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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믕됴 Jul 17. 2023

선물 주기 제일 어려운 사람2

고민해서 사줬더니 잃어버리고, 없어졌다고 지가 제일 난리 침


✨1편에서 이어지지만 이거부터 읽어도 된다. https://brunch.co.kr/@meungdyo/18





 자기 취향을 스스로도 짚어내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고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내 예랑이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냅다 잃어버렸다. 놀랍게도 그 지갑은 일주일만에 제발로 우리집 현관 앞까지 돌아왔지만 그 사이 정말 오랜만에 요동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어쩔 도리도 없이 휘말려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과 나의 감정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다. 


 내가 지갑을 잃어버린 걸 알아차린 건 직장 동료들과 카페에서 담소를 나눈 후 집으로 돌아와서였다. 그 날 내가 지갑을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은근히 자랑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임의 총무였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우리가 있었던 테이블 주변과 의자에 혹시 남은 물건은 없는지 체크도 했다. 귀가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라도 했으면 바로 카페로 돌아갔을텐데, 동료의 호의로 차를 얻어 타고 오는 바람에 집에 들어와서 가방을 비울 때까지 지갑이 없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가방을 뒤집어 엎은 뒤, 정말 오랜만에 혼잣말로 욕을 했다.


 그때까지는 아직 '일단 진정하자'를 계속 속으로 되뇌이는, 평소의 내 모습이었다.


 카드부터 죄다 정지시키고, 카페에 전화를 해서 혹시 분실물 들어온 게 없었는지 확인하면서 동시에 포털에 검색해서 영업 시간과 최단경로로 가는 법을 알아봤다. 걸어서 가기에는 먼 거리에 있는 곳이고 버스를 타기에도 노선이 애매한 곳에 있었다. 아직 들어온 분실물은 없었다지만 영업 종료까지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앱으로 공유 자전거 위치를 확인하며 집을 나섰다. 나를 태워다 준 동료에게 전화해서 혹시 차에 내 지갑이 떨어져있지는 않은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하며 공유자전거를 찾아 탔다.


 자전거를 타고 20분 남짓이 걸리는 거리. 중간중간 횡단보도는 왜이리 많은지 몰라도, 신호에 걸려 멈출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멍청하게 지갑을 잃어버리다니.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이 모양이야. 한숨마다 자책이 섞여 있었다.


 카페에 도착했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내가 있었던 자리엔 내가 확인하며 일어섰던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고, 주차장에서 동료의 차가 있던 자리도 살펴보았지만 거기에도 지갑은 없었다. CCTV를 확인해줄 수 있냐고 가게에 문의했더니, CCTV를 볼 수 있는 건 사장 뿐인데 사장이 가게에 없다고 했다. 그럼 내일 출근 하시냐고 물었더니 오픈시간에 맞춰 오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다행히 다음 날은 주말이었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억지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는 중에 동료에게 전화가 왔다. 시트를 제끼고 밀어가며 구석구석 찾아봤지만 지갑은 없었다고. 내가 전화하고 거의 한 시간은 된 시간이었는데, 그간 내내 찾은 모양이었다.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자 이제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걸어서 갔다. 걸어서 가는 동안, 나는 그 지갑을 새로 살 수는 없을지 인터넷을 뒤졌다. 같은 모델은 그새 죄다 품절이었다. 본사 고객센터에 품명을 넣어 재고가 있는지 문의를 하고 당근마켓까지 뒤져보며 한 시간 넘게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하자 세상이 깜깜하게 어두워져있었다.


 이제 아침이 올 때 까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밤. 누가 봐도 어딜 봐도 최선의 행동은 푹 자는 것 뿐이었다. 나는, 보통은, 그걸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눌러놓을 수 있다. 잠들기 위해 눈을 감은 채로 적막과 어둠 속에서 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잠들 수가 없었다. 답답하고 분해서 뒤척이고 일어나 앉았다가 다시 눕기를 반복하다 결국 눈물이 났다. 다음 날 아침부터 또 외출을 해야하는데, 눈이 부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그걸 알면서도 통제가 되지 않아서 슬슬 화까지 났다.


 어딘가에 떨어뜨린 거라면 찾아도 백 번은 찾았어야 했는데 아직도 찾지 못했다니, 누군가 작정하고 내 지갑을 훔쳐간 건 아닐까. 내 지갑을 가져간 사람이 정말 있다면 내일 CCTV를 뒤져 범인을 찾아서 빨간줄 긋고 말겠다. 목표도 불분명한 원망과 여기 차마 적지도 못할 만큼 과한 저주가 날을 벼렸다. 그러면서 내가 그 지갑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알아차렸다. 나는 물욕이라곤 없는 사람인데, 한낱 물건에 이렇게까지 집착하고 감정이 동요하고 눈물까지 난다는 게 낯설기도, 한 편으로 무섭기도 했다.


