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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 Engineer Apr 13. 2024

다이어트

24년 4월의 다짐

반년 만에 올라선 체중계에 찍힌 숫자는 생전 처음 보는 수치였다. 슬프게도 안 좋은 쪽으로. '나는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는 믿음이 와장창 깨지던 순간이었다. 돌이켜 보면 플래그(?)는 여러 번 있었다. 올해 초,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얼굴이 2배가 됐냐. 턱이 없어졌네' 라며 건넨 덕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진드기처럼 소파에 찰싹 드러누워 티브이를 보는 나에게 '어휴 너도 이제 아저씨구나. 나잇살 먹었네.' 누나가 혀를 찼던 날도 떠올랐다. 고모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차마 깨닫지 못한 이유는 뭘까? 가장 먼저 내 방에 체중계가 없다. 1년에 많이 변해야 1~2킬로 정도 오르락내리락하는 몸무게를 재기 위해서 좁은 방에 체중계를 들이는 것은 사치였다. 다만 내가 고려하지 못한 것은 내 나이와 반비례한 기초 대사량이었다. 먹는 양이 딱히 바뀐 것도 아닌데 반년만에 갑자기 5킬로가 넘게 찔 줄이야. 착각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내 샤워실 거울에는 보정 기능이 있는 것인지, 매일 아침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 덕택에 내 머리 속 내 몸무게는 6개월 전, 지금보다는 열심히 운동했던, 그리고 마지막으로 체중을 쟀던 그날에 머물러 있었다. 핑계는 접어두고, 어쨌든 이 충격을 동기부여 삼아서 다이어트와 운동을 병행하기로 했다. 처음 내가 시작했던 이유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말이다.


나는 사실 '살이 쪘다'는 말보다 '너무 말랐다'는 이야기를 20년간 들어왔다. 10대 학창 시절 늘 앞자리에 앉았을 만큼 왜소했던 나였기에 저체중은 큰 스트레스였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PT를 등록하고 덩치 키우기에 도전했다. 한 달쯤 지났을까, 공강 시간 틈틈이 운동하는 루틴에 내 몸이 적응되기 시작할 무렵, 당시 PT 선생님께 이런 질문을 건넸다.

"선생님처럼 근육 키우려면 몇 년 정도 운동 해야 돼요? 주 4회씩 꾸준히 한 5년 하면 되나요?"

"넌 지금 그런 질문을 할 때가 아니야. 라면을 먹든 패스트푸드를 먹든 어떻게든 살을 먼저 찌워.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들면 안 돼."

당시 나에겐 굶는 것보다 쉬지 않고 먹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더 이상 말라깽이로는 살기 싫어서, 100만 원이 넘는 PT 비용이 너무 아까워서, 알람을 맞춰놓고 미친 듯이 먹어댔다. 내 노력만큼 불어난 위장덕에 내 몸무게도 생각보다 빠르게 훌쩍 뛰었다. 1년 만에 10kg은 쪘던 것 같다. 그게 내 첫 다이어트였다.


그 이후로 나에게 운동과 다이어트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었다. 시험 기간에, 혹은 잠시 나태해져서 운동을 쉬면 풍선에 바람 빠지듯 1~2kg가 순식간에 빠지곤 했다. 허탈한 마음에 운동을 아예 접고 '생긴 대로 (혹은 태어난 대로) 살자'라고 마인드를 고쳐먹은 적도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의지가 박약한 사람에게 최고의 솔루션은 자기 합리화 아닌가. 그렇게 찌고 빠지기를 몇 년, 내 체질과의 실랑이를 한참 벌이고 나서야 항상성의 궤도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한번 관성의 흐름에 올라타고 나니 놀랍게도 좀처럼 몸무게가 변하지 않았다. '그냥 이 상태로 쭉 유지만 해야겠다.'로 내 목표는 수정되었다. 내 노력의 결과에 만족스럽기도 했고, 애초에 '몸짱이 되겠다'는 열망이 크지도 않았기에 더 이상의 변화에 투자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체지방율 정도만 신경 쓰면서 운동을 했던 것 같다. 하기사 한 때는 이 궤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썼는데, 그리 쉽게 이탈할리 없다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우려했던 일, 내 몸이 그때로 돌아가는 일이 벌어지진 않았다. 그랬으면 덜 놀랐을까?


그리 대단하거나 영광스러운 과거는 아니어서 이제는 반대로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겠다'라고 선언하기에는 낯부끄럽다. 다만 누군가의 말처럼 내 몸의 변화를 인정은 해야 할 것 같다. <늙는다는 착각>이라는 책에서 엘런 랭어는 마음 가짐에 따라 젊음의 가능성은 세월의 장벽 너머로 확장될 수 있다고 했다. 책을 읽으며 나도 의식을 집중하여 젊게 살겠노라 굳게 다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신체적인 변화들을 부정하려는 태도는 경계해야겠다는 반성은 한다. 솔직히 다음 스텝으로 훌쩍 넘어가버린 내 몸무게를 보면 다음엔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무섭긴 하다. 아직은 유지하고 있는 여러 능력(?)들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하는 걱정들. 그리고 뒤이은 여러 계획들이 이어진다.  내 소중한 시력만큼은 지키고 싶다, 체중계에 이어 영양제도 주문해야 하나, 매번 미루기만 했던 내시경 검사도 한 번 받아볼까. 올해를, 지금을 계기로 걱정 섞인 내 계획들이 또 그저 계획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소박한 내 다이어트 계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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