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enie Jul 19. 2023

#매드맥스, 28일 후

진짜 미쳐버린 세상을 보여 줄게

오늘 처음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코로나19가 국내에 상륙한 지 2년 만의 일이다. 사내 다른 부서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동안 주변에 코로나에 걸린 사람도 없었고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경우도 없었다. 뉴스로만 코로나 확산의 심각성을 접하다 보니 코로나 시국에 대한 직접적인 느낌이 없었다. 콧속 깊이 들어가는 PCR 면봉의 매운 느낌을 경험하고 나서야, 내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뒤늦게나마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백신의 부작용도 마찬가지였다. 반나절 정도의 경미한 통증 외에는 다행히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여러 매체를 통해 백신 이상증세의 안타까운 사례들을 볼 때마다 나는 굉장히 운이 좋았던 것이었구나 싶었다. 2019년 연말에 중국 우한에서 독감이 장기 유행한다고 보도될 때만 해도 그저 지방 소도시에서 잠깐 발생하는 질병일 것으로 생각했다. 전 세계가 아직도 언제 끝날지 모를 코로나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니, <감기><컨베이젼> 같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문명화된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작은 동네에도 검진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다. 공영주차장에 세워진 임시 선별진료소는 다섯 개의 천막을 포함해 대기 공간까지 100평이 조금 안 되어 보였다. 입구에서부터 다섯 줄 정도를 굽이굽이 돌아서 줄이 끝날 때쯤 손 소독제와 일회용 장갑이 준비되어 있다. 손 소독을 마치고 양손에 일회용 장갑을 끼고 나면 직원의 안내에 따라 문진표를 작성한다. 오늘 날짜와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 기타 방역지침 관련 질문에 해당 유무를 기재한다.


임시 진료소의 직원은 총 여섯 명이 있었다. 줄 서기 안내를 하는 직원 하나, 문진표 작성 안내를 하는 직원 둘, 검진키트를 전달하는 직원 하나, 그 뒤로 문진표를 전산에 입력하는 직원 하나, 마지막으로 PCR 검사를 하는 직원 하나. 천막 내부에는 그들의 뒤로 간이 온열기구와 PC, 그리고 검진 키트를 사용단계별로 보관하는 냉장고가 있다. 다섯 개의 천막을 지나 수검자 유의사항 안내문까지 받고 나면 모든 여정이 끝난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내일 아침까지 검사 결과 메시지를 기다리는 것이다.


만약 이 모든 체계가 없고 질서도 없는 사회에 있었다면,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지금보다 더 극심한 생존의 공포로 점철되었을 것 같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해외여행을 비롯한 물리적 이동에 제약이 많아졌다. 그 사이 OTT나 배달앱 같이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시장은 급격한 성장을 했고 여기저기서 오프라인의 종말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사람은 오프라인에 살아있다. 아무리 메타버스를 비롯한 가상의 세계가 고도로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모두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생존 욕구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지금도 여전히 전 좌석이 겨우 20석 남짓한 함박 스테이크 맛집 앞에서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0분 이상 줄 서있는 사람들의 인내심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인터넷이 잠시라도 먹통이 되면 얼마나 답답하던가. 온라인은 전기 공급 없이 자생할 수 없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디지털의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교한 사회 인프라망이 유지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여전히 세계 곳곳은 다양한 종류의 정치, 경제, 외교적 갈등을 겪고 있다. 코로나가 이처럼 짧은 시간에 전 세계로 퍼졌던 것처럼, 세계화 시대에 특정 국가의 이슈는 더는 한 국가만의 일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미 한번 문명화되었던 사회가 다시 원초적으로 돌아가는 디스토피아에 대해 상상해 본다면 그 모습은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 <28일 후>에서 묘사하는 세상에 가까울 것 같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핵전쟁 이후 물과 기름을 독점한 독재자에 맞서 자유를 갈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고, <28일 후>는 좀비 바이러스로 황폐화된 도시에서 고군분투하는 생존자들의 여정을 그려냈다.


