다. 그래도 가만히 멀뚱멀뚱 있을 수는 없다. 재빨리 머리를 굴려서 이 상황의 가장 적절한 리액션을 취해 본다.

1. 뽀뽀가 넘어졌다. '아, 또 넘어졌네.'라는 생각이 든다.

2. 뽀뽀에게 다가가 한 발자국 떨어져 "괜찮아?"라고 물어본다. 얼굴에는 오은영표 자애로운 미소를.

3. 뽀뽀는 툭툭 털고 일어나서는 "괜찮아."라고 얘기하고 하던 대로 또 폴싹폴싹 뛰어간다.


이렇게 또 하나의 상황을 오은영 스타일로 넘겼다. 50점 모성고자 엄마에서 85점 정도로 점수가 상승하지 않았을까?


모성고자의 장점이 하나 더 있다. 요즘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극성맘이 될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아이의 상황에 200% 나를 대입하기도 어렵고 앞뒤 맥락이 확실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 감정적이 되기도 쉽지 않다. (애 말만 듣고 상황이 100프로 다 이해되지않으시죠?)


며칠 전에는 대단이가 태권도 학원에서 억울한 일을 겪고 사범님한테 이마도 꽁 꿀밤을 맞았다고 했다. 이마를 맞고 왔다고 하니 대단이 아빠는 너무 지나친  아니냐 살짝 격앙이 됐다. 동안 태권도 학원 관장님께 피드백을 받아 온 로서 사범님의 마음이 오히려 이해가 되었다. 내 자식인데도 쥐어박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사범님의 성품을 알고 있기에 앞뒤 없이 그러지 않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가 오해를 받은 것은 억울할 수 있지만 그 억울함도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 있었다.


모든 상황이 이렇게 담백하게 흘러가면 좋을 텐데 나는 어떤 감정도 못 느끼는 감정고자 아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는 백함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린다. 역시 오은영표 세련된 엄마 리액션은 감정이 개입되지 않았을 때에만 유효하다.


어느덧 훌쩍 자라서 혼자 학교에 가는 아이를 보고 왠지 모를 서운함이 느껴진다고 하는데 머리로는 이해도 감정적으로 동조지 않다.


"인생은 각자도생. 각자 알아서 잘 살아보자." 서로에게 건투를 빌어주며 돌아설 수 있는 날이 가까워짐에 모성고자는 오늘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본다. 오늘도 열심히 키워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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