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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 Xeuda Sep 07. 2023

사랑의 말을 가르쳐주세요

<밝은 밤>, <비밀의 언덕>

사랑의 말을 가르쳐주세요


   “명숙 할머니가 보내오는 편지에도 할머니는 답을 하지 않았다. 편지에서 묻어 나오는 명숙 할머니의 애정이 할머니는 버거웠다.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다보면 결국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그것도 아주 간절하고 절실하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으니까. 남선의 모진 말들은 얼마든지 견딜 수가 있었다. 하지만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으면 늘 마음이 아팠다. 사랑은 할머니를 울게 했다. 모욕이나 상처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마음을 건드렸다.” <밝은 밤 220p>


 

   얼마 전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이라는 책을 읽었어. 나(화자)의 엄마, 엄마의 엄마(할머니), 할머니의 엄마(증조모), 증조모의 엄마(고조모)까지 구불구불 이어져오는 생과 고통, 그리고 순간순간 느껴지는 환하고 아름다운 찰나를 읽어냈지. 처음엔 그냥 할머니가 해주는 옛날 이야기 정도로만 가볍게 읽었는데 앞서 가져온 문단 다음에 “영옥이에게(할머니 이름)”로 이어지는 편지를 보자마자 눈물이 멈추질 않는 거야. 책의 후반부였는데 이 뒷부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엉엉 울면서 읽었어.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잘 모르겠다.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던 여성들, 그 결핍을 채워주는 그들과 꼭 닮은 여성들의 이야기라서 그랬을까? 결국은 그게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그랬을지도 모르겠어. 나에게 쏟아지는 모진 말은 참아낼 수 있어도 누군가 애정을 담아 부르는 내 이름에 그만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거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끝도 없이 깊고 깊은 사랑은 어떤 순간엔 고통스럽게 나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 같기도 해. 우정 혹은 사랑이라고 불리는 어떤 것 말이야.


   이 책을 본 다음 날, 친구와 이지은 감독의 <비밀의 언덕>이라는 영화를 봤어. 8월의 이달음 주제인 ‘나른함’에 대해 생각하며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동네 친구에게서 불쑥 전화가 와서는, 50분도 채 남지 않은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지 뭐야. 작업도 안 되는데 잘 됐다 싶어 아무 사전 지식 없이 그냥 뛰쳐나가 영화를 봤는데 아니 글쎄 여기서도 또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어.

   90년대를 살아낸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영화였어. 이름은 명은이.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의 사랑과 칭찬을 바라며 궂은일도 도맡아 하고, 나보다 더 칭찬받는 친구를 시기하며 은근히 깎아내리려 하고, 나를 아껴주는 가족들에게 모진 말을, 못내 부끄러운 우리 가족에게 모진 생각을 품고 있는 그런 모습이 어째 내 모습 같기도 해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어. 사랑받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는, 참 애가 못됐다. 나도 참 못됐다. 싶어서.

   영화 마지막 장면. 6학년이 된 명은이는 새로운 담임 선생님과 새로운 학급 친구들과 첫 수업을 시작해. 학습을 시작하며 내야 하는 가정조사표에는 부모님의 학력과 직업이 적혀있지. 그래도 그새 한 뼘 성장한 명은이는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부모님의 직업을 솔직하게 써냈어. 그런데 담임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그 종이를 꺼내라 하시더니 대뜸 뒤집으라는 거야. 그러고는 ‘너희들의 부모님에 대한 정보는 알고 싶지 않다. 그냥 선생님에게 알려주고 싶은 너를 뒷장에 마음껏 써서 제출해라.’라고 하지 뭐야? 그 말을 듣자마자 내내 기가 죽어있던 명은이의 눈이 갑자기 반짝이며 색색의 사인펜을 꺼내들었어. 그리고 아주 열심히 빈 종이를 채우더라고. 한참 동안 온몸을 들썩이며 뭔가를 그리고 쓰는 명은이를 오래 보여줬는데 그때 또 정신없이 울어버리고 말았네.


   나는 왜 울었을까?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렇게 이틀을 내리 울고서 잘 모르겠는 마음으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친구와 길거리에서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오래된 친구들의 소식도 들었다가, 인생 선배님 앞에서 신세 한탄도 해보고 어디서는 또 멋진 사람으로 머리에 힘도 줬다가 금세 또 헤헤 풀어지고, 또 허망하고 다시 즐거워지기를 반복하며 지냈어. 터질 것 같은 마음이 붉으락푸르락 복잡한 색을 내는 걸 구경하면서. 그냥 ‘슬픔’, ‘행복’이라고 하기에는 더 복잡한 마음을 꽉 끌어안고서 말야.



- 새비 너랑 있는 이 시간이 아깝다.
새비 아주머니는 한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 아깝다고 생각하면 마음 아프게 되지 않았어. 기냥 충분하다구, 충분하다구 생각하구 살면 안 되갔어? 기냥 너랑 내가 서로 동무가 된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주면 안 되갔어?
- 난 삼천이 너레 아깝다 아쉽다 생각하며 마음 아프기를 바라디 않아.
그 말에 증조모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밝은 밤 258p>


   그렇게 갑자기 이렇게 노래가 튀어나왔네. 꽉 부여잡고 있던 마음이 터져 나온 것 같기도 했어. 왠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안심이 돼. 나른함이란 완벽히 안심이 되는 순간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니까, 이달의 주제와도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너무 복잡하게 생각말고 그냥 이대로 충분하다고. 그냥 그렇게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하다가



https://youtu.be/-J5QQluNxzc


사랑의 말을 가르쳐주세요


한숨만 늘었어요

걸음은 더 느려졌고

채이는 마음들만

어느새 더 많아졌죠


보고싶은 사람들 

꼭 만나게 될 영혼과

그 앞에서 난 여전히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랑의 말을 가르쳐주세요

어느 누구도 상처 받지 않을

사랑의 말을 내게도 주세요

나의 이 온 마음이 네게도 전해지도록


사랑의 말을 가르쳐주세요

어느 누구도 상처 받지 않을

사랑의 말을 내게도 주세요

나의 이 온 마음이 네게도 전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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