두 영화의 온도 차를 천체에 비유하자면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뜨거운 태양,

<28일 후>는 차가운 달에 가깝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정말 아포칼립스를 다룬 영화가 맞나 의심될 정도로 시종일관 신명 난다. 카피 그대로 미친 영화다. 주황빛의 황량한 모래먼지가 끊임없이 휘날리는 황무지. 온몸을 줄에 매단 채 빨간 내복을 입고 불 뿜는 일렉 기타를 정신없이 연주하는 두프 워리어. 그 뒤로 큰 북, 작은북으로 연달아 박자를 맞추며 독재자 임모탄 군대의 사기를 북돋우는 워보이들. 이들을 태운 두프 왜건이 빵빵한 스피커로 락밴드의 라이브 공연 마냥 악의 에너지를 전파한다. 분명히 출정을 준비하는 나쁜 놈들인데 이상하게 별로 밉지 않고 귀엽다.


현란한 음악 소리에 나머지 워보이들이 입안 가득 은색 스프레이를 뿌리고 ‘발할라!!!’(북유럽 신화에서 죽은 전사들이 가는 곳)를 외치며 미친 듯이 전쟁터로 달려간다. 그리고 어쩌다 임모탄 조와 단 2초라도 눈이 마주치면 “그분이 나를 보셨어! 나를 보셨어!!” 호들갑을 떨며 절대 지도자를 향한 숭배와 경의를 표한다. 그런데 이 유쾌한 모습을 하나씩 되짚어보면 전혀 유쾌하지 않다.


현대사회의 문명이 핵전쟁으로 모두 붕괴되었다. 독재자 임모탄 조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초록의 식물이 자라는 시타델을 지배하며 물과 기름을 독점해 권력을 유지한다. 선천적으로 온몸이 새하얀 워보이들은 방사능 오염의 여파로 각종 질병 때문에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임모탄은 이들을 세뇌시켜 군대를 만들고 스스로를 신격화한다. 어차피 죽을 목숨, 조금씩 연명하느니 그분을 위해 싸우다 전사하는 것이 신인류 워보이들에게는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


사령관 퓨리오사를 제외하고 여성들은 생물학적 도구로 소비된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임모탄의 자식을 잉태하거나 온종일 젖소처럼 모유 착유를 당한다. 한쪽 팔에 의수를 착용한 퓨리오사 또한 어머니와 노예로 끌려왔었고 수없이 도망친 적이 있었다는 대사로 미루어, 본래 이들과 처지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퓨리오사는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임모탄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지만 철저히 본심을 숨겨왔다. 감금된 다섯 아내들과 함께 녹색의 땅을 찾아 탈출을 시도한다.


주인공 맥스는 한때 경찰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도망자다. 맥스는 자신이 과거에 구하지 못했던 소녀에 대한 환영과 환청에 시달린다. 이제 혼자 살아남는 것 외에는 타인의 사정에 관심이 없다. 생존을 위한 전략적 제휴로 함께 하게 된 퓨리오사 일행과는 클라이맥스에 이를 때까지 통성명도 하지 않는다. 모든 관심은 오로지 워보이에게 빼앗긴 자신의 차를 되찾아 오는 것. 8 기통 엔진을 장착한 1974년식 고품격 클래식 마이카 인터셉터를 마음대로 개조하다니! 맥스는 도무지 참을 수 없다.


영화에서 자동차와 8 기통 엔진을 향한 워보이들의 사랑은 마치 종교의식처럼 보인다. 자동차 핸들을 높이 뽑아 들고 8 기통 엔진(V8)을 형상화한 손동작을 선보이며 다 함께 구호를 외치는 광기 어린 모습이 등장한다. 정신없고 현란한 이들의 자동차 액션을 보다 보면 지금 당장 어디론가 드라이브 가고 싶은 생각이 마구 든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안된다. 내 손으로 직접 운전대를 잡고 기어를 당기는 그 느낌을 느껴야 진정될 것 같다.


최근 자동차 업계가 앞다투어 발표하는 것처럼 앞으로 정말 20년 이내에 내연기관 자동차가 단종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기차는 문명사회의 보호가 필요하다. 어딘가에서는 전기차 배터리를 충전해야 하고 전기는 발전이 필요하다. 자율주행차나 전기차로만 모든 자동차가 운행된다면, IT 인프라가 망가지거나 전기 발전이 어려운 상황이 있을 때 걸어 다녀야 하는 게 아닌가 상상해 본다. 그때는 남겨진 내연기관 자동차를 발견하더라도 아무도 직접 운전하는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닐까?


