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슬기로운 백수생활

전화위복의 시간으로 보내기

by DallE Lee

이번 편은 번외편으로 어떻게 하면 백수 생활을 조금이나마 건설적으로 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경력직 구직을 하는 입장은 저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보통은 회사를 다니면서 환승 이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아예 퇴사를 하고 나와 보니 의외로 나처럼 퇴직한 상태에서 구직을 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대학원을 다니다가 구직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 역시 모두 환승 이직이었으므로, 환승 이직 역시 매우 어렵고 힘든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뜩이나 회사일은 바쁜데 나는 마음이 떠나 이직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지난 기억을 되돌아보자니 벌써 피곤하다.


그런데 환승 이직 못지않게 퇴사 후 구직도 힘들다. 물리적으로 힘든 게 없다는 큰 장점이 있지만, 그것 외에는 모든 것이 단점이다.


일단은 수입이 없다. 백수가 된 후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매달 나가는 통신비, 공과금에, 손가락만 빨 수는 없으니 밥도 먹어야 하고, 아프면 병원도 가야 하고, 직장도 없는데 사회적 네트워크까지 없으면 안 되니 가끔 사람들도 만나야 한다. 이 모든 게 돈이다.


배달음식으로 연명하던 과거를 청산하고 식재료를 사다가 알뜰살뜰 음식을 해 먹고, 불필요한 소비는 일절 하지 않고, 문화생활도 조금 줄이고, 나름 긴축 재정에 돌입한다. 그럼에도 나가는 최저 생계비가 있으니 수입이 없다는 것은 마이너스 생활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단점은 사람이 조급하고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백수를 업으로 삼은 게 아닌 이상, 기한 없이 노는 시간이 마냥 즐거울 리가 없다. 게다가 번번이 서류 탈락, 면접 탈락을 경험하다 보면 꽤나 단단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일지라도 마음이 쪼그라들기 마련이다.


조금 과장되게 말해서 면접은 '기세'가 반인데, 애초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불안감에 떨고 있으니 취업은 더욱 요원한 것이 되어 버린다. 악순환이다.


지금부터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깨달은 슬기로운 백수생활의 가이드라인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나도 아직 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뭐 나는 그동안 너무 번아웃이 와서 여행이나 실컷 다닐 거고, 아니면 그냥 집에 누워 뒹굴거리기만 해도 좋다! 하는 분들 말고, 이건 당장 구직을 염두하고 있는 분들의 데일리 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라고 봐주시라.


1. 규칙적인 생활

백수의 특권이라면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잔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몇 주 지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기억도 안나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한 일도 없고, 그렇다고 쩍 지게 놀아 재낀 것도 아니다. 그냥 시간을 버리고 마는 셈이다.


굳이 직장생활을 할 때처럼 7시에 일어나고 12시에 잠드는 생활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자신의 컨디션에 맞게 최소한 오전 시간에 일어나고, 남들 다 잘 때 잠드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대략적인 하루의 루틴을 정해서 움직이는 거다. 시간단위로 계획표를 짜는 것은 실천도 어렵고 오히려 포기하게 만드니 별로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건강한 집밥 해 먹고 영어 공부 한 시간, 구직 관련 해서 컴퓨터 2시간 하고, 강아지 산책 하기, 이런 식으로 하루의 To Do 리스트를 잡아 놓는 것으로 충분하다.


백수 구직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무력감이다. 아무것도 할 게 없다고 진짜 아무것도 안 해 버리는 거. 이건 구직자가 아니더라도 사람 망치는 길이다. 회사 다닐 때 대비 남아도는 체력과 건강이 있는데도 이런 무기력함이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본다. 적적하지 않을 소일거리와 적당한 긴장감이 있어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요즘 같은 취업 불황 시대에 구직은 장거리 마라톤이 될 수 있다. 페이스를 잘못 타버리면 의미 있게 보낼 갭이어가 무기력한 히키코모리 세월로 전락할 수 있으니 조심하자.


2. 생산적인 활동 하기

1번이랑 연관되는 내용인데, 규직적인 생활 속에 꼭 생산적인 활동 하나는 끼워 넣기를 바란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도 좋고,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학원을 다니는 것도 좋다. 아니면 나의 장기를 살린 창작물을 만들어 보는 것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듯이 말이다.


