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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믕됴 Jul 25. 2023

27살인데 어린이날 선물 받기

작년과 올해, 예랑이를 만나고 나는 어린이날 마다 선물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정작 어린이었을 때 받은 선물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서너 살 아주 어렸을 때는 동네 사람들까지 다 혀를 내두를만큼 엄청난 고집쟁이, 떼쟁이였지만, 그나마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을 만큼이 자라고 나선 언제 그랬냐는 듯 물욕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잔잔하게 갖고 싶은 마음이 드는 물건들은 가끔 있었지만, 그걸 갖지 못한다고 악을 쓰는 나쁜 버릇은 다행히 깨끗하게 고쳤다. 모르긴 몰라도 엄마가 애를 많이, 아주 많이 쓰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애써 길들인 버릇을 예랑이가 망쳐놓으려고 마음 먹은 눈치다.


작년 어린이날 선물은 작은 고양이 모양 도자기 인형이었다. 예랑이가 미리 준비해둔 것은 아니다. 예랑이는 미리 준비했다면 훨씬 실용적인 물건을 준비했을 사람이다. 데이트를 하던 중 지하철역에 있는 작은 소품 가게의 창문 너머 진열되어 있던 도자기 인형을 보고 내가 홀린듯이 다가가며 "귀엽다!" 하고 외친 것이 발단이었다. 내가 걸음을 멈추고 도자기 인형들을 본격적으로 구경하기 시작하자, 예랑이는 화장실에 다녀올테니 잠시 도자기 인형들을 구경하고 있으라고 했다.


그래주면 나야 좋지! 예랑이 쪽은 보지도 않고 얼른 다녀오라고 했다.


정교하게 조각된 나무로 된 벽시계도 있고, 꽤나 덩치가 있는 조각상도 있었지만 단연 시선을 붙드는 것은 애초에 흥미를 동하게 했던 하얀 도자기 인형들이었다. 새끼손가락만큼 작은 크기의 맨질맨질 동글동글한 고양이 군단이 귀여운 짓들만 골라가며 하고 있었다. 한 녀석은 바이올린을 들고 있었고, 한 녀석은 색소폰을 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신랑 고양이, 신부 고양이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나는 그 중에 색소폰을 들고 있는 녀석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색소폰을 정말로 불 태세인 듯한 포즈지만 실제로 불어봐야 삐익 - 소리나 겨우 날 것 같은 가소로운 크기가 앙증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본래가 물욕이 없는 사람이라, 애초에 사서 집으로 가져갈 생각은 없었다. 유리 하나 너머에서 들여다보고 귀여워하며 느낀 기쁨도 충분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금세 흥미를 잃고, 가게에서 떨어져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정확히 뭘 확인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예랑이랑 데이트하느라 확인하지 못했던 카톡 메시지 응답을 하거나, 결혼준비 카페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올리는 수다스런 일상글을 구경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꽤 오래 걸리네.' 하고 생각하며 예랑이에게 카톡을 보내려는 순간, 예랑이는 등 뒤에서 나타나 나를 놀래켰다. 예랑이가 나오면 바로 이동하려고 화장실 있는 쪽을 향해 서 있었는데, 화장실과는 영판 반대쪽에서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 거기서 와?"


대답 대신 예랑이가 작은 종이가방을 하나 내밀었다.


"선물."


선물? 갑자기? 나는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예랑이 말로는, 선물은 고양이 모양 도자기 인형이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것은 맞는데, 나와보니 내가 휴대폰을 들여다 보느라 자신이 나온 줄 모르는 것 같았고, 마침 가게에서 살짝 떨어져 있었단다. 그래서 마침 어린이날이고 하니까(?) 맘에 들어하는 것 같은 고양이 인형을 샀다고.


이래저래 설명을 들었는데도 아직 "어떻게 거기서 와?"부터 막혀서 이해가 안됐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일차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이 이해보다도 먼저 튀어나왔다. "고마워!" 활짝 웃는 나를 보고 예랑이도 흡족한 듯이 웃었다. 머릿속은 아직도 여러 가지를 이해하느라 분주했지만 데이트를 이어가기 위해 옮기는 발걸음만은 아주 가벼웠다.


그 땐 결국 끝까지 이해를 못했고, 그 날 집에 돌아와 쓴 일기장에도 '진짜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쬐끄만 선물 따위에 넘어가다니!' 같은 말을 써놓기는 했지만, 이제는 안다. 쬐끄만 선물 따위에 넘어간 게 아니라, 그냥 애진작에 마음이 쏠려 있었고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5분도 안 되어 금방 관심이 떨어져버린 물건마저도 사랑하게 되어버렸다는 걸. 사실은, 아마 그 순간에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확실하게 아는 것 한 가지가 있긴 하다. 나는 고양이들을 처음 봤을 때 신랑신부 고양이가 아니라 색소폰과 바이올린을 든 고양이들이 더 귀엽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선물 받은 후로는 신랑신부 고양이가 백번 천번 예쁘다고 생각한다. 에휴. 인간의 미감이란 사실은 감각이 아닌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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