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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Nov 30. 2024

어릴 때 많이 싸웠어야 했는데

싸우고 화해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해 싸우는 걸 피하는 나 자신

  아이들의 세계도 정글과 같다. 강한 자가 살아남아 우위를 차지하고 권력을 휘두른다. 몇몇 아이들은 자신만의 마이웨이를 가고, 어떤 아이들은 강자의 무리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동물의 세계처럼 완전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모여 노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면 힘의 편중이 느껴진다. 어린이집, 유치원, 키즈카페,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등 사람이 모이는 모든 장소에서는 그런 힘의 논리가 알게 모르게 작용한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봐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반에서 싸움을 잘하는 아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 대장노릇을 좋아하면서 편 가르기를 좋아하는 아이, 혼자 사부작사부작 노는 아이, 주눅 들어 있는 모습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 등. 다양한 캐릭터와 인물들이 떠오를 것이다. 반에서 어떤 역할과 위치에서 살았는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의 모습을 나의 자녀도 비슷하게 지낼 확률이 높다. 나의 자녀는 나 아니면 배우자, 둘 중 한 명을 무조건 닮아가며 자랄 것이기 때문에.


  필자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본다. 나름 큰 키에 친절하지 않은 얼굴이다. 공부를 꽤 하는 편이었고 운동도 꽤 괜찮게 하였다. 친구들은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었고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소위 노는 아이들이 나를 괴롭히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시비를 거는 아이도 없었고 내가 시비를 거는 입장도 아니었다. 다행히 평화롭게 학창 시절을 보내었다. 그런데 그것이 내 삶에 도움이 되었을까? 아님 악영향을 끼쳤을까?


  친구들과의 다툼 없이, 마찰 없이 살아서 마음은 편했다. 누군가 나를 괴롭히거나 시비를 걸면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며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한 경험 속에서 깨어지고 부서지면서 싸움과 투쟁을 해보며 컸어야 했다! 친구들과 많이 싸워도 보고 화해도 해보며, 내 목소리를 높여 나의 주장을 소리쳐 보기도 하며 자랐어야 했다. 지금의 나는 싸움을 하는 방법, 내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모른다. 살면서 해 본 적이 거의 없기에.


출처: 웹, kor.pngtree.com

  둘째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며 속상해한다. 같은 반에 기가 센 H라는 여자 아이가 있다. 그런 기가 센 아이들은 편 가르기를 좋아한다. 자신의 밑에 들어와서 함께 노는 아이는 'in', 다른 세력을 형성하거나 따로 오는 아이는 'out'. 둘째는 H와 함께 놀지 않고 자신과 맞는 남자아이인 W와 자주 논다. H는 둘째에게 한 마디씩 던진다.

  "급식 줄 설 때 삐져나왔잖아. 뒤로 가."

  "수업시간에 좀 조용히 해."

  둘째는 맞서 대꾸하지 못하는 성향이다. 나를 닮았나 보다.


  하루는 H가 둘째에게 친구를 왜 때리냐며 사과하라고 한다. 자신과 함께 노는 J를 둘째가 치고 가는 것을 봤다면서. 때리지도 않았는데 사과를 해라고 한다. 맞은 당사자도 아니고 옆에서 봤다는 H가 둘째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H에게 있어서 우리 둘째는 'out'이었던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스럽다. 결국 J에게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하여 사과를 하고, J는 사과를 받았다고 한다. J는 H의 사람이었기에 H가 시키는 대로 어리둥절하게 사과를 받은 것이다.


  그 일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본다. 담임을 맡아보면 그런 아이가 있다. 자기가 대장이 되어 자기 밑에 부하를 부리듯이 친구들을 대하고, 뜻이 맞지 않는 아이들을 공격하는 아이. 좋게 말하면 리더십이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친구들을 자신의 아래에 두고 휘두르는 성향의 학생이다. 그런 기가 센 아이를 상대로 맞대응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은 교사가 도움을 주지 않아도 된다. 둘이 의견이 안 맞아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상대방을 대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당하는 아이들은 누군가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당하면서 지낼 수밖에 없다.


  나의 자녀가 주도적으로 아이들을 이끌고 세력을 형성함에 있어서 중심에 있다면 사실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항상 당당하고 밝은 모습으로 아이들 속에서 지내는 자녀의 모습을 보면 부모는 흐뭇할 것이다. 하지만 그 자녀가 친구를 대함에 있어서 동등하게 대하는지, 자신의 아래에 두려 하는지는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자녀의 성향이 어떤지 잘 파악하여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부모가 어느 정도 안내를 해주어야 한다. 친구는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고,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나의 자녀가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고, 친구에게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성향의 아이라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나의 어린 시절처럼 누군가 건들지 않는다면 정말 다행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에게 못되게 구는 상대방에게 당당하게 말하는 방법, 자신에게 일어난 불합리한 일을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말하여 조치를 받는 방법을 꼭 알려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기가 센 아이에게 당하면서 살게 되고, 주눅 들어 지내며 마음의 병이 들게 된다.


출처: 블로그, 나를 만나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

  살면서 누군가와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가장 사랑하고 아껴주며 살겠다고 다짐한 부부도 아이를 낳고 살다 보면 싸울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한 상황이 발생할 때 잘 싸워야 한다. 여기서 잘 싸운다는 건 자신의 입장을 상대방에게 잘 설명하여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하도록 하는 것, 언성이 높아지고 분위기가 나쁘게 되더라도 피하지 않고 맞서는 것을 말한다. 싸우는 분위기가 싫어서 회피하게 되면 상대방은 나의 마음을 모르고 자신의 방식대로 계속 살아간다.


  어릴 때부터 그러한 경험을 많이 하지 못한 나는 아직도 누군가와 맞서는 것을 유연하게 잘하지 못한다. 내가 손해를 보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더라도 그냥 지내는 편이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는 조금씩 앙금이 쌓인다. 그 앙금은 점점 나에게 스트레스가 된다. 아마도 나는 그것을 술로 풀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상대방과 맞서면서 살고 싶다. 하지만 잘 안된다. 아직도 너무나 어렵다.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나의 천성이 쉽사리 바뀌지가 않는다. 어릴 때 많이 싸워 봤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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