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00일
하타가야역 도보 15분 거리. 괜찮은 카페 발견!
삽살개를 닮은 강아지와 서양인처럼 보이는 카페 사장님이 일본어로 맞이해 준다.
커피 향도 좋아서 한 잔 더 시켜 먹을 예정.
오래 걸을 때면 가방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더라도 일기장은 꼭 챙겨 다닌다. 언제 괜찮은 카페를 찾아 앉아서 글을 쓰게 될지 모르니까. 세 줄 일기장에는 괜찮은 곳을 발견할 때마다 짤막하게 메모하곤 했다. 나중에 돌아가서 일기장을 폈을 때, 짧은 몇 줄에 담겨있는 잔잔함과 평화로움을 맡길 바라면서. 분명 한국에 돌아가면 잔뜩 미뤄뒀던 일들이 몰아붙일 게 뻔했다. 힘들겠지만, 내가 찾아 헤매던 일상이 곧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품고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아 썼다. 돌아가기로 했던 날짜와 하루하루 가까워질수록 꿈을 꾸는 시간은 줄었고 간헐적인 두근거림은 더 심해졌다. 점점 현실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게다. 무계획으로 온 낯선 땅에서 익숙한 일상을 찾고자 했다. 심장이 저릴 정도로 소중하게 붙잡아 가슴 한편에 두리라.
처음 일본어를 배울 때 일본에서는 자전거를 많이 탄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자전거 도둑이나 많았지, 어른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은 흔치 않았었는데, 어릴 때나 지금이나 일본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타보고 싶은데. 탈 수 있으려나. 기대 없이 자전거 대여점을 검색했다. 우리나라에 공용 자전거 제도가 많이 들어와 있는 것처럼 일본에도 ‘헬로 사이클링’이라는 자전거 대여 제도가 있었다. 고민 없이 바로 가입을 하고 근처 자전거를 찾아 빌렸다. 자전거 도로라면 어디든, 바퀴가 구르는 대로 달렸다. 엉덩이가 얼얼했지만 미지근한 바람에 머리가 흩날리는 게 기분 좋았다. 자전거 덕에 두근거리는 심장도 꽤나 들뜬 것 같았다. 비 온 다음 날이라 땅은 질척였지만 공기는 깨끗했다. 하늘은 더없이 파란빛으로 반짝였다.
“난 이래서 비가 좋아.”
물 웅덩이에 다리를 철퍽이며 진흙탕이 된 다리를 가리키며 그가 물었다.
“이래도?”
“응,” 나는 처음 그를 마주했을 때보다 훨씬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옷이야 빨고 발은 씻으면 되지만, 이 바람과 공기는 언제 또 느낄 수 있겠어.”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리를 툭툭 털더니 자전거 뒷자리에 털썩 앉았다. 얼른 출발하라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말을 삼켰다. 그는 괴물 같은 게 아니었나? 꽁꽁 묶인 나를 풀어줄 열쇠를 빌미 삼아 괴롭히기만 하는. 언젠가부터 그는 한 없이 부드러운 표정만 지었다. 왜 그렇게 보는지 물어도 답해주지 않았다. 누구인지 물어도 미소만 지을 뿐. 꿈속에서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가 주위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직장에선 무섭게 나를 몰아붙이더니. 내가 좋다면 그도 좋다고 한다. 싫다고 소리 질러도 그는 내가 좋다고 했다. 애틋한 연인도 그렇게 헌신적일 수는 없으리라.
저녁 시간, 하타가야 역 근처 오코노미야끼 집에 들렀다. 기대 없이 들어갔던 오코노미야끼 집이었는데,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는 집이었다. 내일 한 번 더 와야지. 생맥주를 한 잔 시키면서 주인분께 정말 맛있다고 말씀드렸다.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 최고라고. 한국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말을,
이곳은 일본이니까.
“넌 참 사람을 좋아하더라. “
그가 맞은편에 앉아 턱을 괴고 지긋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사람 싫어해. 사람보다는 동물이 좋아.”
새로 시켜 뜨끈한 몬자야키를 한 입 집어 먹었다.
“그런 것 치고는 저 사람이 기분 좋았으면 해서 굳이 얘기한 거잖아. 사람이 싫다면 그런 얘기도 하지 말아야지. “
몬자야키를 몇 입 집어먹고 생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뭘 말하고 싶은 거야? “
“네가 좋은 건 나도 다 좋다고.”
그는 의자에 기대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왜?”
“난 항상 네 편이야. 넌 그걸 알아야 해. “
약간은 슬픈 표정으로 바라봤다.
“옛날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난 항상 네 편일 거야.”
나는 연거푸 맥주만 들이켰다.
“돌아가면 힘들겠지. 그래도 기억해. 언제나 네 곁에서 널 응원한다는 거.”
그는 천천히 내 옆으로 일어나 손목에 잠긴 자물쇠를 하나 풀어주었다.
“그만 직시해. 이런 거 주렁주렁 달고 다니지 말고.”
맥주 한 잔을 다 마시고 잔을 내려놓자 빈 잔에서 남은 거품만이 주룩 흐르고 있었다.
“사장님, 오징어 야끼소바 하나랑 생맥주 한 잔 더 주세요.”
오늘은 배 터지게 먹고 잠이나 실컷 잘 거다.
한결 가벼워진 손목을 문질렀다.
다들 나한테 직시하라고 하네. 난 아직 꿈 속이고 싶은데.
귀국까지 이틀.
이젠 정말로 꿈에서 깰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