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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 Engineer Jan 21. 2024

무작정 글쓰기

2024년을 시작하며, 1월 회고글

     2024년을 시작하는 글을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해 쓰려고 했다. 요즘 내가 쓸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체력의 압박이라기보다 스스로에 대해 객관적으로 진단하는 능력이 조금이나마 생긴 덕분이다. 그래서 나의 이 한정된 에너지를 어디에 쓸 것인가가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내 팔은 두 개인데 모든 것을 붙잡으려다가 모든 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포기하려고 마음먹을 때마다,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들이 뒤따라오고, 끝내 나에게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일주일을 넘게 씨름한 끝에 어떠한 답을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지금의 내가 감당할 있는 주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쓰던 글을 멈췄다. 대신 내가 쥐고 있는 소중한 것들에 시간적인 우선순위를 부여해 보기로 했다. 2024년, 올 한 해 1년 동안 내 에너지를 가장 많이 쏟아붓고 싶은 것을 정해 보기로 했다. 다른 소중한 것들은 2025년 이후로 미루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내가 정한 것은 바로 '글쓰기'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 몰입(Flow) >


    나는 인생책으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Flow)'을 매번 꼽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했던 시절에 희미하게나마 나에게 실마리를 던져준 책이었다. 저자는 내가 삶 속에서 쫓는 가치들은 결국 행복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에 지나지 않으며, 행복하기 위해 현재에 몰입하라고 역설한다. 여기서의 몰입은 곧 외적 조건에 압도되지 않고 자기 행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며,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인 듯한 느낌을 들게 하는 '최적 경험(optimal experience)'이다.

    책에서 조언해 준 대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그날부터 나는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기는 분야를 발견하면 내가 과연 이 일에 몰입할 수 있는지 바로 테스트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발견한 취미들이 여럿 있지만, 가장 밀도 높은 최적 경험에 이르게 해 준 것은 '글쓰기'였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작년 봄이었다. 멍하니 앉아 이런저런 허무맹랑한 상상을 즐기는 나에게, 가까운 친구 한 명이 소설을 써보라며 추천해 주었다. 친구의 말에 호기심으로 시작한 소설 쓰기는 나를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주었다. 타인에게 드러내기 어려운 나의 내밀한 생각과 의식을 가상의 인물에 투사할 수 있으며, 반대로 내 삶과 동떨어진 인물을 창조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 놓은 세상 안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야기는 새롭게 생성되고 변형된다. 글을 시작할 때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나아갈 때 느꼈던 설렘이나, 이야기와 인물들 속에서 나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했을 때의 카타르시스는 처음 겪는 형태의 감정들이었다. 그렇게 푹 빠져서 8시간을 꿈쩍하지 않고 글을 쓴 적도 있었다. 인간은 창작 활동을 통해 가장 쉽게 최적 경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칙센트미하이의 말에 공감되는 순간들이었다.


    글이 좋아진 만큼 욕심이 생기면서 잘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나도 결국 태생은 공대생인지라 인문학적 감수성을 담은 글보다는 차가운 수학적 논리체계로 이루어진 글이 더 익숙하다. 주변에 글을 좋아하거나 잘 쓰는 사람도 없거니와, 한 번 배울 때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글쓰기 수업을 등록했다.

    처음 듣는 글쓰기 수업은 다소 당혹스러웠는데, 가장 당황하게 만든 것은 수업을 들으러 오신 분들의 '글에 대한 진지함'이었다. 나와는 달리 모두 '글'로 이루고 싶은 구체적인 꿈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두 번째로 당황했던 순간은 그런 사람들에게 작가님이 '너네가 왜 글을 업으로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2시간을 일갈하셨던 첫 수업이었다. 뭐든지 취미로 할 때가 가장 즐거우며, (지금 하는 일로) 월급 받으면서 퇴근 후에 쓰는 글이 보통 가장 잘 써진다는 주옥같은 말씀도 남기셨다. 일을 그만두고 소설에 집중하고 싶다는 분에게 '절대 일 그만두고 소설 쓸 생각 하지 말라'며 10여 분간 혼내셨던 순간은 그날의 하이라이트였다.

    마지막으로 당황했던 순간은 마지막 수업날이었다. '글쓰기 방법론'같은 거창한 것을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그동안의 수업이 작가의 마음가짐이나 작가의 냉혹한 현실에 대한 수업, 혹은 잔소리가 주를 이루자 실망감이 조금 커졌었다. 무서운 작가님 앞에서 소심하게 아무 말 못 하다가 마지막 날에 결국 이런 질문을 했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해서 좀 막막한데, 어떻게 글을 쓰고 배워야 하나요?" 사실은 작문 방법론을 담은 전공책을 추천해 준다던지, 누군가의 글을 필사해 보라와 같은 조언을 기대하고 했던 질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작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3~5년은 쓰레기를 쓴다고 생각하고 쓰고 싶은 것을 무작정 쓰세요. 글쓰기도 결국 근육이 필요합니다. 완성도 높은 글일 필요도 없고, 특정한 길이나 형태의 글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글을 쓰려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아무것도 못쓰게 돼요. 무엇이든, 꾸준히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책에서 비슷한 말을 남겼던 작가 한 분이 떠올랐다. 바로 스티븐 킹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반드시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민망하게도 게으른 나는 지름길을 원했던 것 같다. 늦게 시작했으니 빨리 가야 한다는 욕심만 앞설 뿐, 막상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는 시간을 늘리지는 못했다. 다른 수강생들의 뛰어난 소설을 읽을 때에는 "그래 역시 나에겐 취미 생활로 좋은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내 조악한 글보다 이런 생각들이 더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한심한 생각 멈추고 당장 써보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글쓰기'를 실행에 옮겼다. 시답잖은 생각들을 아이패드에 적어 보기하고, 생전 처음으로 월간 회고 글이나 영화, 책 리뷰도 써봤다. 책을 필사하면서 읽기도 하고, 아직은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소설도 워드 파일에 자주 끄적인다. 다행히도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지는 않다. 퇴근 후 누워서 인스타 릴스나 유튜브 숏츠를 보는 등의 쾌감으로 가득 찬 스트레스 시간만 줄여도 하루에 글 몇 줄은 더 쓸 수 있다. 주말 친구들과의 약속은 잠시 줄이고 나에게, 글에 좀 더 몰입하는 시간을 늘리면 된다.


    이 시간들이 5년, 10년 쌓이다 보면 나는 멋진 작가가 되어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어떠한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도태될 수도 있다는 생각, 글에 신물이 나서 쳐다보기도 싫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멀리, 심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나 싶다. 이 글을 무겁게 시작했을 때는 한 줄도 적지 못했지만, '2024년 신년 계획'으로 수정하고 나서는 이렇게 술술 써지듯이 말이다. 자기 객관화를 빙자한 냉소는 그 어떠한 답을 구해주지 못한다. 당장은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다. 글이 좋다. 언젠가는 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당장, 적어도 올 한 해는 여기에 내 많은 것들을 쏟아부을 때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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