 내가 예랑이를 너무 좋아하고 있다는게 무서웠다. 그가 준 지갑 하나 잃어버렸다고 일상이 뒤집어지고 감정을 6시간 넘게 억누르지 못하는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예전같으면 당장에 '이깟 거 아무 것도 아닌데'하며 적극적으로 짓밟고 축소했을 감정이지만, 그냥 마음을 묻어버리기엔, 그 망할 놈의 지갑을 당장 다시 손에 쥐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고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규모의 감정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오픈 시간이 살짝 안 된 이른 시간에 카페에 도착했다. 이미 CCTV를 보러 온다고 점원이 사장에게 알린 상태였기 때문에 이야기가 빨랐다. 속상하겠다며, 마시면서 같이 보자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내려주던 사장님께는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혹시 중요한 물건이냐고 사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내게는 정말 중요한 물건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하고, 나는 좁은 스마트폰 CCTV 화면을 조작하는 데 집중했다. 


 불행하게도 지갑을 사라지게 만든 원흉(그게 나든 도둑이든)을 잡아 아주 족쳐버리겠다는 나의 꿈이 물거품이 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가게 내부의 CCTV 영상은 2주 전 영상까지 모두 정상적으로 저장되어 있었는데, 주차장 CCTV, 그 중에서도 딱 동료의 자동차가 세워져있던 그 구역을 찍은 영상만 전날 오후 10시 20몇 분 이전까지의 영상이 싹 날아가 있었다.


 내가 지갑을 잃어버린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은 오후 3시 쯤. 누군가 카페를 마감하고 문을 닫기 전에 일부러 그 구역 영상만 선별적으로 삭제한 게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내가 차에 타면서 지갑을 떨어뜨렸고, 그 지갑을 직원 중 누군가 주워갔고, 내가 그 날 지갑을 찾겠다고 들쑤시고 다니자 CCTV영상을 지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까지 불렀지만 영상이 없는 상황에서 의심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카페 사장이 테이크아웃 잔에 옮겨 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카페를 나섰다.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했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감정을 꾹꾹 눌러 평평하게 만드는 데 아주 유용하게 써먹곤 했던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문장도 그 땐 아무 효과가 없었다. 누가 속을 득득 긁는 것 같이 불쾌한 느낌만 들었다.


 감정을 억누르진 못했지만 그래도 일단 지갑을 되찾을 방법이 없다는 건 인정할 수 있었다. 카드 재발급 신청하고, 주민등록증 재발급을 위해 증명사진을 찍고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행정복지센터에서 수령하면서 일주일을 보냈다. 그 사이 흙탕물 같던 감정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흙탕물이었던 물이 잠깐 고요하고 청정해져도 누군가 한 번 휘저으면 다시 흐려지는 것처럼, 지갑 생각만 하면 다시 울컥 화와 슬픔이 올라왔다.


 해피엔딩일 수 없는 것 같았던 이 일은 놀랍게도 지갑이 우리집 현관 앞까지 제발로 찾아오면서 마무리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제발로 찾아온 것은 아니고 누군가의 발과 호의를 빌려 돌아온 것이다.


 누군가 우리 동네 통장에게 내 지갑을 건네주면서, 지갑 안의 신분증을 보니 주소가 자네 아파트와 같은 아파트니 지갑을 갖다 주라고 했단다. 일단 지갑을 돌려받으며 처음 만난 통장이 나와 같은 아파트에, 거기다 같은 동에 사는 것도 신기하고, 내 지갑을 찾은 사람이 우리 동네 통장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도 기적 같았다. 내 지갑을 어디서 찾은건지 물어봤지만, 자기는 전달하는 입장이라 정확히 어디서 찾은 건지는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일주일만에 돌아온 내 지갑은 상처난 곳 없이 말짱했고, 카드나 신분증도 그대로 들어있었다.


 지갑이 돌아오자, 평소의 방어기제나 하릴없이 보내는 시간만으로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던 감정들의 소용돌이가 마침내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뾰족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회피형인 나에게는 목에 걸린 생선가시같은 자각이었다. 완전히 망했다. 예랑이를 그새 너무 좋아하게 됐다.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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