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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srkim May 15. 2024

심장 이식 수술 참관기

나는 심장내과 중에서도 심부전을 전공으로 진료하고 있다. 심장의 기능이 저하되어 혈류가 공급이 잘 되지 않는 환자들을 주로 보고, 약물치료로 효과가 부족할 땐, 심장이식이나 또는 심장보조장치 (LVAD: left ventricular assist device) 수술을 하는 환자들을 주로 보고 있다. 외과의사는 아니지만, 이러한 수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주로 보기 때문에 심장외과와 꽤 가까이 협력하여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2022년 봄.

나는 심부전 세부전공 펠로쉽을 마쳐가고 있을 때였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긴 수련시간의 끝이 보이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졸업 요강 중에 하나가 심장이식수술을 참관하는 것이 있었는데, 사실 이일 저일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있었다. 근데 이런 내 꼼수를 알았는지, 그 당시 내 지도 교수가 어느 날 넌지시 물었다.


"그래서 이식수술 참관하는 갯수는 다 채웠니?"

"... 아뇨, 그거 꼭 해야 되나요?"


사실 뜨끔했다. 이제 2달만 있으면 졸업하는데, 긴 수련의 시간 귀차니즘으로 인해서, 난 어찌하면 몰래 졸업을 해볼까 하고 있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정말 좋은 경험이니, 미래에 도움이 될 테니 꼭 참관해 보라고 해주셨다. 또 막상 그렇게 말을 듣고 나니, 피할 순 없겠다 싶었다. 그리곤 어찌어찌하여 저 대화를 나눈 지 하루 이틀이 지난 즈음,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심장기증수술을 하러 가는 작은 비행기에 우리 대학병원 심장외과의사분과 동행하게 되었다. (근데 이게 웬걸. 난생처음 타보는 프라이빗 제트비행기로 뉴욕으로 날아간단다)


심장 기증받으러 가는 출장여행. Donor run이라고 한다. 비행기 탄다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나 싶다


뉴욕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대기하고 있던 앰뷸런스를 탔고, 퇴근시간 러시아워 맨해튼 트래픽을 엄청난 사이렌을 울리면서 고속돌파했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에서 처럼 말이다). 기증자가 있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수술실로 향했고. 이어서 곧 어느 한 뇌사환자가 수술실로 들어왔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젊은 나이에 마약류 과다복용으로 사망하여 뇌사판정을 받고 장기 기증을 하게 되는 것으로 기억된다.


곧 모든 수술실 스태프가 다 준비를 마쳤고, 우리 모두는 장기기증 코디네이터라는 분의 지도 아래 모든 사람이 기증자에 대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뇌사로 세상을 떠나게 된 생명에 대한 묵념, 그리고 그 사람이 남기게 된 장기들이 살리게 될 여러 명의 생명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 항상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진료해오고 있었지만, 그렇게 장기기증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함께 자리하니 정말 숙연해졌고, 감회가 남달랐다.


그리곤 순차적으로 수술이 시작되었고, 흉골이 절개된 지 15분 즈음 지난 뒤 우리 병원 외과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기증자 몸 안에서 뛰고 있는 심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외과의가 아닌 내과의로서 수년간 심장내과 전공을 해왔던 나로서는, 항상 책으로나 아님 영상으로만 심장에 대해 공부해 왔었는데. 그렇게 정말 살아 숨 쉬는 심장을 내 눈앞에서 보게 되었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정말 생명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감탄과 경외감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순간의 감탄과 희열도 잠시. 외과선생님은 곧 카운트다운과 함께 심정지를 시작했고,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심장은 절제되어서, 기증자 몸 밖으로 나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말 그렇게 살아 숨 쉬는 것 같던 그 심장은 죽은 듯이 미동도 없이 축 쳐진 채로 얼음박스 안으로 옮겨졌다.


정말 이제부턴 촌각을 다투듯이 보스턴으로 복귀해야 했다. 아까처럼 앰뷸런스는 차도와 인도를 넘나들며 공항으로 향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우리는 프라이빗 제트기 위로, 그리고 곧 보스턴에 도착했다. 이렇게 도착하고 나니 새벽 1시가 다 되었던 것 같다. 너무너무 졸려웠지만, 이미 우리 대학병원에서는 기증수여자의 준비수술이 진행되고 있었고, 우리가 가져온 얼음 박스 안에서 기증자의 심장을 꺼내 외과선생님이 육안으로 다시 한번 검사를 꼼꼼히 한 뒤, 수여자의 몸속으로 정식 이식 수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눈을 비비며 마취과 선생님 옆에서 심장이 이식되는 과정을 조심히 지켜봤다.


조용한 새벽 수술실.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외과 집도의 선생님은 아무런 피곤한 기색도 없이 수술을 이어나가신다. 이제 곧 끝나려나.. 나는 허리도 아픈데 하면서 흘깃흘깃 심장 쪽을 넘겨보고 있는데. 근데 언젠가부터 뭔가 꿈틀 거린다. 죽은 듯했던 심장이 다시 뛰는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전 나이 어린 뇌사 기증자 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뛰던 심장이었는데.

몇 시간 동안 얼음박스 안으로 비행기를 타고 이송되어

이젠 지금 다른 생명의 몸속에서 다시 꿈틀거리는 심장을 보면서.

속으로 감격과 감탄이 이어졌다.

정말 비의학적인 표현이지만, 기적 같았다.


비록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 기증자의 심장이 다른 어떤 환자의 몸 안으로 들어와 저렇게 또 다른 생명의 기회를 주는 과정을 내 눈으로 보고 나니 너무 벅찼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감탄하고, 그리고 이러한 심장을 수여하는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도, 다시 한번 느꼈다.


비행기 이륙을 기다리던 찰나 아름다웠던 저녁노을.


미국 생활이 힘들다,

의대 공부가 힘들다,

사는 게 외롭다,

병원 일이 많다

불평불만은 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지만,


사실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그 순간,

그리고 정말 함께 기대하고 기다리던 내 환자들이 심장이식을 받고 새 삶을 선물로 받을 때,

그리고 그들이 건강한 발걸음으로 병원 문을 나설 때.

그리고 건강한 표정으로 외래에 정기 진료를 받으러 와서 지난날 중환자실에서의 이야기들을 재밌었던 추억처럼 꺼내곤 할 때,

난 아직, 꽤 많이,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이렇게 성공적인 치료와 수술을 마치지 못하는 안타까운 환자들도 있고 그들의 기억이 내 마음 한 켠에 아픈 부분으로 남아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환자들과 함께 삶과 생명의 희망을 같이 고민하고 기다리고 같이 기뻐하는 그 순간들이 지금 나에겐 의사로서의 소중한 시간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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