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리뷰
2019년 초연한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는 19세기 초 이탈리아 발명가 펠리그리노 투리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창작뮤지컬로, 이탈리아의 작은 바닷가 마을 마나롤라를 배경으로 한다. 실제 펠리그리노 투리는 시인 라빈도의 조카 캐롤라인 백작부인과 사랑에 빠졌고, 점차 시력을 읽어가는 그녀가 투리와 그녀의 친구들에게 편지하며 연락할 수 있게 시각장애인도 쓸 수 있는 타자기를 발명한 인물이다. 김한솔이 극작과 작사를, 김치영이 작곡을, 김지호가 연출을 맡았다.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총 세 명이다. 발명가 투리, 작가 지망생 캐롤리나, 유명 작가 도미니코. 평생 혼자 지내며 방에서 발명을 하는데에만 집중했던 투리는 로마에서 다시 마나롤라로 돌아온 어린 시절의 친구 캐롤리나를 만나며 점차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캐롤리나는 또 다른 어린 시절의 친구 도미니코를 우연히 만나게 되며 함께 글을 읽고 쓰는 모임을 하게 된다. 서로 앙숙인 것만 같았던 투리와 캐롤리나, 그리고 투리와 도미니코는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차 관계를 맺게 되고, 투리와 도미니코는 캐롤리나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된다.
그러던 중 작가 지망생이었던 캐롤리나가 시력을 잃어가게 되면서 자신의 꿈을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자, 투리와 도미니코는 서로 협심하여 시각장애인이 쓸 수 있는 타자기를 발명해 낸다. 투리는 캐롤리나에게 타자기 사용법을 알려준다.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발명을 시작해 낸 투리는,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인 캐롤리나를 위해 발명 작업을 한다. 그가 만들어낸 타자기로 한 글자씩 쓸 수 있게 된 캐롤리나와 투리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캐롤리나가 써 내려간 글자는 투리가 캐롤리나를 위해 만든 ‘너를 위한 글자’가 된다.
이처럼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는 평범했던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불행, 그리고 그 불행을 넘어서는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극 초반에는 흔히 말하는 이과와 문과의 대립,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던 인물들 간의 갈등이 주를 이루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이렇게 상반되었던 이들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나아가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작품은 ‘다름(difference)’과 ‘이해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무대는 몽글몽글한 느낌을 간직하며 수채화와 같은 색채를 띠고 있다. 무대 바닥은 투리의 타자기 발명과 작품의 제목인 ‘너를 위한 글자’를 강조하듯 타자기 자판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전반적인 음악은 피아노를 주선율로 하여 서정성을 강조한다.
점점 자극적인 것에만 반응하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회 속에서 본 작품은 한 편의 따뜻한 동화책을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에 공연 중 곳곳에서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소 반복되는 선율과 뚜렷한 사건 전개의 부재로 인하여 작품이 단조롭다는 인상을 받았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세 명의 인물이 서로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지고, 관심 분야가 달랐던 만큼 음악을 통해 – 예를 들어 인물마다 주요 선율을 이루는 악기를 다르게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 이것이 표현되어 갈등 관계에 있던 인물이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각 인물의 음악이 합쳐지는 양상을 보였다면 음악적으로 더욱 풍성해지지 않았을지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