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국밥'이라는 음식은 참 서민적이다. 추운 날씨에 후후 불어가며 뜨끈한 돼지국밥을 한 그릇 뚝딱하면 배도 부르고 마음도 따뜻해짐을 느낀다. 특히 경상도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친숙한 음식이다. 첫째가 즐겨보는 '교양만두'의 내용 중 국밥의 유래를 보니, 6.25 전쟁 때 부산지역에서 돼지국밥을 만들어 먹던 것이 돼지국밥의 시초라 한다. 오늘은 나의 소울푸드인 돼지국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출처: 블로그, 장유골프레슨김태경프로
대학시절, 술자리의 마지막은 거의 돼지국밥 집이었다. 1차, 2차, 3차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마지막 생존자들은 돼지국밥집으로 향했다. 국밥이나 수육을 시켜서 뜨끈한 국물과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날 전투를 마무리하였다. 그 시간까지 남아 돼지국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과는 보다 끈끈한 전우애를 느꼈다. 돼지국밥의 국물이 식으면 허연 사골 국물이 진득해지는 것처럼 진득한 전우애.
군 제대 후 발령을 받아 객지에서 자취를 하며 지냈다. 총각이 매번 밥을 챙겨 먹는 것은 참 어렵다. 특히나 과음을 한 다음날은 아침을 거르고 출근을 한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좀비처럼 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저녁에 돼지국밥 한 그릇을 먹으러 간다. 총각에게 있어서 돼지국밥은 참 유용한 메뉴이다. 혼자 밥을 먹어도 어색하지 않고, 해장하기도 좋다. 결혼 전까지 돼지국밥을 저녁으로 참 많이 먹었던 것 같다.
둘째가 어릴 때는 돼지국밥을 싫어했었다. 가족 외식을 해도 돼지국밥 메뉴는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둘째가 꽤 컸는지 돼지국밥의 맛을 조금씩 알아간다. 날이 쌀랑한 요즘, 가끔 돼지국밥을 먹으러 간다. 네 식구가 각각 하나씩 시켜서 자신의 몫을 먹는다. 여보도, 첫째도 한 그릇의 돼지국밥을 비우고, 둘째의 것은 내가 조금 더 먹는다. 짭조름한 맛을 좋아하는 둘째는 새우젓을 먹는 재미로 국물을 떠먹는다. 국물에 둥둥 떠있는 새우를 숟가락으로 건져서 호록 호록 야무지게 먹는다.
따뜻한 국밥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넣을 때 입 안 가득 퍼지는 돼지국밥의 향이 요즘처럼 추울 때는 참 땡긴다. 예전에는 가격이 육천 원, 칠천 원을 하더니, 요즘에는 한 그릇에 만원 돈이다. 물가가 참 많이도 올랐다. 요즘 음식점에서 소주, 맥주를 거의 먹을 일이 없기에 식당에서 먹는 주류 가격을 몰랐는데, 최근에 돼지국밥을 먹으러 가서 알았다. 소주, 맥주 한 병에 오천 원이나 한다. 사천 원 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오천 원이라니! 내 월급 빼고 물가는 팍팍 오른다.
우리 집 인근에 돼지국밥의 양대 산맥 가게가 거의 붙어 있다. 남도돼지국밥과 장수촌돼지국밥. 두 돼지국밥집 모두 각자의 특성이 있고 맛이 훌륭하다. 남도돼지국밥은 다진 양념, 땡고추를 따로 내어주어 손님 입맛에 맞추어 적절하게 넣어 먹도록 해준다. 나는 다진 양념과 땡고추를 듬뿍 넣고 먹는 것을 좋아한다. 장수촌돼지국밥은 다진 양념의 유무를 주문할 때 말해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다진 양념을 빼달라고 하면 하얀 국물이 나온다. 장수촌은 좀 더 정갈한 느낌, 남도는 좀 더 푸짐한 느낌이다. 둘 중 그날 가고 싶은 돼지국밥 집을 정해서 간다.
