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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Mar 09. 2024

4줌마 갓생에 너그러움은 필수

이너피스해야 오래 삽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직무를 바꾼다. 40대 들어 처음으로 직무를 바꾸게 되었다. 업무를 바꾸게 되면 초반에는 무조건 날이 서게 된다. 모르는 것 투성이이기 때문이다. 전임자가 아무리 인수인계를 잘 해주더라도 일단 내가 익숙해지기까지는 스트레스와 비례해서 화가 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른쪽 어깨가 안 돌아갈 정도로 스트레스는 받는데 그다지 화가 나지 않는 것이다. 나의 감정 회로는 대상이 남이든 나이든, 상황이든 스트레스를 받으면 누군가에게는 분노의 화살이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희한하게 화가 나지 않더라.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첫번째는 체력적인 문제다. 이제 체력이 부쳐서 화를 내고 싶어도 에너지가 없어서 화를 낼 수가 없다. 화내는 데도 에너지가 엄청나게 소모된다. 그 힘을 비축해서 빨리 일을 해치우고 집에 기어 들어가야 한다. 집에 가면 또 해치워야할 일들이 산적해 있기에 쓸데없는 데 에너지를 써서는 안된다.


두번째는 반복학습의 결과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화를 낼 일이 많아졌다.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에게 종종 화를 내곤 한다. 한 번씩 화를 낼 때마다 정말 몸이 아파진다. 화를 내는 것은 상대에게도 불쾌한 감정을 남기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독을 뿜어내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벌컥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려고 노력했던 것이 의외의 효과를 불러왔다. 예전같으면 혼자 부글부글 끓거나 쥐고 있는 펜이라도 툭 던졌을 만한 상황에 화가 나지 않네? 오호!


마지막으로 세번째 두구두구둥!!! 기억력 감퇴!!!! 우리 팀장님은 몇 년 전에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데 사소한 부분을 집요하게 공략하시는 분이라 원성이 자자하다. 이미 나는 유경험자이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음에도 그 분이 불러서 던진 질문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어떻게 이런 신박한 생각을?'

예전에는 집에서 설거지를 하면서도 곱씹으면서 화 냈을 텐데 정말 놀랍도록 돌아서면 새까맣게 그 일을 잊어버리게 된다.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으니 그 순간의 당혹스러움만 남고 앞뒤 맥락을 따져가며 도저히 그럴 순 없다며 분개하는데까지 미치지 않는다.


예전같으면 충분히 화를 낼만한 일인데 화가 벌컥 나지 않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힘이 빠지고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어깨에 힘을 주는 편이라 어깨에 쌓인 긴장이 통증이 되어 나를 괴롭히곤 했었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어깨에 힘을 빼니 예전보다는 한결 나아졌다. 마찬가지로 체력이 부치는 만큼 마음에도 힘을 빼니 항상 나를 콕콕 찔렀던 화의 바늘도 끝이 무뎌졌다. 아이들에게 부당하게 화를 내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스린 그 시간도 헛되지 않았다. 이렇게 참다가 암에 걸리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오히려 평상시에 화를 내는 일이 줄었으니 암으로부터 나를 구해준 것이지.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는 기억들에 참 많이 속상했다. 그런데 불쾌한 기억들까지 증발해 버리다니!!! 마음의 독소를 빼는데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나이를 먹을수록 나이 는 것이 좋아진다. 오늘도 나는 그렇게 갓생을 산다.

마음 속 평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더니 걸작이 나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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