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게 해줘

by 우청아

새벽 3시 21분. 깊은 심호흡을 몇 번 들이쉬고 물을 마셨다. 이 두근거림은 오늘의 기대감 때문일 게다. 열린 자물쇠를 만지작거렸다. 침대에 걸터앉아 들이쉬고 내쉬었다. 괜찮다, 괜찮아. 요 며칠은 드러누워있는 게 아니라 뭐라도 하고 있으니. 이 모든 게 도움이 될 거야. 또 갑자기 열쇠를 던져줄지도 모르지. 손에 꼭 쥐고 있던 자물쇠가 일렁이다 사라졌다. 현실의 시간이다. 아, 오늘 잠은 다 잤네.


빗소리가 귀를 때린다. 며칠 화창하더니 다시 또 비가 온다. 창문을 여니 거센 빗줄기가 더욱 귀에 박힌다. 미지근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나는 계속 꿈을 꾸고 싶은데, 뭐가 자꾸 현실로 끌어들이는 걸까? 점점 줄어드는 잔고를 떠올린다. 퇴직금이 들어올 때가 됐는데. 어플을 켜 잠잠한 통장을 확인한다. 직장은 끝까지 나를 괴롭힐 참이다. 퇴직금 지급 의무 기한을 검색한다. 퇴직 후 지난 날짜를 계산한다. 만약 그 안에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꿈을 꿀 여유도 없겠지. 그날을 귀국 날로 잡는다. 직장에 예약 문자를 쓰다 지운다. 비상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얼굴 아래까지 푹 덮는다. 자자. 꿈을 꾸자. 내게 집중하자. 뻑뻑한 눈알은 꿈뻑이기만 할 뿐 절대 꿈을 보여주지 않는다.


근처 카레집 오픈 시간을 확인한다. 오전 11시. 7시간 남았다. 캄캄한 하늘이 푸른빛을 띨 때쯤 근처 세븐에 가 저지 푸딩을 사 먹었다. 부드럽고 고소한 우유맛이 향긋하게 퍼진다. 맞은편 요시노야 간판이 깜빡인다. 가게 앞에는 아르바이트 구인 공고가 붙어있다. 안에는 점원도 손님도 보이지 않는다. 빗줄기 사이에 있는 건 나와 세븐 점원과 요시노야 간판뿐이었다. 이곳에는 나를 제외하고 한국어와 한국인은 분명 없었다. 그럼 이곳은 꿈이어야 할 텐데. 일렁이는 불안감이 자꾸 나를 한국으로 끌어당긴다. 아직은 이곳에 더 있고 싶은데. 저지 푸딩을 싹싹 긁어먹고 숙소로 돌아간다.


방해금지 모드를 켜고 모든 알림을 끈다. 생전 처음 듣는 일본노래를 튼다. 이 노래에는 추억이 없으니 도쿄를 기억하겠지. 괜히 입술을 잘근잘근 깨문다. 빗소리가 잦아들었다. 오전 9시. 이 방에서 꿈을 꿀 수 없다면 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찾아 두었던 카레집보다 조금 더 멀리 나가보기로 한다. 11시에 맞춰 지하철을 탄다.




오전 10시 45분.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아기와 부부 한 팀, 커플 한 팀, 친구 네 명 한 팀. 총 세 팀이 와글와글 서 있었다. 그중 한국인은 없는지 확인한다. 다행히 없다. 15분 기다리기로 한다. 이 집 카레가 맛있다고 하니 먹어봐야지. 필시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맛일 게다. 10시 55분. 내 뒤에 또 세 팀이나 줄을 섰다. 그중 바로 뒤에 세 명의 한국인이 한국어로 뭐라 뭐라 떠들었다. 낭패다. 도쿄 여행 기분을 내기 위해 관광지를 부러 찾아온 게 패착 요인이다. 다른 음식점이 뭐가 있는지 둘러봤다. 라멘집, 우동집, 가루비집, 스시집. 카레만 한 메뉴가 없다. 참기로 한다.


“다음 손님 들어오세요. “


좁은 식탁을 조심히 지나 겨우 앉아 주문을 한다. 쌀을 고르고 맵기를 골랐다. 밥을 바로 짓기 때문에 15분 걸린다고 했다. 그 사이 한국인 세 명이 내 옆 테이블에 들어와 앉는다. 카레가 무슨 20000원이나 하냐며 너무 비싸다고 투덜댄다. 점원이 계산서를 갖다 준다. 2600엔이라고 쓰여있다. 약 26000원이네. 새벽에 켜본 통장 잔고가 떠오른다. 어제 문구점에 가서 결제한 내역이 떠올라 따져본다. 하루에 얼마를 써야 합리적 일지 따진다. 한 끼에 20000원이 넘는 식사는 분명 사치다.


26000원짜리 카레가 나왔다. 한 숟갈 푹 떠서 먹었다. 맛있다. 분명 맛있는데, 26000원짜리가 맛없으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닌가? 옆 테이블에서 ‘맛있긴 하네’라며 한국어로 떠든다. 그놈의 돈. 가성비. 퇴직금. 직장. 지긋지긋하다. 시부야는 꼭 한국 어느 시내 같다. 다시는 오지 않기로 한다. 숙소를 도쿄 시내에서 먼 곳으로 잡아 다행이다. 점심을 먹고 다시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세븐에 들러 저지 푸딩을 먹으며 맞은편 요시노야를 봤다. 꿈에서 깨는 날로부터 나흘 전. 그전까지는 깨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