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틈이 쓰는 쓰다 2집 작업기록
* 지난 이야기
9/20
보컬 녹음이 안 끝났다. 메인 녹음은 다 끝났지만 쌓기로 한 화음은 집에서 녹음하기로 해서 그렇다. 보컬 녹음을 위해 빼둔 시간을 다 썼으므로 퇴근 후 집에 돌아와 고양이들을 재우고 틈틈이 녹음 중이다. 화음은 음정만 잘 맞춰서 깨끗하게 받기만 하면 되니 고가의 장비나 엔지니어가 없이도 스스로 할 수 있다. 언젠가 나도 집에서 메인 보컬을 녹음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출 수 있을까? 아직은 아득한 이야기다.
9/26
드디어 보컬 녹음이 끝났다. 화음도 다 끝났다. 믹싱, 마스터링, CD 제작, 텀블벅, 공연 등이 남았다. 앨범 내고 사라져버리는 일이 없게 계속해서 마감을 만들어뒀다. 과거의 내가 던져놓은 폭탄은 지금의 내가 어떻게든 처리한다. 늘 이런 마당이니 처리 기술이 늘 법도 한데, 그저 세상엔 참 다양한 종류의 폭탄이 있다는 것만 배운다.
오늘은 처음으로 마감 없는 작업에 대해 생각했다. 천천히, 시간의 흐름을 오롯이 담은 앨범을 제작한 적이 있었나? 맨 처음 만들었던 EP 앨범을 제외하고는 전부 냅다 마감일부터 정해놓고 달렸다. 게으른 나에게는 이게 맞는 방식이라 철석같이 믿어왔는데, 마감에 대한 괴로움 없이 평온한 마음으로 만들어내는 앨범은 어떤 모양일까. 물론 영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서도..
그래도 녹음이 다 끝나고 나니 진짜 진짜 후련하고, 남은 서류작업이 되려 즐겁게 느껴진다. 쌓여있던 투 두 리스트(to do list)를 세차게 지우는 재미. 오늘은 쾌청한 가을 하늘을 향해 콧노래도 흥얼거렸다. 살만 한가보다.
+ 9/24
이달음 정기 모임이 있던 날. 앨범준비로 정신 없는 와중에도 고대하던 만남이다. 우리는 한 팀은 아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작업을 응원하고 필요를 채워준다. 일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도 하나 고통을 공감해주는 정신적 지지자로서, 그저 서로가 존재해줌으로서 얻게되는 힘이 참 크다. 음악을 시작하고 절반 이상의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은 이제 내 눈빛만 봐도 나의 상태를 알아채버리고 만다. "정규..."하고 나지막하게 내뱉은 한숨에 모두가 크게 공감하며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었다. 그게 뭐라고 대단한 힘이 된다.
이번 앨범을 제작하는 과정마다 내게 사랑의 말을 가르쳐준 사람들을 자주 떠올린다. 어느 날엔 나와 함께 울어줬던 친구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눠줬던 사람이, 나를 대신해 욕지거리를 뱉어주었던 친구가, 나보다도 나를 사랑해주었던 다정한 마음까지. 내가 진 빚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 마음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었으면, 이 마음이 네게도 전해졌으면, 조용히 중얼거렸다.
9/30
텀블벅 펀딩 페이지 오픈 심사를 넣었다. 1집과 비슷한 결이지만 다른 내용으로 채워 넣는다. 완성해놓은 페이지를 보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서늘하고 서슬 퍼렇던 1집의 분위기와 다르게 2집은 훨씬 더 부드럽고 따뜻하다. 음악만 바뀐 줄 알았는데 글도 사진도 내 눈빛도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진게 보인다.
생각보다 기한이 촉박하여 펀딩을 할까 말까도 고민했는데 막상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내 페이지를 보니 괜히 뿌듯하기도 하다. 이번에도 과연 펀딩에 성공할 수 있을까? 기한도 훨씬 짧아 소식을 못보고 놓치는 분들이 많으면? 아니 그 전에, 여전히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해주실까? 이번 노래는 어디로, 어디로 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