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의 협력자는 바로 교회란다

by 거북이

악마 스크루테이프는 조카이자 초보 악마인

웜우드에게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편지를 써내려갑니다.

"웜우드야, 네가 맡은 그 환자가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환자의 몸에 배어 있는 과거의 습관들은 아직 우리에게 전적으로 유리할뿐더러,

우리의 가장 큰 협력자 중 하나는 바로 교회이니까"


일요일 아침, 줄리안은 설레는 마음으로 교회 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무언가 성스롭고 거룩한 경험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줄리안이 마주친 것은 아첨하는 듯한 동네가게 아저씨였습니다.


웜우드는 금번 작전을 위해

삼촌 스크루테이프가 편지에 써준 조언을 하나씩 하나씩 떠올렸습니다.


(하나. 스크루테이프의 조언)

‘줄리안이 교회의 진정한 의미를 보지 못하게 하고

대신 그의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가치를 평가하게 해'


줄리안이 앉은 예배당 의자는 먼지가 쌓였고

자세를 바꾸려고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렸습니다.

바닥에는 누군가 떨어뜨린 사탕 껍질이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둘. 스크루테이프의 조언)

'인간들은 영혼을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없을뿐더러

눈에 보이는 사소한 결점들에 쉽게 마음을 내어준단다'

그때 줄리안의 옆자리에 이웃집 아주머니 히긴스 부인이 앉았습니다.

그녀는 화려하지만 유행이 한참 지난 모자로 한껏 멋을 냈고,

성경책을 쾅 소리나게 내려놓았습니다.

줄리안은 그녀가 평소 시장에서 상인들과 다투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저런 사람도 신자라고?’ 줄리안의 마음속에 비웃음이 피어올랐습니다.


찬송가가 시작되었습니다.

히긴스 부인은 열정적으로 노래를 불렀지만,

정말이지 그녀의 박자와 음정은 들어주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셋. 스크루테이프의 조언)

‘그녀의 틀린 음정에 줄리안의 신경이 곤두서게 하렴.

가사 내용이 아니라 듣기 싫은 목소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거야’

줄리안은 눈을 감고 기도하려 애썼지만,

바로 옆에서 들리는 끔찍한 노래 소리 때문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줄리안은 생각했습니다.

‘이게 정말 거룩한 예배인가? 차라리 집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게 낫겠어’

그의 마음속 평화는 진작에 깨져 버렸고 불쾌함만이 가득 찼습니다.

예배 중간에 한 남자가 늦게 들어와 통로를 지나갔습니다.

그의 구두는 걸음마다 ‘뽀드득, 삑’ 소리를 내며 우스꽝스러운 소리가 났습니다.

또한, 뒷자리에 엄마품에 안긴 아기가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줄리안은 이 소리들이 마치 자신의 신경을 일부러 긁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히긴스 부인이 이웃인 줄리안을 발견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유, 다음에 교회에 올 때는 반바지 차림 말고, 재킷 걸치고 단정하게 입고 와야 해요”


줄리안은 마음속으로

‘웬 참견이람, 본인이나 똑바로 하라지. 내가 괜히 시간낭비 하는 거 아냐?

다시는 교회에 오나봐라 쳇!’ 라고 생각하며 재빨리

교회와 사람들 사이를 벗어났습니다.


스크루테이프는 이 모든 상황이 몹시도 즐거워했습니다.

"웜우드야, 인간들은 교회를 신성한 곳으로 상상하고 기대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만나는 이웃의 초라하고 엉터리인 모습에 실망하지.

그리고 자기가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는

배울 점은 하나도 없다고 단정짓고 비난과 탓을 하지.

우리는 그러한 현실을 이용해 인간들을 실컷 유혹할 수 있단다"


스쿠루테이프는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적었습니다.

"웜우드야 명심해라. 인간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오는 것은

거창한 죄악이 아니라 일상의 편견과 오해, 무지 그리고 오만 이란다"


웜우드는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속 깊이 새기며

다음 일요일, 즐거운 상황이 펼쳐질

교회를 기대하며 어둠 속으로 총총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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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제2화는 원문으로 소리내서 읽어 보시길 추천 드려요 꼭이요. 꼭!

C.S 루이스가 악마 스크루테이프로 빙의한 것은 아닌가하고 느껴질 정도로

찰진 대사들이 마구마구 쏟아져 너무 재미있답니다


- 일례로 원문에서 ‘원수가 두 발 달린 짐승들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집요한지 변태적인 관계*도 서슴지 않으면서 영적 세계 전체를 모독하고 있는 형편이다’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두 발 달린 짐승’인 ‘나’는 빵 터지고 말았고

악마 녀석이 얄미워져 머리도 콩 하고 한 대 쥐어박고 싶어졌습니다.

악마가 ‘영적 세계 전체를 모독하고 있다’ 라고 말하다니,

대체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는 건지 원!


*변태적인 관계 : 신이 ‘인간’을 ‘자기 자녀로 삼는다’ 고 해서 악마는 변태적이라고 표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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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화에서 악마는 자기 수준에서

‘눈에 보이는 현상만 파악할 수 있는 인간’을 조롱합니다.


우리는 사물과 사람을 볼 때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바로 자신이 기대하고 욕망하는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나 성당을 성스럽고 훌륭한 인격들이 모여 마땅한 곳’으로 기대합니다.

그곳의 좋은 영향을 받아 나 역시 성스럽고 훌륭하게 변화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머잖아 실망으로 바뀌고 맙니다.

애초에 말도 안되는 것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교회나 성당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인물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기 생각대로, 자기가 아는 만큼만, 자기가 상상하고 싶은대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순투성이입니다.

나는 사촌이 땅을 사면 축하한다고 말하지만, 배가 조금은 아프기도 합니다.

나는 안락하고 평온한 것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도전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나는 툭하면 타인을, 환경을, 조건을 비난하고 탓하며 원망합니다.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합리화에도 능합니다.

나는 겸손하기를 원하고 바라지만, 오만합니다.

과거,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썼던 것이

‘나의 의지와 욕망’이 강해서 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철저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야근이 일상인 부서에 2년간 일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야근을 하고 12시쯤 집에 돌아오면

새벽에 일어나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과거,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되었던

환경과 상황이 허락되었기에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이중성을 가졌기 때문에

신이 아닌 ‘어쩔수 없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악마와 열심히 줄다리기를 할 뿐입니다.

지옥문에 가까운 쪽으로 선이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며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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