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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seong Lee Dec 09. 2023

우리가 안고 살아가는 상처에 대해

정대건 <급류>


"재성님은 가벼우니까 웨이트 2개 더 차요"


   1차 다이빙을 끝내고 가쁜 호흡을 내쉬며 강사님이 나에게 말했다. 웨이트 하나에 1kg, 2개면 2kg, 이미 내 몸에는 4개의 무게추가 달려 있었다. 진짜 진심이세요? 나는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강사님을 한번 쳐다보고는 풀린 다리로 바닥에 주저앉아 양쪽에 웨이트를 하나씩 더 연결했다. 다이빙 옷을 입은 상태로 물에 뜨는 것은 쉽다. 가라앉는 것은 어렵다. 내 상식과 반대되는 이 상황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허리춤에 매달린 6kg, 공기통 15kg, 80kg을 훌쩍 넘긴 내 몸은 이제 가라앉을 수 있을까? 20분의 쉬는 시간 동안 나는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를 가만히 바라봤다. 갈매기 울음소리, 옆에 주차된 차의 불규칙한 배기음, 배 위에서 선장님과 강사님이 담배피며 나누는 대화 소리가 파도 소리에 함께 부딪히고 뒤섞였다. 바깥엔 정말 많은 소리가 있었지. 물속에서 40분의 시간은 많은 것을 낯설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물속은 더 고요하다. 더 어둡고, 차고, 깊었다.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한 것은 바다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상상한 바닷속에는 바다 거북이, 산호초, 니모, 고래 상어처럼 땅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하지만 막상 다이빙을 했을 때 그 무엇보다 강렬했던 것은 물속 그 자체였다. 나의 숨소리와 공기 방울 소리만 들리는 어두운 세계에서 무중력 상태로 유영하는 순간, 내 몸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다. 몇 번의 다이빙을 거쳐 내 몸과 스쿠버 장비들을 잘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면,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상태로 일정 깊이에 가만히 멈춰 호흡할 수 있게 된다. 강사님은 그 상태를 중성부력 상태라고 했다.


중성 부력에서는 무중력 상태처럼 자유롭지.
아빠는 도담이가 중성 부력에서처럼 평온하고 자유롭게 살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말이 무엇일까를 가끔 상상한다. 예전에는 '사랑해'라는 한 문장이 소중했다면, 지금은 구체적인 언어로 전달하고 싶을 때가 많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각을 상대방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길 바란다. 그 감각의 총체가 만들어 낼 나의 감정에 당신이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며. 그래서 책 <급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10여 페이지를 넘겨 '중성 부력'이라는 반가운 단어를 만났을 때였다. 도담이에 대한 아빠의 감정이 감각으로 오롯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제 해솔이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도담 쪽으로 몸을 가까이 기울였을 때, 익숙한 해솔의 체취가 훅 끼쳤다. 잃어버린 시간이 모두 돌아오는 듯했다


   <급류>에서 사랑은 상처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모든 상처와 사랑은 예고 없이 나를 휩쓸어버리고, 잠잠해지면 내 속에서 가라앉는다. 그리고는 갈수록 희미해져 간다. 그렇게 모든 걸 잊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너무나 쉽게도 다시 떠오른다. 하나 더, 상처는 사랑을 삼킬 수 있고, 사랑도 상처를 삼킬 수 있다. 미숙하고 어린 해솔과 도담은 그렇게 나의 상처가 사랑하는 당신마저 삼켜버리는 과정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 상처를 가라앉혀서 심연 속에 묻어버리는 것도, 그것을 끄집어 내 도려내려고 애쓰는 것도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우리가 이 상처를 공유하고 있음에 감사하며, 가라앉지 않기 위해 그저 부둥켜안고 버텨내는 모습이 그가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인 것 같다. 비록 상처가 더 깊어질지라도 그것에 휩쓸리지만은 않기를, 그리고 언젠가 그것을 당당히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도담의 아버지가 말한 중성 부력의 상태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_영화 Shape of Water_
Unable to perceive the shape of you
I find you all around me
Your presence fills my eyes with your love
It humbles my heart
For you are ever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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