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오기 전, 20평도 안 되는 오래된 옛날 아파트에서 살았었다. 딸아이 놀이방으로 쓰는 방과 주방을 터야 아이 놀 공간이 나올 정도로 작은 집이었다. 아이가 아직 어린 유치원생이었지만 그래도 아이가 제대로 놀 공간이 없는 게 늘 미안하고 속상했다. 옛날 아파트다 보니 또래 아이들도 거의 없었고, 마음껏 뛰어놀 놀이터도 마땅히 없었다. 딸아이에게는 엄마가 유일한 친구였다.
평소 딸아이가 워낙 만지고 만드는 걸 좋아하니, 딸아이랑 모래 놀이를 하면 아이가 좋아할 거 같았다. 또 이 나이에 하면 아이 정서발달과 두뇌발달에도 좋다고 하니 뭐든 좋다면 경험시켜주고 싶은 게 엄마 마음. 엄마로서 놓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집이 좁으니 마땅히 아이가 모래 놀이를 할 공간이 없었다.
고민 고민 끝에 아이 놀이방과 연결되는 베란다에 만들어주면 좋겠다 싶었다. 공간은 작지만, 마치 옛날 우리네 다락방 같은 아늑한 느낌이 날 것 같았다. 당장 시작은 했지만, 한 가지 애로사항이 있었다. 놀이방과 연결된 베란다에 아이가 넘기에는 꽤 높은 턱이 있었다. 아이가 놀이방을 지나 베란다에서 놀기에는 오르내리기 좋은 계단이 필요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찾아봐도 우리 집에 딱 맞는 계단을 살 수 없어, 맞춤 주문 제작했다. 계단을 만들어 놓고 보니 정말 옛 다락방 같은 느낌이 났다. 오래전, 내가 살던 집처럼 말이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에도 안방과 연결된 다락방이 있었다. 다락방에는 오르내리던 가파른 계단이 있었으며, 다락방 아래는 연탄을 때던 부엌도 있었다. 방 두 개에 부엌이 하나 있던 집이었는데, 우리 집은 할머니까지 여섯 식구였다. 큰 안방에 할머니는 아랫목에 누우시고, 아이들은 윗목에 나란히 일렬로 붙어 누워 잤다. 다락방은 여섯 식구에 걸맞게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쌓아두는 창고로 썼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커가면서 부족한 방을 채우기 위해 다락방을 치워 공부방으로 쓰기로 했다.
잡동사니는 코너에 정리해 쌓아 두고, 밝은 색의 나무무늬 새 장판을 깔았다. 그리고 마당이 훤히 보이는 다락방 창 앞에 좌식 책상을 하나 만들었다. 아이들의 키로도 닿을락 말락 할 만큼 낮은 천장의 다락방이었지만, 깨끗하게 정리해 놓으니 나름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다락방이었지만 창밖으로 아침나절이면 붐비는 수돗가가 있는 마당, 그 위로 할머니가 정성껏 담가 놓은 간장 된장 고추장들이 가지런히 놓인 장독대, 그 너머 지붕과 맞닿은 파란 하늘, 그 지붕 위로 살짝 걸터앉은 구름 조각마저도 아이들이 무한 상상력을 키우기에는 충분한 놀이 공간이었다. 나 또한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내 아이에게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턱이 높은 베란다를 어떻게 만들까 생각하다가 옛날 우리 집 마당에 있던 넓은 툇마루를 생각했다. 아버지가 나무 조각들을 구해 망치로 두드려 여기저기 못을 박고, 다락방 깔고 남은 장판을 씌어 정성껏 만들었던 그 툇마루가 떠오른 것이다. 옛날 마당에 놓았던 마루처럼 베란다 턱 높이만큼 다리를 만들어 옛날 우리 집 마당의 마루처럼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아기자기한 귀여운 캐릭터 그림의 매트를 깔았다. 다시 높이를 맞추기 위해 블록 매트를 깔았다. 만들어 놓고 보니 정말 아늑하고 좋았다. 마치 윈도 시트 느낌도 났다. 그곳에 걸터앉아 베란다 창을 바라보면, 창밖에 나무들이 빼곡히 심어져 있어 운치도 있었다. 가을이면 바닥에 쌓인 단풍나무 길도 좋았고, 겨울에는 눈 쌓인 길도 분위기 있고 좋았다. 특히 창밖에 오래된 큰 나무 한 그루가 베란다 놀이방 창가 바로 앞에 가까이 심어져 있어, 베란다 문을 열면 그 나뭇가지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였다.
베란다 놀이방을 다 만들고 난 후, 뿌듯함에 딸아이랑 기념사진도 있었다. 그리고 딸아이가 그곳에서 모래 놀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유아용으로 나온 부드러운 모래를 깔아주었다. 어린 딸아이가 앉아도 좁은 공간이었지만, 아이가 놀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엄마가 만들어준 베란다 놀이터가 재밌고 좋았는지, 아이는 놀이방보다 좁은 베란다 놀이방을 더 자주 올라가 놀았다. 베란다 놀이방을 만들기까지 과정은 힘이 들었지만, 딸아이가 재밌어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보람되고 정말 좋았다.
어느 날,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딸아이가 나를 다급히 불렀다.
“엄마!”
“응! 왜?”
“나뭇잎이 우리 집에 놀러 왔어요!”
“?”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베란다 놀이방이었다. 딸아이가 놀고 있는 베란다 놀이방으로 갔다. 베란다 문을 열어 놓았더니, 베란다 안까지 어린 딸아이의 손에 잡힐 정도로 나뭇가지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딸아이가 그걸 보고, 내게 나뭇잎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고 엄마에게 자랑을 한 것이다. 딸아이의 말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지금까지도 딸아이와의 사랑스러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내 어릴 때 그때처럼 풍족하지는 않은 시기였지만, 딸과의 예쁜 추억이 가장 많은 때이기도 하다. 부족함은 추억으로 사랑으로 채워졌다. 딸아이를 위해 만들어준 자그마한 베란다 놀이방은 나의 어릴 적 우리 집 옛 다락방처럼, 딸아이에게도 나뭇잎들과도 놀 수 있는 즐거운 놀이터였던 것이다.
아이가 꿈꾸기에는 작은 다락방도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더해지면, 나의 큰 미래를 꿈꾸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왜냐하면, 아이의 꿈이 집의 크기에 비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상상력이 풍부했던 어린 딸아이는 지금,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를 꿈꾸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 순수하고 예쁜 상상력으로 훌륭한 만화가로 일러스트레이터로 성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