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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 May 31. 2023

오글거린다는 표현이 참 멋없다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나는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나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고 가는 대화 중, 친구가 갑자기 다른 친구 a의 sns를 봤냐고 물어본다. sns를 보지 못한 나는 못 봤다고 말하자 a의 개인 계정을 보여주며 올린 사진과 게시글이 오글거린다고 비아냥거리며 험담을 하는 것이다. a는 단지 취향이나 생각을 표현했을 뿐인데 그게 오글거린다는 말로 비웃음거리가 되다니. 친구는 한 순간에 a가 표현한 모든 것을 '오글거림'으로 압축해 버렸다. 사실 “그게 뭐 어때서! 걔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는 건데 네가 왜 뭐라고 하는 거야?”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면전에 그러지 못한 나는 멋쩍은 웃음만 짓고 다른 이야기로 전환해 버렸다. 그 뒤로 진지한 이야기를 편하게 털어놓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 "털썩" 의자에 앉아 짧지만 묵직한 한숨을 내뱉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한 청춘 페스티벌 강연 영상에서 작사가 김이나씨가 나와 이런 말을 한다. “요즘 친구들은 진지함에 대한 거부가 커요.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할 때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진지 병, 진지 충, 십선비 이런 말로 사람들을 놀린 적이 있나요? 나는 이런 성향이고 이게 내 진심인데,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 뭐라고 하는 것 보니까 이런 말 안 해야지. 덜 진지하게 해야지. 내 감정에 점점 솔직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 거예요.” 이 말을 듣자마자 무릎을 탁 치며 뼈를 때리는 듯한 공감을 했다. 



가벼움을 추구하는 요즘. 깊은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뿐인데 진지한 분위기를 잡는다며 말하지 말라고 회피하는 사람들. 언제부터 타인의 시선 때문에 내가 느끼는 감정을 말 못 하고 살아가는지. 감성은 쉬쉬하게 됐는지.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을 꽁꽁 숨기고 있어야 하는지. 정말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과감하게 표출할 수 있는 시대가 맞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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