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데 고난이 없었던 적은 없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를 실험하고 내가 이겨내야할 고난들은 늘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고된 삶이 힘들고 버거워 감당하기 벅찼을 때, 나는 글을 썼다. 남들처럼 술을 마실 줄 아는 것도 아니요. 또 수다 떠는 걸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한다. 외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하면, 속이 시원하다기보다는 괜한 얘기를 한 것 같아 후회스러웠다. 글은 그런 면에서 말보다는 필터처럼 다시 한번 걸러낼 수 있는 퇴고가 있어 마음이 편하다. 글을 쓸 때는 깊은 고민과 생각이 필요하다. 깊은 고민으로 쓴 글은 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깊이 있는 말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글이 말보다 더 신뢰하게 되고 공감하게 한다.
어릴 적부터 써온 일기장들을 몇 권 가지고 있다. 우연히 서재를 정리하다 글이란 걸 쓰기 시작하던 초등학교 때, 메모하는 걸 좋아해 매일 빼곡히 쓴 다이어리를 발견하고는 피식 웃었다. 컴퓨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워드로 일기를 써왔다. 매일 쓰지는 않았다. 쓰고 싶은 얘기가 있을 때 썼다. 그것도 오래되니 내 컴퓨터에 꽤 큰 용량을 차지하고 있다. 방학이면 학교에서 약속이나 한 듯 늘 내주던 숙제가 바로 일기이다. 일기 숙제는 우리 딸아이 방학 숙제로 지금도 대물림되고 있다. 그만큼 일기는 모든 글쓰기의 기초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제일 귀찮아하는 숙제이기도 하다. 개학 전 몰아서 쓰는 일기가 마치 전통처럼 이어져오고 있다. 나는 그 일기를 정성껏 썼던 기억이 있다.
나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오래 전부터 글은 항상 내 옆에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대형문고를 갔었다. 그런데 한가지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었다면, 베스트셀러 진열대에 책들이 거의 대부분 에세이집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좀더 우리와 친숙한 공감할 수 있는 우리네 이야기에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 에세이집들을 열어보며, 나도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을 열면 된다.
한때 드라마작가를 꿈꾸며 한국방송작가교육원에 들어가 2년동안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다시 1년여를 공들여 준비해, 공들인 만큼 큰 기대를 안고 공모전에 대본을 냈지만, 탈락의 쓴맛을 보았다. 탈락은 깊은 절망을 낳게 했고, 나는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보다 생각하고, 소위 절필을 했었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삶이라 안주해 버리며 거기서 주저않고 말았다.
한쪽 문이 닫힌다고 문이 없을까?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을 찾아 열면 된다.
안주한 덕분에 사랑스런 딸을 만났고,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가장 큰 기쁨과 행복 벅찬 감동, 엄마라는 부르기만 해도 벅찬 이름으로 불리게 됐고, 아이와 함께한 소중한 추억, 값진 경험들을 얻게 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없고,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7년간의 고된 육아에서 다시 워킹맘으로 6년여동안 살림과 아이교육에 일까지 나는 하루 세 번을 출근하듯 그야말로 매일 스물 네 시간을 풀로 뛰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루는 거울을 보니, 하나둘 희긋희긋해진 흰머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색하고 순간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어색했던 흰머리가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 물밀 듯이 허탈감이 몰려왔다. 어찌어찌하며 코로나 3년을 힘들게 버텼고, 지금도 나를 믿고 따라주는 학생들과 어머님들이 있어 감사하게도 공부방 운영을 하고 있지만 밀려오는 허탈감과 공허함은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나를 다시 찾고 싶었다.
가끔 아니 자주 나는 왜 이러고 있나?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했을까?
책망하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늘 결론은 나 있다. 떠날 수도 도망갈 수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럴 때마다 자주 연락하는 딸아이 친구 엄마가 있다. 딸아이 세 살때부터 집근처 문화센터를 다니며 알게 된 딸아이 소꼽친구이다. 내가 이사를 한 이후로도 자주 연락을도 하고 만나기도 하며 지낸다. 딸아이 친구엄마이기도 하지만 엄마들끼리도 잘통해 마음속 이야기를 터놓으며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이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터놓고 이야기하다보니 결혼 전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됐다. 결혼 전 사귀던 한 남자친구로 인해 글을 쓰게 됐고, 그로 인해 전공도 하게 되고, 또 드라마공부까지 하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그녀는 내게 말했다.
“안썼어도 그동안 쌓아온 경험들이 있고, 생각한 것들도 있어서 표현하고 싶은 게 있을 거에요. 어쩌면 운 때가 맞아가고 있을 수도 있어요!”
내게 다시 글을 써보기를 권유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와서 다시... 공모전 떨어지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나이에 다시 한다고.’
”어디선가 봤는데요. 사람은 숨쉬기 때문에 잘 될 때와 안될 때 기복이 있는 거라고... 꾸준히 하면 된다고요.“
사람이 숨쉬기 때문에 잘될 때와 안될 때 기복이 있다는 말이 참 와닿았다. 숨을 쉰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늘 조용히 없는 듯 있는 듯 들어내지 않으며 살아왔다.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것처럼 숨죽이며 살아왔던 내게 숨을 쉬기 때문에 잘될 때와 안될 때 기복이 있다는 말은 너무나 원론적인 얘기였지만 신선하게 와닿았다. 다시 숨을 쉬라고 말을 해주고 있는 듯했다. 내가 다시 스스로 호흡하며 깊은 들숨과 시원한 날숨을 쉴 수 있도록 말이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칭찬하기보다는 책망하는데 익숙했다. 잘될 때는 그저 운이 좋아서이고, 잘못했을 때는 내가 그렇지 뭐!하며 심하게 채찍질을 해왔다. 스스로에게 한번도 관대한 적이 없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학생들에게는 수없이 많은 칭찬을 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엄격한 잣대로 나를 심판했던 것이다.
그런 내게 어쩌면 지금이 글을 쓸 때라는, 글감을 던져주고 있다고, 자주 글을 쓰라고, 나를 숨쉬게 하는 그녀의 말들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묵혀두고 있었던 실타래들이 하나둘씩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워킹맘으로 엄마로 아내로 선생님으로 정신없이 살아온 나를 되돌아보게 했고, 나를 스스로를 찾게 하는, 다시 제2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주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시 다른 문을 찾아 열면 된다.
처음 나의 글은 시작은 나의 블로그를 만드는 데서 시작했다. 첫 포스트 제목은 ’다시 찾은 나의 청춘의 시간‘이었다. 오래전 다니던 광화문의 옛 직장을 찾아갔던 얘기이며 그곳에서 늘 퇴근하고 들리던 교보문고를 들어서며 나의 청춘의 이야기는 시작된다는 포스트였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권유대로 브런치에 문을 두드렸다. 나의 청춘의 시간을 찾기 위해... 다시 새롭게 써내려갈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