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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제르 Nov 14. 2023

마음의 오븐

이 집 오븐이 반죽을 맛나게 구워줘요.

  뚝딱뚝딱 길지 않은 문장들로 임팩트 있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부럽다. 적절하게, 보기 편하게, 자신 있게 하고자 하는 말을 거침없이 써 내려가는 사람들도. 


  나는 뚝딱뚝딱은 당연하거니와 글을 짧게 쓸 줄도 모른다. 그렇다 보니 임팩트 있는 글을 쓰는 것에도 소질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글을 볼 텐데 그들의 입장에서 보기 편하게 문단을 여러 번씩 나누어 배치하는 일도 나에게는 어색하다. 책에서는 그렇게 쓰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꼰대 맞습니다.). 


  자신 있게 단언하여 말하는 것도 어렵다. 독자라고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 뿐이라도 하더라도 일단 나의 글이 공개적인 온라인 공간에 남겨지고, 그 남겨진 글을 누군가, 어쩌다 볼 수도 있을 텐데, 애매한 것을 확실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영 찜찜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빛을 보지 못하고 저장된 글이 99+ 개도 넘게 있다. 이 글도 저장 글 리스트로 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수많은 글이 저장 글 리스트에 남는 것으로 그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장이 별로여서? 아니다. 이미 올린 글도 어차피 별로다. 쓸데없는 생각일 것 같아서? 아니다. 이미 올린 글 중에서도 쓸데없이 시작한 글이 많다. 오히려 쓸데없는 생각들을 좋아한다. 내가 글을 올릴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다름 아닌 '유익함'이다. 세상에 읽을거리 볼 거리 천지삐까리인데 영향력 없이 살아가는 나의 글을 어쩌다, 어쩐 일로, 하나라도 눌러 보게 된다면 '이 시간, 이 글을 읽은 것이 나에게 유익했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 또한 유행에 뒤처진지 오래인 지라 각종 정보나 꿀팁 따위를 올릴 수는 없을 것이고, 다만 남길 수 있는 것은 '마음에 유익한 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아님 말고'라는 식의 글을 쓸 수 없겠다는 묵직한 책임감이 들었다. 따라서 모든 이야기들은 어떤 이론이나 연구에 근거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나의 따뜻한 진심이 담기기를 원했다. 또 언젠가 책으로 엮어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글을 실수 없이 잘 쓰고 싶기도 했다. 


  상담을 하면서 있었던 일과 그 안에서 느낀 감정,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치며 얻어낸 통찰들, 아이들 키우면서 수많은 엄마들에게 주고 싶었던 위로들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같은 말도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들었을 때와 우연찮게 눌러본 글에서 듣는 말이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그랬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건네는 위로 또한 더할 나위 없이 고맙지만, 나를 전혀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은 사람이 무심코 두고 간 위로가 나에게 꼭 맞았을 때 경험한 적확한 공감과 위로의 마음을 기억한다.  


  '잘 하고 있어요.', '당신이 최고예요.' 등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위로도 좋지만, '당신이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당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 '그동안 당신이 성취하고 이뤄온 것들' 등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위로를 하고 싶다. 나의 글이 '마음의 오븐'이 되어서, 오븐에 들어 갔다 나오면, 그러니까 글을 읽고 나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상황 혹은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곧잘 퍼지거나 무너져 내리곤 했던 그의 연약한 마음 반죽을 뜨겁고 단단하게 굳혀 이후의 성장을 이끌어내줄 수 있는, 그런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제가 여러번 들어가 봤는데, 이 집 오븐이 꽤 쓸만 하네요? 어제는 맛있는 초콜렛칩을 잔뜩 넣어 초코 머핀을 구워냈고, 오늘은 몸에 좋은 치즈를 듬뿍 올린 피자를 구워낼 거예요. 당신은 어떤 재료를 가지고 있나요? 뭘 넣어서, 뭘 만들어 보면 좋을까요?"  


© dokter_lam,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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