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백 Mar 25. 2024

이빨요정님, 우리 엄마 좀 데려가 주세요.

이빨은 덤으로 드릴게요.

이빨요정이라는 단어를 사십 평생 입밖에 내놓은 적이 없다. 소싯적 한창 열심히 봤던 미드에서 보았을까? 아니면 활자중독처럼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읽어 치웠던 때 어디서 주워 읽은 것일까? 아무튼 바다 건너 어드메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고 알기는 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쩌다가 이빨요정이라는 외래요종이 대한민국에 상륙해 민담 생태계에 교란을 일으킨 걸까?


내가 어릴 때에는 다들 지붕이 있는 주택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언젠가는 아이들과 함께 '응답하라 1988'을 보고 싶구만.) 서울의 강남지역이 본격적으로 아파트화되기 시작한 것이 1980-90년대라 하니 그 시절, 강 건너에서는 주거 환경이 탈바꿈을 하고 있었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그런 변화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초가지붕대신 슬레이트 지붕 밑에서 한 지붕 세 가족 네 가족이 모여 살던 시절지붕은 사람들에게 친숙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빨이 빠지면 지붕 위로 힘껏 던져 올렸다. 제비가 빠진 이빨을 물어가 튼튼한 새 이가 나오길 바라면서.


그런데 웬 이빨요정? 제비는 이빨만 가져갔는데 이빨요정은 이빨을 가져가며 덤으로 동전도 놓고 간단다. 이런 류의 이벤트는 왜인지 아이들보다도 엄마아빠들을 더 들뜨게 만든다. 이가 빠진 날을 기념하면서 아이가 이만큼 자랐음에 감격하며 아이에게는 건강하게 자라라는 축복을, 스스로에게는 수고했다는 격려를 나누고 싶나 보다. 동전이 지붕만큼 귀해진 요즘, 동전이 없어 지폐를 놓기도 하여 집집마다 이빨요정이 이빨과 교환하는 액수가 천차만별이다. 지붕으로 던져 올리라고 하고 싶어도 아파트 단지와 고층빌딩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지붕을 보려면 차를 타고 멀리 떠나야 한다. 여행을 가서 남의 집 지붕에 이빨을 던지고 올 수도 없지 않은가.


우리집 대단이의 유치는 어찌나 튼튼한지 또래보다 늦게 유치가 빠졌다. 대체로 무덤덤한 우리 부부에게 주변에서 이빨요정의 열기시들었을 대단이의 이갈이(?)가 시작된 것은 행운이었다. 우리집에서는 그 누구도 이빨요정을 언급하지 않았다. 문화 자원이 척박한 남편은 이빨요정이 뭔지도 몰랐을 것이다. 이빨을 가져가는 대신 베개맡에 돈이나 선물을 놓는다는 것도 짠순이인 정서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이빨요정은 짝퉁 산타클로스인가?


그런데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대단이의 마구 흔들리던 윗니가 교실에서 대단이와 안녕을 고한 것이다. 이번이 대단이의 다섯 번째 유치 안녕이던가? 수업 중에 친구의 이가 빠져 한바탕 소란이 일었을 2학년 교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에피소드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선물을 너무도 사랑하는 대단이에게 이빨요정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나 보다.


그날은 아이보다 더 빨리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엔 여느 때처럼 혼비백산 모드로 헐레벌떡 아이는 등교를 하고 나는 출근을 했다. 그리고 퇴근 후 집을 정리하다가 대단이의 베개 밑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음..................................................


"대단아, 이게 뭐야?"하고 묻자, 대단이가 대답했다."어? 이빨요정이 안 가져갔네?" 그러더니 수다쟁이답게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리 반 시원이는 이빨요정이 이빨 가져가고 삼천원을 두고 갔대."

큭, 삼천 원.......... 그 집에 그날 현금이 삼천 원밖에 없었나 보다. 요상 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엄마를 본체만체하고 얘기한다. "이빨 요정은.... 정말 없는 건가?"


나는 그래! 이빨 요정 따윈 없다고!!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아이는 또 쫑알댄다. "그래도 착각하고 안 온 걸 수도 있으니 오늘 하루 더 베개 밑에 놔둬봐야겠다." 도대체 어느 나라 이빨요정이 집을 착각해서 이빨을 못 가져가냐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역시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리고 고민했다. 이빨요정을 믿고 싶은 아이의 순수한 동심을 내가 파괴해도 되는 것인가. 나한테 무슨 권리가 있어서? 이빨을 가져가는 요정이 있다는 것을 믿든, 안 믿든 지 자유니 믿고 싶은 그 마음만큼은 지켜 주자. 아이들의 세계란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신성불가침의 영역 아니던가.


고심끝에 이빨요정의 역할을 자청하고 편지를 남겼다. 이빨은 안전한 장소에 고이 숨겨뒀다. 선물이나 돈은 우리집 이빨요정이 허락하지 않는단다.

다음 날 아이가 말했다. "이거 엄마가 썼지?"


 


작가의 이전글 찾아가지 말고 찾아오게 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