<Rich Habits>의 저자 토마스 콜리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은 그들이 소비(comsume)하는 것보다 창작/창조(create)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라고 했다. 사실 직장에 다니는 중에는 창작 활동에 더 많은 비중을 두기는 어렵기 때문에, 지금의 이 시간을 좀 더 창의적인 생산 활동에 집중해 보는데 쏟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럭키비키, 전화위복, '오히려 좋아'일 것이다.


생산적인 활동의 정의라 하면, 무언가를 소모/소비하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돈이든 배움이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남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백수의 자괴감을 극대화하는 포인트 중 하나가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진다는 점인데,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래도 내게 뭔가 남는 걸 하고 있어'라는 생각이 자괴감에서 오는 타격감을 줄여 주는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할 때에 비하면 너무 작은 소득이고, 이걸 배운다고/쓴다고/만든다고 어디다 써? 싶을 수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직장 생활하듯 열심히 하기를 추천한다. 사람의 뇌란 참 신기해서 별거 아닌 일인 걸 알지만, 그래도 막 엄청 열심히 하고 있으면 되게 중요한 일처럼 느껴지고 꺾였던 자존감도 조금씩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3. 경력 사항을 보완하기

회사에 다니면서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업무에서 성과를 내는 게 가장 좋겠지만, 어차피 쉬기로 마음먹은 거라면, 회사 다니느라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커리어 보완 활동을 해보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입사원 구직 때처럼 스펙 쌓기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마케터니까 마케팅 자격증을 따자, 이런 단순한 접근 방식은 지양하자(물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핵심은, 나의 취약한 부분, 내 커리어를 더 강화하는 포인트를 찾아서 그 빈 부분을 채워 넣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공대를 졸업하고 엔지니어 생활을 했지만 기술분야 컨설팅으로 직무 전환을 원하는 사람이라고 해보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직무 전환이 될리는 없으니 온라인 MBA든 재무 관련 자격증, 혹은 회계 과목 학원이라도 다닌다든지 내가 목표하는 직무에 관련성을 가지는 활동을 뭐라도 하면 좋을 것이다. 외국계 회사로 전직을 원하는 경우라면, 어학점수를 따 놓는 것도 기본적인 역량을 갖췄음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직무에 따라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준비할 게 없다, 하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하는 공부라도 괜찮다. 혼자 책 보고, 유튜브 보며 독학을 한 경우, 증빙할 방법이 없어 이력서에 적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면접에 가게 되었을 때 본인이 공부한 내용을 어필하며 쉬는 기간 동안 착실히 준비해 온 성실성과 열정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4. 멘탈 관리

Last but not least. 제일 중요한 게 멘탈을 잘 잡고 유지하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면 앞에서 말한 것들을 알고 있다 해도 하나도 실천이 안 된다.

근데 문제는 1~3번처럼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내 멘탈을 어떻게 해야 안정되게 관리할 수 있는지는 본인이 스스로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한 방법이 정답일리 없고, 누구에게나 맞지는 않을 터이니 말이다. 다만, 반드시 나만의 멘탈 관리법이 있어야 하고, 반드시 온 힘을 다해 실천해야 한다.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매일 명상을 하고 자기 확신의 암시를 하려고 했다.

명상은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인데 나에게는 잘 맞았다. 유튜브에 있는 수많은 명상 영상 중에 나에게 맞는 것을 골라 그냥 매일 따라 했다. 실제로 불안함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된 것도 있지만, 나의 멘탈 관리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건강한 마음을 갖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잘 될 것이고, 나는 지금 평안한 삶을 살고 있다.'는 긍정의 자기 확신 메시지를 스스로 자주 되뇌었다. 백 퍼센트 스스로에게 접수가 되었는지는 둘째고, 일단 그냥 기계적으로 스스로에게 말하고 종교처럼 믿으려고 노력했다. 이 부분 역시 사람의 뇌가 참 신기한데, 아무래도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암시를 하려고 하니까 실제로 기분도 나아지는 것 같다.


나는 명상이나 자기 암시 같은 정신적이고 정적인 방법을 주로 썼지만, 여러분은 자신의 성향에 맞게 자신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테면 반려견과 노는 시간이라든지, 격렬한 운동을 한다든지, 등산을 한다든지, 좋아하는 영화를 본다든지 하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무료하고 불안한 백수 생활을 신나고 활기찬 재충전의 시간으로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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