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처음부터 초등교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가득한 편이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맹랑함', '지나치게 긍정적임'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그 때는 되고픈 것, 하고픈 것이 많았는데 그 마저도 겉멋이 가득한 것들이었달까. 예를 들어 끝장나는 가창력과 스타성으로 음악 앨범을 몇 장 낸 건축가라든지, 그린피스에서 동물 보호를 위해 변호하여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국제 변호사라든지, 위험을 불사하고 사회 1면을 장식할 특종을 잡아내는 바람에 보도 내용보다는 내가 더 유명해지는 정의로운(최소한 그렇게 보이는) 언론인이라든지. 얼마나 맹랑한지 돌아보면 참으로 우습다.
그럼에도, 꿈이 많았던 그 고교시절의 내가 부끄럽지는 않은게 실은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세상에서 제일 멋진 교실을 꾸려가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왕창 받는 사람이 되는 거창한 꿈을 꾼다. 더불어 자기 만족을 위해 정신 승리도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서 좌절보다는 뿌듯함을 알아서 채우는, 그런.
이런 나의 모습을 잘 포장해보자면 스스로 인생의 재미와 의미를 찾아갈 줄 아는 자기주도적이면서 삶에서 만나는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금방 마음을 추스르는 회복탄력성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니! 요즘 교육에서 기르고 싶은 인재상이 바로 나라는 것 아닌가? 자화자찬에 가까운 편향된 분석이지만 실제로 나는 좀 그런 편이다. 하고자 하는 것엔 우선 덤벼보고 내게 생기는 모든 일들은 내 인생이라는 거대한 대서사의 완벽한 결말을 위한 복선이라고 여기는 편인데 어쩌면 원영적 사고 이전에 영인적 사고가 있었을지도. (비난은 거절한다)
아무튼 이런 편향적 분석의 결론은 이런 나의 모습이 타고난 기질일까, 아니면 살아가며 삶에서 겪어온 것들이 만들어 준 모습인 걸까를 고민하게 만든다. 당연하게도 정확하게 진단 내릴 수야 없지만 나의 경우에는 상당히 후천적으로 지금의 성향이 완성된 것 같은데 이런 추측은 비교적 생생한 유년 시절의 기억에 근거한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에는 무난한 아이였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그렇다고 못하는 것도 없는데다 적당히 칭얼대고 적당히 순종적인 삼남매의 둘째. 쑥쓰럼도 많고 어딘가에 나설 만큼 비범하지도 않던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해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변하게 되었다. 나는 그 변화를 성장이라 말하고 싶다.
특출나게 공부를 잘하던 언니와 달리 나는 학업에 있어서 그냥 저냥 '곧잘'하는 정도의 아이였는데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봤던 시험에서 놀라운 성적을 받게 되었다. 몇 과목을 치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수학에서 한 개를 틀린 것 빼곤 다 맞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이후에 내 무의식에 '오, 어쩌면 내가 공부를 좀 잘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심어졌고 그 무의식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자신감' 비슷한 것을 키워줬는지 모르겠다. 아, 사실 그 때 그 시험은 한 반에 올백을 맞은 아이가 대여섯명 될 정도여서 내가 진짜로 공부를 잘했다고 보긴 좀 어렵다. 그래도, 일단 자신감을 가졌으니 최소한 나에게는 뿌듯한 결과였다.
그렇게 3학년 때는 그 전까지 음치인 줄 알았던 내가 반대표로 전교 동요 대회에 나가게 되었고, 4학년 때 예체능 올백(참으로 특이한 이력…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러다가 성적을 보여주며 예체능을 다 맞는 애는 처음 봤다고 할 정도였다)과 학예회 공연 1열을 차지한 이후로 나는 어딘가에 나설 수 있을만큼의 능력치와 자신감을 완전히 장착하게 되었다.
5학년 때의 기억은 정말이지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도 열정적인 담임 선생님과 함께 어린이날 행사에 율동 공연도 하러 갔었고, 처음으로 축구를 해 봤으며 학교 생활에 가장 만족하며 즐거워했던 시기였다. 6학년 때는 매주 중간놀이 시간에 이천 명이 넘는 전교생 앞에서 새천년 건강체조 시범단을 하며 일종의 담력(?)을 키울 수도 있었다.
아, 물론 나에게도 타고난 '잘하고 싶은' 마음은 분명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바른 글씨 도장을 받고 싶어서 공책 쓰기를 하며 몇 번을 썼다 지웠다 했는지 모르겠다. 응큼하게 원래 잘하는 애처럼 보이고 싶어서 티는 안 내려고 했던 기억까지 난다.
장황하게 내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구구절절 이야기 한 이유는 초등학교 시절에 내가 속한 교실과 학교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한 단계씩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 글을 읽는 이도 공감해주길 바라서이다. 이후 자아의 암흑기 같았던 사춘기 시절을 겪으면서도 다시금 단단한 내 모습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 또한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멀리 돌아온 글이지만,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던 내가 지금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초등교사의 삶을 살고 있는 이유는 내가 받았던 초등 교육이 유의미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 참 많은 것을 빚졌다.
잠재력만 갖고 있던 내가 스스로 나를 피울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건 아무래도 초등학교 시절에 받은 많은 기회에 기인한 듯하다. 그래서 어떤 마음으로 교사가 되었건,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빚을 이자 왕창 쳐서 되도록 많은 이들에게 갚아야 한다.
초등교사로 산지 햇수로 10년. 얼마나 많은 이에게 그 때의 빚을 갚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생각한다.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교사의 삶을 살고 있다고. 그리고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초등교육은 정말이지 중요하다. 교육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삶을 바꿔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은 잣대와 시선에서 예전만 못한 학교와 교육의 위신을 안타까워하며 나는 앞으로도 정진할 것임을 혼자 다짐해본다. 초등교육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며, 또한 내가 있어 초등교육이 참 다행이라는 자신감을 가지며 횡설수설 긴 글을 마무리해본다.
글쓴이 : 최영인 (수원천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