요즘은 돼지국밥도 포장하거나 배달도 가능하다. 포장해 와서 집의 냄비에 넣고 끓여 먹으면 양은 좀 더 많지만 가게에서 먹는 그 맛이 안 난다. 뚝배기에 팔팔 끓여 나온 돼지국밥에 새우젓을 넣고 휘휘 저어 먹는 그 맛이 집에서는 재현되지 않는다. 돼지국밥은 가게에 직접 가서 먹는 것을 추천한다. 투박한 뚝배기의 돼지국밥 국물을 후후 불면서 먹는 그 맛이 좋다.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는 돼지국밥도 좋고, 추운 겨울날 언 몸을 녹여주는 뜨끈한 국물도 좋다.
최근 먹어본 돼지국밥 중 최고의 맛은 작년 여름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여보와 자전거를 타고 멀리 라이딩을 갔었다. 점심시간이 다되어 그쪽 지역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집으로 갈 요량으로 무엇을 먹을지 찾아보았다. 장수촌 돼지국밥집이 검색해 보니 눈에 띈다. 정말 더운 한여름날, 돼지국밥은 좀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열치열'의 마음으로 찾아갔다. 자전거를 타느라 땀을 비 오듯 흘리고, 배가 등가죽에 붙어 있는 상태에서 먹는 돼지국밥은 환상 그 자체였다.
돼지국밥에 밥을 말고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입에 넣을 때마다 기운이 차오르는 것 같다. 양파와 땡고추를 간간히 먹어주고, 김치와 깍두기도 섞어서 함께 먹는다. 어느새 뚝배기의 바닥이 드러나고, 우리 부부는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다. 특히나 아이들을 챙겨 먹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과 여유로움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그날 배부르게 돼지국밥을 먹고 가게의 커피머신에서 달달한 커피 한 잔을 뽑는다. 커피로 입가심을 하고 잠시 쉬었다가 집으로 향해 자전거를 달렸다. 돼지국밥 파워로 집까지 무사히 자전거를 타고 왔다.
서울에 놀러 가서 돼지국밥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 경상도의 돼지국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음식의 생김과 분위기는 비슷한데, 미묘한 차이가 있다. 서울의 김치와 깍두기가 경상도의 것보다 덜 짭조름하고, 달달한 맛이 많이 난다. 서울의 돼지국밥은 국물이 경상도보다 덜 진한 느낌이다. 내가 가 본 그 식당이 그랬을 수도 있고. 아무튼 그때 생각하였다. 역시 돼지국밥은 경상도에서 먹는 것이 제 맛이구나!
경상도 특유의 맵고 짠 김치, 그리고 새우젓이 담백한 돼지국밥과 어우러져야 진정한 돼지국밥의 맛이 나는 듯하다. 경상도 사람이 거친 억양의 말투, 무뚝뚝하게 뱉듯이 말하는 대화법이 경상도 돼지국밥과 닮은 듯하다. 화려한 언변은 아니지만, 경상도 사람 특유의 무뚝뚝 쟁이 말투가 돼지국밥의 진국과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편향된 사견이니, 거부감이 드는 사람은 그냥 흘리시길 바랍니다.
출처: 블로그, 테키_ take it
가족들과 함께 돼지국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너네 아빠는 결혼 전에 돼지국밥을 참 많이 먹었다. 거의 저녁마다 먹었을 걸."
"돼지국밥을 거의 천 그릇은 먹었을 거야."
"너를 만든 정자의 8~90퍼센트는 돼지국밥으로 만들어졌을 거야."
과연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돼지국밥을 몇 그릇이나 먹었을까?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천 그릇은 넘게 먹었을 것 같기도 하다.
한 끼 식사로도 좋고, 술안주로도 좋은 돼지국밥을 앞으로도 애용할 것 같다. 나의 바람은 돼지국밥 가격이 지금 한 그릇에 일만 원인데, 안 오르면 좋겠다.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면 정말 조금씩 오르면 좋겠다.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돼지국밥'을 부담 없이 주욱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