길을 걷다 보면 전봇대 주변 변압기에 ‘전기는 국산이지만 원료는 수입입니다.’라는 캠페인 문구가 쓰여 있다. 대규모 전기 발전에 쓰이는 원료들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데, 부디 세계 평화가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28일 후>는 좀비 영화다. 그런데 좀비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 좀비 바이러스의 기원도 전파도 모두 인간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최초의 좀비는 연구소에 감금된 침팬지였다. 박애 정신으로 똘똘 뭉친 동물보호단체 운동가들이 연구원의 경고를 무시하고 질병에 걸린 침팬지를 구출하려다가 감염되고 만다. 혈액과 타액으로 빠르게 옮겨가는 이 질병은 순식간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을 난폭한 좀비로 만든다. 뚜렷한 학술적 정의도 없이 ‘분노’로 명명된 이 질병은 연구소의 실험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로 추정된다.


 주인공 짐이 병원에서 홀로 깨어나던 날은 그로부터 28일이 지나 있었다. 이미 도시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었다. 한때 사람들로 붐볐던 런던 도심 한복판은 적막감과 한기가 돌았다. 혼수상태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몸을 무겁게 이끌고 HELLO를 외치는 짐의 모습이 마치 촬영세트장 속에 버려진 마네킹 같다. 거리에는 피에 굶주린 좀비 떼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이 걱정할 텐데, 아들이 이제 깨어났다고 알려야 하는데 부모님은 괜찮으실까?’ 짐은 오로지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다행히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구해준 사람들의 도움으로 부모님이 있는 집을 찾아갔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갈 곳을 잃어버린 짐은 사람들과 함께 생존자를 찾는 녹음방송이 흘러나오는 맨체스터로 향한다. 그곳에 가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으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어서 빨리 오라는 말들. 희망을 주는 말들로 가득하다.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로 모두와 함께 갈 수는 없었지만 짐은 그동안 도움을 주는 귀인을 연속으로 만났다. 맨체스터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헨리 소령과 부대원들의 환대를 받는다. 짐은 이 비극적인 세상에서 참 운이 좋은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함정이었다. 맨체스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생존자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녹음방송은 부대원의 성욕을 채워주기 위해 헨리 소령이 일부러 던진 미끼 방송이었다. 그들은 짐과 함께 온 셀리나와 해나를 감금하고 짐을 사지로 내몬다. 자신들의 행보에 반기를 드는 동료를 처단하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다. 어차피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 집단의 이익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죽음뿐이다.


짐은 가까스로 죽을 위기에서 벗어나, 셀리나와 해나를 구하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총상을 입고 정신을 잃는다. 여기서부터 영화의 결말은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오리지널 엔딩과 감독판이 다르고 그마저도 세 가지 이상이다. 짐은 정말로 죽었을까? 아니면 일행들과 함께 살아남았을까? 그토록 기다리던 정부기관의 구조는 받았을까? 이 모든 것이 헛된 희망으로 품은 상상이었을까? 앞으로의 세상은 어떻게 펼쳐질까?


벌써 코로나 3년 차가 코앞이다. ‘내년이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텨왔는데, 빠져나갈 수 없는 타임 루프에 갇힌 것 마냥 다시 또 그 말을 되뇌고 있다. 이제는 날마다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들이 소개된다. 코로나 알파, 베타, 감마, 델타까지는 기억했는데 오… 오미 뭐? 오미크론? 종류가 많아지니 정확하게 입에 올리는 것도 버겁다. 람다, 뮤, 에타, 요타, 카파, 심지어 PCR 검사에 탐지되지 않는 변이도 있다고 한다.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문가들의 이야기처럼 코로나바이러스가 감기처럼 인류와 평생을 함께하는 질병 중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사람의 몫이다. 외부의 상황은 어찌할 수 없지만 사람의 의지는 바꿀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영화들도 인류의 위기 앞에서 우리가 서로 연대하지 않으면 함께 살아남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계속 말한다.


외신을 통해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시위대의 행진이나 마트에 온갖 생필품이 싹쓸이되어 곤란을 겪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 순간에는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결국 돌고 돌아 자신을 좀먹는 일이다. 우리나라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사례가 매스컴을 타기는 하지만, 서로를 배려하기 위한 개인들의 노력이 많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위기를 함께 버텨나갈 기운이 우리 사회에 하루라도 더 남아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에서 마지막 화면을 가득 채운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떤 답을 써내려 갈까?



희망이 없는 시대를 떠돌고 있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Where must we go…

we who wander this Wasteland

in search of our better selves?

-The First History Man



*History man은 매드맥스 세계관에서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역사를 새겨 후대에 전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이전 05화 #인셉션, 바닐라 스카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