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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Nov 28. 2024

20년 지기 학군단 동기모임

학군 동기 9명이 오랜만에 모두 모였다.

  00학번인 나는 2002년도에 대학교 3학년이었다. 그 해 학군단 1년 차가 되어 동고동락을 함께한 학군 동기가 울산에 10명 있다. 그들을 알고 지낸 지 22년째이다.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동기를 과에서 만났을 때는 형이라 불렀지만, 학군단에서 만나서는 그냥 친구처럼 이름을 불렀다. 나이보다는 학군 동기라는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와서이다. 말 그대로 군대 동기!


  오랜만에 동기모임 자리가 마련되었다. 다들 마흔이 넘어 학교에서 요직을 맡고, 개개인 집안 사정상 모든 인원이 모이기가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9명이 모두 모였다. 울산에 발령받은 10명 중 1명의 동기가 개인의 의지로 탈퇴를 희망하여 아쉽지만 보내 주었다. 9명의 동기모임. 다들 잘 살고 있는지 얼굴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참 반갑다.


  초등교사는 일반 직장보다 퇴근이 빠르다. 우리의 저녁 약속 시간은 17시 30분. 일찍부터 모여서 회식이 가능하다. 존경하는 이수룡교장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초등교사는 술 먹고 회식해도 10시 이전에 집에 가야 한데이. 그래야 다음날 수업에 지장이 없거든."

  이번 여름에 전체 동기모임을 하였던 소고기집으로 퇴근하자 다들 모였다.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하니 과학과 동기가 2명 보인다. '우'와 '홍'. 그들은 과동기이자 학군동기이다. 00학번 새내기 때부터이니 조금 더 각별하다. 오랜만에 봐도 어색하지 않고 엊그제 만난 듯하다. 조금 뒤 '주'도 들어온다.

  "잘 살았나?"

  "관리자 때문에 연구부장 빡세서 힘드네. 학교 옮겨야겠다."

  "우리 학교는 민원이 장난 아니다."

  "나는  학교, 집 하며 애 보고 살고 있지."

  "저번 모임 때 말한 그 애 때문에 돌아버리겠다."


  글쓰기, 한강 책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 한 마디 한다.

  "요즘 용이도 책 본다더라."

  "책에 침 묻히면서 보는 거 아이가 ㅋ"

  다들 머릿속에 용이의 입에서 흐를 듯 말 듯하는 침을 상상한다. 예전 임용공부 시절, 도서관에서 홍이가 찍은 용이의 침 흐리며 자는 사진을 알고 있기에. 홍이는 당시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많은 장면을 촬영하였다. 홍이가 말한다.

  "너네들 예전 여친 사진도 다 있다."

  홍이는 우리들의 판도라 상자를 소장하고 있는 동기이다.


  먼저 온 친구들끼리 육회를 하나 시켜서 사이다를 한 잔 마시며 먹다 보니, '곤'과 '상'이 들어온다. 뒤를 이어 '철'과 '오', 그리고 '용'도 합류한다.

  "오늘 같은 날 술 한 잔 무야지."

  "요새 누가 술 먹고 다니노."

  "술 먹어라고 말하면 꼰대다. 꼰대."

  이제는 다들 술을 먹을 만큼 먹어서인지, 적당히 원하는 사람만 음주를 한다. 그게 맞는 것 같다. 다들 몸 생각할 나이도 되었고.


  '주'가 나에게 말한다.

  "젊을 때 '훈'도 술 많이 먹었다이가. 우리 술 먹고 사우나 가고 했던 기억도 나는데. 이제 술 많이 안 마시나?"

  "응. 내가 술을 적게 먹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위한 길이더라."

  그때 예전에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었던 '우'가 한 마디 거든다.

  "예전에 술 엄청 먹고 노래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춤추고 노래 부르다가 시간 되면 사라졌잖아. 신데렐라처럼."


  소고기가 달다. '우'가 구워주는 소고기가 맛나다. 금세 고기가 바닥나고 또 추가 주문을 하였다. 고기가 늦게 와서 직원을 호출하였다.

  "지금 썰고 있어요. 바로 나옵니다."

  우리 테이블에 고기가 왔다. 저쪽 테이블에는 아직 추가 고기가 안 왔다. '용'이 말한다.

  "우리는 왜 고기가 안 나오노?"

  "여기 고기 받으러 접시 들고 가야 하는데."

  "그래? 오케이."

  일말의 의심도 없이 접시를 들고나가는 용이. 나이를 먹어도 장난질이다!


  킥킥거리며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데, '용'이 들어오며 한 마디 한다.

  "접시 들고 가니까 아줌마가 윽쑤로 황당해하던데."

  맛난 소고기를 좋은 사람들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학교 이야기, 교실에 문제아 이야기, 군대 이야기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오늘의 압권은 '주'의 군 시절 이야기였다. 소대원과 싸운 이야기, 부소대장과의 마찰 이야기, 행보관 차를 눈으로 덮은 이야기, 결국 자신이 소대의 왕따가 되었다는 이야기 등. '주'의 구수한 입담과 맛깔스러운 욕을 오랜만에 들어본다.


  고기를 다 먹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하여 고깃집을 나선다. 남자들이 모여서 너무 떠들기에 인근 무인카페를 가기로 한다. 가서 한 사람이 음료를 다 사는 내기를 하자며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한다. 나는 먼저 간다고 하니, 그럼 가위바위보는 하고 가라고 한다. 걸리면 찻값을 내라면서. 9명 모두 주먹을 모아 가위바위보를 한다. 승부가 나지 않고, 오랫동안 진행 되다가 4명이 이겨서 빠져나간다. 남은 5명이서 다시 가위바위보를 한다. 앗! 3명이 빠져나가고 나와 '상'이 둘이 남는다.


  두 명이 겨루는 진검 승부. '홍'이 핸드폰을 꺼내어 동영상 촬영을 한다. '상'과 나는 힘차게 가위바위보를 외치며 둘 다 '보'를 낸다. 비겼다. 주변 동기들은 흥미진진한 승부에 눈이 반짝반짝한다. 누군가가 외친다.

  "남자는 주먹이지. 바위 내라. 바위!"

  다시 가위바위보를 외치며 나는 '가위'를 내고, '상'이는 '보'를 낸다. 모두들 박장대소를 하고, 나는 옆에 서있던 '오'를 껴안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다. 앞으로 나이를 먹어 50살, 60살이 되어도 가위바위보를 계속할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울산지부 학군 동기모임을 가졌다. 9명 모두 참석하여 얼굴을 보니 좋다. 2차 카페를 가지 못하고 집으로 향하여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다음 기회에 또 보면 된다. 다음 동기모임 때 만나도 어색함 없이 반갑게 인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것이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기도 하고, 새로운 근황이 업데이트되기도 할 것이다. 집으로 가기 위해 운전석에 앉은 나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마흔넷, 마흔다섯 살을 먹은 동기들이 각자의 가정과 일터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잘 지내길 바란다. 승진을 목표로 달려가는 동기들은 걸림돌 없이 무사히 승진하기를 바란다. 각자의 자녀들이 모두 속을 안 썩이고 바르게 잘 자라길 바란다. 동기들 모두 자신이 품은 꿈을 이루기를 바란다. 다음 모임 때 또 만나자. 다음 모임 때 가위바위보 패자는 과연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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